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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 빼기의 기술
    서재를쌓다 2017. 9. 4. 21:30




        N씨는 그만둔다고 했다. 고심하고 고심했다고 했다.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고 했다. N씨는 상반기 내내 드문드문 말을 꺼냈었다. N씨가 먼저 꺼내기도 하고, 내가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점심을 함께 먹는 식당에서, 어떤 날은 조용한 셔틀 버스에 나란히 앉아 그곳과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N씨의 고민에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담아 말을 건넸는데, 결론은 너무 아깝지 않냐는 거였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곳에 가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곳에서 그 사람만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N씨는 계속 고민했고, 어느 날 결심을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바깥의 나무들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2층의 사내식당에서였다. 점심시간 차이가 있어 식당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텅빈 식당에서 N씨는 이곳의 모든 것을 놓고 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고 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제 친해지기 시작한 N씨가 거기서 외롭고, 힘들까봐 걱정이 되었고, N씨가 떠나고 또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해야 할 우리들의 시간들과 노력도 걱정되었다. N씨는 정말로 결심을 했다고 했다. 11월부터 그 곳에서 그 곳의 언어를 배울 거라고 했다.

       

        김하나의 <힘빼기의 기술>을 읽어 나가는데, 갑자기 어느 페이지에서 N씨가 불쑥 튀어나왔다. '모험가 고양이의 가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였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첫째 고양이 하쿠는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 이 글은 둘째 고양이 '티거'의 이야기이다. 티거는 하쿠와 달리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났다. 어느 날 아침 방충망을 손수 열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 날부터 티거의 모험은 시작된다. 한번 바깥세상을 접한 티거는 주인이 가출신고를 하든, 뭘 하든 꼬박꼬박 나갔다. 그리고 꼬박꼬박 돌아왔다. 어느 날은 자정에 들어와 물 반그릇을 쉬지 않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주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서 생각한다. "이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라며 긴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어느 날은 잠자리를 물어오고, 어느 날은 옆구리가 7센티정도 찢어져서 들어온다. 상처가 아물자 티커는 또 나간다. 김하나는 지붕꼭대기를 훌쩍 뛰어넘어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티거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밥과 물과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집을 두고 모험을 찾아 유유히 기와지붕 너머 파란 하늘 쪽으로 사라지던 티거의 모습. 거기엔 경쾌한 박력 같은 게 있었다. 티거는 행복해 보였다."


        다음날 셔틀버스에서 N씨를 만나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책을 읽었는데, N씨가 생각났어요. N씨가 티거예요. 내가 하쿠구요. 하쿠는 모험을 떠났고 행복했어요. N씨도 행복해질 거예요. N씨가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 고양이에게 애인이 있었던 걸까요? N씨에게 자그만 노트를 선물해주려고 계획 중이다.  제일 앞장에 '모험가 고양이의 가출'의 전문을 쓴 말끔한 노트. 그 곳에서 외로워지거나 쓸쓸해지면 '모험가 고양이 티거' 이야기를 읽고 N씨의 모험 이야기를 기록해놓을 수 있도록. 이 책에서 모험 중이었던 티거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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