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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포르투, 한낮
    여행을가다 2015. 11. 4. 00:04

     

     

     

     

     

     

     

     

     

     

     

     

     

     

     

     

     

     

     

     

     

     

     

     

     

     

     

     

     

     

     

     

     

     

     

     

     

     

     

     

     

       미술관에서 배를 채운 뒤 크리스털 궁전 정원까지 걸었다. 가이드북의 설명. "바다로 뻗어 나가는 도오루 강 하류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정원의 건물은 16세기에 스포츠 경기장으로 사용되다가 19세기에 철 구조물과 유리를 보수해 크리스털 궁전으로 불린다. 지금은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를 위해 사용된다. 붉은색의 벤치와 싱그러운 가로수길, 푸른 강물, 고혹적인 공작새들 덕에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공작새는 영원과 불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크리스털 궁전 정원을 걸어다니다 영원과 불사의 상징을 보았다. 공작새는 궁전을 마당 삼아 고고한 자세로 느긋하게 걸어다니고 있었다. 공작새를 발견하고는, 신기했지만 조금 무서워서 먼 벤치에 앉아 바라봤다. 그러다가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볼까, 라는 생각에 다가갔는데 그 커다랗고 화려하고 무서운 날개를 활짝 펼치려고 하는 통에 겁이 나서 달아나버렸다. 나는 공작새가 느긋하게 그 큰 정원을 산책하며 돌아가는 게 무척 신기해서 눈을 떼질 못하겠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더라. 그만큼 이 곳에서의 공작새는 친숙한 가 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도우루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으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강물이 소리없이 흘러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역시 도시엔 강이 있어야 해. 조용한 나무 숲 아래 벤치에 앉아 자우림의 노래도 들었다. 좋다좋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원에서 나와 또 부지런히 걸어 불량 시장에 갔다. 가이드북의 설명. "1850년에 신고전주의로 지어진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생선 가게, 정육점, 과일과게, 꽃집 등이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들러 여행 중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해도 좋다. 상점들 사이에는 아케이드가 있고 2층에도 지붕이 있어 비가 와도 걱정 없이 쇼핑할 수 있다." 사실 불량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았다. 2층까지 있다고는 하지만, 2층에는 가게들이 얼마 없었다. 그래도 시장 구경은 늘 신나니까. 시장에서 엄마에게 줄 말린 과일.견과류도 한 봉지 사고, 좋아하는 맥주 마그네틱 자석도 사고, 친구에게 줄 앞치마 선물도 샀다. 정어리 요리를 파는 곳이 있길래 내일 점심에 와서 먹어보자고 계획을 세워 두기도 했다. 포르투갈 꽃도 구경하고, 포르투갈 마늘도 구경하고, 포르투갈 과일도 구경했다.

     

       시장을 나와서 너무 덥고 지쳐서 이제 숙소로 들어가서 좀 쉬자고 생각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데, 아까 찜해둔 와인가게의 간판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 간판에 의하면 지금이 해피타임! 와인이 할인되는 시간이다. 가게 앞에서 망설이다 결심하고 들어갔다. 어제 너무 세서 즐기기에 실패했던 포트와인을 덜 피곤한 상태에서 다시 먹어보기로 했다. 화이트 포트와인 한 잔을 시키니 올랜드 볼룸을 닮은 직원이 되물어봤다. 정말 포트와인을 원해? 이거 19도야. 정말이지? 화이트가 맞고? 예스! 예스! 예스! 더 많은 얘길 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딸리니. 블룸은 친절했다. 옆 테이블의 외국인에게도, 내게도 와인이 괜찮은지, 부족한 건 없는지 물어봐줬다. 계산을 할 때 블룸이 물었다. 포트 와인 어때? 나는 고민하다 말했다. 스트롱! 이제 확실히 알았다. 포트와인은 너무 세고, 내게는 맞지 않다는 걸. 그래도 한 잔을 다 마셨다.

     

       낮와인도 마셨고 알딸딸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포르투의 구름들이 내게로 모두 몰려드는 것 같았다. 구름들이 마구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에 길가의 가게에서 엽서를 고르고 있는데, 한 동양인이 와서 물었다. 한국인이시죠? 그래서 나도 구름들이 마구마구 움직이는 카르무 성당 앞에서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동양인에게 가서 물었다. (사실 나는 그 아이를 오늘 세 번째 보는 거였다. 볼 때마다 아이는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한국인이시죠? 제가 찍어드릴까요? 아까도 봤어요. 셀카찍고 있는 거요. 그 아이는 뭔가 싶었을 거다. 얼굴이 새빨간 나이 많은 누나가 갑자기 와서 아까부터 봤다면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으니 식겁했겠지. 딱 봐도 스무살 같았다. 아이는 당황하며 아..니요, 괜..찮아요, 하면서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 뒤 인터넷 카페에서 한 번의 시도를 더 했으나 동행은 구할 수 없었다. 혼자다닐 운명이라 생각하고 바로 포기했다. 구름들이 마구마구 움직이는 포르투의 하늘 아래 이 나이 많은 누나는 혼자서 얼큰하게 취해 한낮에 신나서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 창가에 의자를 가져다두고 앉아 스펙터클한 구름들을 올려다 보면서 마구마구 즐거워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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