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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드디어 포르투
    여행을가다 2015. 10. 3. 18:21

     

     

     

     

     

     

     

     

     

     

     

     

     

     

     

     

     

     

     

     

     

     

     

     

     

     

     

     

     

     

     

     

     

     

     

     

     

     

     

     

       2015년 7월 6일 월요일. 리스본을 떠나면서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ㅇ 포르투에서는 펜 한자루를 사자.

    ㅇ 첫날은 주변산책만 하자. 맛집을 찾지 말자. 물과 간식을 가득 사두자.

    ㅇ 웃고 다니자. 먼저 인사하자.

    ㅇ 주문을 포르투갈어로 하도록 노력하자.

    ㅇ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자.

     

      결국, 이 항목들에 두 개의 동그라미, 한 개의 엑스, 두 개의 세모가 그려졌다. 리스본을 떠나 포르투에 도착했다. 동생과 여행을 계획할 때 리스본보다 포르투를 더 기대했더랬다. 우리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리스본보다 포르투가 더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은 도시라 걸어서만 다닐 수도 있고, 리스본보다 좀더 본래의 포르투갈의 모습을 더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동생이 회사에 말해 휴가를 더 늘리고 여행사에 일정을 더 늘리겠다고 했을 때 늘어날 일정은 모두 포르투였다.

     

      리스본을 떠나 포르투에 도착했다. 포르투의 주황색 지붕들을 열차 안에서 내려다보는데, 안심이 됐다. 여기서라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의 오래된 지붕들이 기분좋게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리스본은 한밤에 도착해서 아무래도 겁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그 첫 느낌이 고스란히 여행에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포르투를 이렇게 반짝이는 낮에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이곳에서 좋은 일만, 좋은 기억만, 좋은 생각만 하게 될 좋은 징조라는 생각을 한낮의 기차 안에서 했다. 반갑다, 포르투. 잘 부탁한다-

     

       하지만 안심하면 내게 항상 사건이 벌어졌었지. 나는 상벤투 기차역에서 나와 바로 코 앞에 있던 상벤투 지하철역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결국 짐도 있겠다 가까우니 택시를 탔다. 리스본의 택시도 정직했으니 포르투의 택시로 정직할 거라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고보니 두 배의 택시비를 계산한 것 같았다. 으씨. 계산하는 순간, 속는 줄 알고 있었지만, 뭐라 말 할 수 없었던 심정. 그저 오브리가다, 라고 했다. 바보병신.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문이 특이했다. 옛날 건물을 리모델링한 호텔이었다. 겉문을 직접 수동으로 열고 타야만 하는 엘리베이터였다. 이런 엘리베이터는 처음이었다. 영화에서만 봤었지. 신기하면서도 신났다. 그리고 방문을 여는 순간, 망할 놈의 택시비 바가지 근심따위는 사라졌다. 방은 오래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책상, 창틀, 붙장이장 모두. 커튼을 여니 한 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창이 나타났다. 창 밖으로 커다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방은 리스본에서도 그렇고 포르투에서도 3층이었다. 와,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너무 좋다, 너무 좋아.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동생이 휴가를 연장하고 포르투 일정을 추가한 거라 같은 숙소 예약을 두 번 한 거였다. 처음 건네 받은 카드키 종이 체크아웃 날짜가 처음에 예약한 날짜라는 걸 나중에 발견하고 예행 연습을 해 본 뒤에 데스크로 내려갔다. 고풍스러웠던 엘리베이터는 체크인할 때와 체크아웃할 때 딱 두번만 이용했다. 짐이 없을 때는 오래된 계단을 이용했다. 계단을 내려가 준비했던 말을 천천히 이어갔다. 실례합니다. 예약을 두 번 했어요. 이 방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계속 이 방에서 머물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나중에 카드키가 작동하지 않아 다시 데스크에 내려가야 했지만.

     

        포르투에서는 좀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배가 고팠으므로 채비를 하고 내려왔다. 데스크의 직원에게 좋은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직원이 어떤 종류의 식당을 원하느냐고 했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가이드북에서 찢어낸 꼭 먹어봐야할 포르투갈 음식 리스트에서 프랑세지냐 그림을 보여줬다. 이게 먹고 싶어요. 좋은 식당이 있다고 했다. 식당 이름은 루소. 식당 이름을 프랑세지냐 그림 아래에 적어줬다. 그리고 가는 길을 설명해줬다. 나는 포르투에 오면서 결심한 계획대로 오늘은 이른 저녁을 먹고, 리스본에서 내내 설쳐서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푹 잘 예정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식당으로 걸어가는 풍경도 좋았다. 기분도 좋았다. 루소 발견! 아직 저녁시간 전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리를 잡고 계란이 올라간 프랑세지냐와 포르투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두구두구. 드디어 내가 포르투 와인을 맛본다구. 흠. 포르투의 첫 식사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프랑세지냐는 맛있었다. 혼자 먹기엔 양이 많긴 했지만. 포트 와인은 정말 셌다. 와인보다는 위스키 류의 맛이 많이 났다. 한 잔을 다 마시니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오브리가다. 계산을 하고 나서 잡화점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포르투에서 하고자 했던 두번째 일을 했다. 물과 간식 가득 사기. 뭐가 뭔지 모르니까 대충 보고 샀다. 일단 물. 혹시 배고플 지도 모를 순간을 대비해 빵. 저렴한 와인 한 병도. 오렌지 주스인 줄 알고 샀던 페트병의 정체는 농축액이었다. 당연히 다 마시지 못하고 포르투를 떠났다. 치즈도 사고, 맥주도 샀다. 첫날 산 물건들을 반은 먹고 반은 먹질 못해 남긴 음식들은 한국에 그대로 가져왔다.

     

        쇼핑을 잔뜩 하고 느릿느릿 걸어 숙소 근처로 왔는데, 아주 예쁜 옅은 분홍색 빛깔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슈퍼복'이라고 맥주 이름이 적힌 가게였다. 숙소에 들어가 바로 잘 예정이었으니, 맥주 한잔을 하고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기자기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게에 들어섰다. 늦은 오후였고, 해는 한창이었다. 여긴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지니까. 들어가보니 간판만 아기자기했고, 가게 안은 우중충했다. 술독에 빠진 것 같은 할아버지와 아저씨만 있었다. 영어도 통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던 맥주를 뜻하는 단어 '세르베자'를 말해봤지만, 내 발음이 구려서 주인 아줌마가 알아듣질 못하고 폭풍 포르투갈어를 쏟아내셨다. 나는 조그맣게 말했다. 비어, 플리즈. 옆에 있던 술독에 빠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도와주셨다. 아마도 맥주를 줘, 일 듯.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아저씨는 내가 떨어뜨린 카메라 렌즈 뚜껑을 일어나 주워줬다. 무뚝뚝한 주인아주머니는 뭐라고 계속 떠들어대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당연하지. 내가 포르투갈어를 뭐 안다고. 커다란 냉장고에서 엄청난 슈퍼복 병을 꺼내신다. 아, 평소라면 당연하게도 저걸 마셨겠지만 어제 나는 3시간 밖에 자질 못했으므로. 그리고 방금 엄청 센 포트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왔으므로. 스몰, 플리즈. 힘없이 말했다. 미니병은 정말 작았다. 컨디션 좋은 나라면 원샷할 수 있는 양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틀어놓은 티비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날이 이리 밝은데. 여긴 뭐지? 그런데 이상하게 편안했다. 좋았다. 미니병을 탈탈 털어 마시고, 가게를 나왔다. 오브리가다, 차우.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까지 새벽에 잠깐 깬 것을 제외하면 세상 모르고 쿨쿨 잤다. 시차 적응도 됐고, 이 숙소도 완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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