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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서재를쌓다 2017. 8. 2. 23:04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나쓰메 소세키를 온전히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100년이 더 된 나쓰메 소세키의 이야기가 아직도 잘 읽히고 있는 이유를, 나는 나에게서 찾았다. 나는 <마음>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마음이 되었다.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친구와 싸웠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너는 절대 모른다는 친구의 말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이렇게 말해도 너는 모르는 거야, 라는 마음으로 지금껏 내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건가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아는 친구의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나'는 선생님을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만난다. 나는 선생님을 '발견'하고 단번에 마음에 끌린다.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구애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된다. 선생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나'에게 이런저런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던지곤 했는데, 그 속내는 하 '선생님과 유서'에서 대부분 이해할 수 있다. 선생님이 '나'에게 보내는 길고 긴 편지이자 제목 그대로 유서이다.


       '나'이니까, 등장인물 '나'에 공감이 많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는 선생님이 거니는 마음의 길을 곧장 걷고 있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에 어떤 일을 겪었고, 그 일로 인해 남은 인생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애쓰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그 일은 선생님이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어쩌면 선생님이 시작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혹은 시작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끝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렇게 끝나버린 일이다. 사건 이후, 선생님이 애쓰지 않으며 조용히 살아가면서 그 일들을 끊임없이 떠올려 보는 생각을 해봤다. 그 일의 시작 전 평화로운 시절로 가보기도 하고, 그 일의 시작점에 서 보기도 하고, 그 일의 중간 지점에 서서 그것을 포기해 버린 자신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일의 끝에 서 그 비극을 지켜보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선생님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건 그 당시의 나의 일이기도 해서, 나는 100년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이렇게 마음이 훅 들어와 잘 읽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오늘날의 이야기처럼 생생한 이유에 대해. 


       책도 좋았고, 책을 선정해 준 소윤이도 고마웠다. 전주에 내려가 작은 방에 셋이서 나란히 누워 요를 깔고 잔 것과 다음날 아침, 요를 정리하고 커피를 나눠 마시며 책에 대해 나눴던 시간도 좋았다. 소윤이는 많은 <마음> 중에 현암사 책을 선택한 건 좋은 번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번역인 건 역자의 말, 그러니까 '<마음> 번역을 마치고'만 봐도 알 수 있다. 번역가 송태욱은 역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K에게 감정이입하여 읽으면 선생님의 또 다른 마음이 보인다." K는 선생님이 애쓰지 않고 살게 된 그 일과 관련된 인물이다. 책장에 오래 꽂아두었다가, 불현듯 다시 꺼내 K의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친구와는 그로부터 한 달 뒤에 화해를 했다.


    -


       "난 외로운 사람이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니 자네가 와주는 건 기쁜 일이지. 그래서 왜 그렇게 자주 오는 거냐고 물었던 거네."

       "그건 또 왜죠?"

       내가 이렇게 반문했을 때 선생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얼굴을 보며 "자넨 몇 살인가?" 라고 물었을 뿐이다.

    - 32쪽


       내게는 선생님의 대답이 너무나 평범해서 실망스러웠다. 선생님이 별로 신명이 나지 않듯이 나도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자연히 선생님은 살짝 뒤쳐졌다. 선생님은 뒤에서 "이보게, 자네" 라고 말을 걸었다.

       "그것 보게."

       "뭘요?"

       "자네의 기분도 내 대답 하나에 금세 변하지 않았다?"

       기다리려고 뒤돌아서 멈춘 내 얼굴을 보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 86쪽


        아버지는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앞에 닥쳐오는 죽음 자체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제 곧 나으면 다시 한번 도쿄에 놀러 가야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살아 있을 때 해두는 게 제일이거든."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그때는 저도 데려가주세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어떤 때는 굉장히 쓸쓸해했다.

       "내가 죽으면 부디 어머니를 잘 모셔라."

    - 126-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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