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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리스본, 벨렝지구
    여행을가다 2015. 8. 3. 21:50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천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시켜놓고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중국인을 봤다. 중국인은 아이 러브 리스본이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신이 나서 양 손 가득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다. 리스보아 카드를 사러 인포메이션 부스에 갔는데, 2일권을 사려고 하니 2일권 사지 말라고 한다. 내일이 일요일이고, 일요일은 대부분의 입장료가 무료란다. 착한 청년이다! 그래서 1일권을 샀다. 카드 뒷면에 이름을 쓰고, 사용 시작 시간을 적었다. 야호, 앞으로 24시간 동안 나는 이 카드 하나로 리스본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하여 처음 트램 탑승. 벨렝 지구로 가는 15E 트램은 신식이다. 길고 깨끗하다. 출발하는 정류장에서 타서 자리에 앉았다. 솔솔 새어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낮의 리스본 풍경을 구경했다. 당연하게도 건물들이 있었고, 나무들이 있었고, 도로가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고, 하늘도 있었고, 구름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신기했다. 트램에서 당연히 안내방송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내 방송이 없었다. 처음엔 이 사실을 알고 당황했는데, 보니 대충 보고 내리면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내리는 곳에. 나의 첫번째 목적지는 제로니모스 수도원. 벨렝 지구는 대항해 시절 영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때 바다를 헤치고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떠났던, 부강했던 나라, 포르투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왕의 무덤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끝없는 시도 끝에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쿠 다 가마의 성공적인 귀환을 위해 증축한 건물이란다. ㅁ자로 되어 있는데, 들어가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웅장하고 화려하고 섬세하다. 수도원 안은 시원했다. 나는 한바퀴 둘러보고 출구를 찾지 못해 계속 걸었다. 분명 아까 걸었는데, 처음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미로같은 수도원이었다. 천장도 보고, 한복판의 푸릇푸릇한 정원도 보고, 아줄레주가 있는 벽도 봤다. 엽서도 몇 장 샀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다, 겨우 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어갔다. 성당에는 결혼식이 준비 중인 것 같았다. 수도원을 걷는 동안 화음을 맞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두어번 들려왔는데, 그건 모두 성당에서 울려 퍼진 거였다. 성당의 입구에 두 개의 석관이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하나는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의 무덤, 또 하나는 시인 카몽이스의 무덤이란다. 이 무덤들을 뒤로 하고 준비 중인 결혼식.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고요한 공간. 그 곳에 잠시 서 있다 나왔다.

     

       그러니까, 지도를 다시 보게 됐다. 수도원을 나와서 테주 강 쪽으로 조금 걸어가 볼까, 싶었는데 걷다 보니 발견기념비가 보였다. 기념비에서 오른쪽으로 뭐가 보이네, 조금만 걸어가 볼까, 하니 벨렝탑이었다. 지도 상에서는 거리가 있다 싶었는데, 왠걸 아주 가까웠다. 리스본은 작은 도시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발견 기념비에는 대항해 시대의 대표 인물들이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다. 사실 가이드북에서 봤을 때는 재미 없을 것 같았는데, 꽤 재밌었다. 조각들의 표정이며 동작들이 흥미로웠다. 그 중 유일한 여자가 있어, 책을 뒤적거려 봤는데 필리파 렝카스트 여왕으로 유일한 여자 승선원이이었단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 있었던 무덤의 주인공 루이스 카몽이스도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전투에서 한 쪽 눈을 잃은 시인이다. 조각되어 있는 사람들, 이들이 바다를 헤치며 막 떠났을 때,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절망을 느꼈을 때, 그리고 그 바다의 끝에서 자신들이 떠나온 것과 다른 지평선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발견 기념비 광장에는 '바람의 장미'라는 나침반이 있다. 커다란 나침반 안에는 세계지도와 대항해 시절 항해 항로가 표시되어 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라에 발을 디디고 사진을 찍는 곳. 나도 우리나라 근처에 발을 디디고 사진을 찍었다.

       

       벨렝 탑은 테주 강 하구에 위치한 요새였던 곳. 이 곳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처럼 보인다 해서 '테주 강의 귀부인'이라 불리는 곳이다. 탑 위까지 올라가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계단이 딱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너비다. 올라갈 수만 있는 시간, 다 못 올라가서 근처의 층으로 재빨리 피신해야 되는 시간, 내려갈 수만 있는 시간, 다 못 내려가서 근처 층에서 대기해야 되는 시간. 계단에는 이렇게 네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그래서 삐삐삐삐-(서두르라구)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막 조급해진다. 그렇게 올라간 탑. 곧 바다를 마주할 하구라 그런지 강은 더 바다 같았다. 바닷바람 같은 강바람이 마구마구 불었다. 저 아래 사람들이 콩알 같이 조그마했다. 벨렝 탑은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자 본래 요새였던 용도를 잃고 세관, 우체국, 등대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단다.

     

       그리고 이제 가까운 걸 아니까, 다시 제로니모스 수도원 쪽으로 가서 리스본에서 제일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으로 걸어갔다. 사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문제는 햇볕이다. 더위다. 7월의 포르투갈은, 정말이지, 생전 처음 쬐어보는 햇볕을 내게 선사해줬다. 습기 따윈 1프로도 없다. 갓 한 빨래를 탈탈 털어 널어 놓으면 1시간 안에 비스킷처럼 바삭 잘 마를 것 같은 햇볕. 하루 만에 내 발은 슬리퍼의 무늬 그대로 탔다. 때문에 무척 지쳤지만, 신나기도 했다. 처음 겪는 포르투갈은 내게 처음 겪어보는 더위도 선사해 주는 구나 싶어서.

     

       에그타르트 가게 이름은 파스테이스 지 벨렝. 제로니모스 수도원 바로 옆에 있다. 포장해가는 사람들로 입구가 북적거렸다. 듣던대로 인기가 많구나, 생각하며 쭈빗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고 갔는데, 간단할 것 같았던 메뉴판이 어마어마했다. 왜 원래 맛집에 가면 잘하는 딱 그 음식만 팔지 않나. 그래서 이 집 메뉴판이 단출할 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많은 걸 팔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에그 타르트' 라는 단어를 찾고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없다. 다음 페이지에도 없다. 그 다음 페이지에도 없네. 여기가 빵 코너인 것 같은데, 에그 타르트는 없네. 결국 직원을 불러 말했다. 에그 타르트? 직원이 한심하다는 듯 매니? 라고 물었다. 나는 쓰리, 라고 말하고 콩 비카, 라고 말했다. 비카는 내가 아는 유일한 포르투갈어 커피 메뉴. 아메리카노가 포르투갈어로 뭔지 모른다. 사실 아메리카노는 없는 것 같아. 포르투갈에는. 나중에 가이드북을 보고 알았지. 에그 타르트가 포르투갈어로 '나타'라는 걸. 아무튼 비카 한 잔과 나타 세 조각이 왔다. 더위에 지치고, 외로움에 지친 나는 나타 하나를 들고 빠른 속도로 해치웠다. 아, 맛있다. 정말 맛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아까 직원이 설탕도 뿌려 먹고, 계피가루도 뿌려 먹으라고 했지. 뿌려 먹었다. 아, 이것도 맛있다. 비카에 같이 나온 설탕 봉지의 설탕을 다 털어 넣어 놓고 휘휘 저었다. 한 모금 마셨다. 맙소사. 에스프레소가 이런 맛이었어? 그 뒤로 어디를 가든 비카만 시켜 마셨다. 공항에서도 마지막으로 시킨 게 비카 한 잔이었다. 원래 단 거 좋아하지 않는데, 단 게 몸에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혼자여서 외로웠던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이제 토요일만 연다는, 그러니까 오늘이 아니면 갈 수 없는, 도둑 시장으로 가보자, 고 가게 문을 나서며 결심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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