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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리스본 도착
    여행을가다 2015. 7. 21. 22:47

     

     

     

     

     

     

     

     

        마침내, 리스본에 도착했다.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동안 공항에서 기다리고 또 3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나는 두 번 시간을 고쳐야 했던 거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번, 리스본에서 한 번. 손목시계의 오른쪽 버튼은 건전지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는 한 뽑아 들 이유가 없었는데. 무려 하루에 두 번이나 오른쪽 버튼을 들어올려 시간을 고쳤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긴장했다. 원래 리스본 공항에 떨어지기로 한 시간은 22시 50분. 이 시간에 정확하게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더랬다. 버스는 없고, 지하철이 있는데, 내가 과연 시간 지체없이 갓 도착한 도시에서 지하철을 제대로 갈아 탈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이건 환승 다음으로 내게 커다란 걸림돌이었는데, 인천공항 근처에 살아서 나를 배웅해 준 (나중에 마중까지 나와줬다) B가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해줬다.

     

    - 언니 그냥 택시 타. 유럽 지하철이 좀 무서워. 그 시간은 포르투갈도 아마 무서울 거야.

     

       B는 유럽의 여러 도시를 혼자 여행한 나의 선배.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나의 선배. B의 말을 듣고 바로 택시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더군다나 비행기가 지연되었으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B는 출국 전날 악명높은 유럽의 소매치기 무용담을 인터넷 카페에서 폭풍 검색해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에게 더욱 심한 공포심을 안겨 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언니 소매치기보다 집시를 조심해, 가 그 대화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에 힘을 실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B는 시간만 맞았으면, 부산에 가듯 포르투갈에 나와 같이 갈 뻔 했으며, S는 저렴하고도 셀카가 아주 잘 나오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고심에 고심에 고심 끝에 골라 주었다. Y는 많이 걸어다니라며 생일 맞이 여행 맞이 하얀색 예쁜 운동화를 선물해주었다. 포르투갈어 수업을 같이 들었던 루씨 언니는 (나는 무려, 쏘피였다!) 바뀐 내 카톡 사진을 보고 오랜만에 연락해와 할 수 있다고, 걱정할 것 없다며 격려해 주었고, 여행 직전에 간 단골 미용실의 주인 언니는 한껏 들떠서 포르투갈 물을 보고 오라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클럽에 가 미친듯이 놀다 오라며, 물이 좋으면 자기도 뒤따라 가겠다며 신나하며 내 머리를 아주 천천히 정성들여 잘라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설레여 했다. 마치 자기가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같은 말을 해줬다. 힘이 됐다. 정말, 힘이 됐다. 유럽을 혼자 두 번 다녀온 막내는 디테일한 조언들을 건네주었고, 함께 계획한 여행이었으나 함께 하지 못한 둘째는 여행 찬조금을 두 배로 했다. 우리 세 자매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찬조를 하는데, 금액은 5만원이다. 그런데 둘째가 말도 없이 10만원을 입금해줬다. 흑흑-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나홀로 포르투갈 여행을 도와줬다.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가자. 리스본의 공항에서 나는 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의 디테일한 조언에 따르면, 한국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말을 걸어야 했다. 특히 혼자 있는 사람은 무조건. 그런데 막내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 나라로만 여행을 갔던 것이다. 여기는 한밤의 리스본. 동양인은 서너 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옆옆에 앉았던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비상구 좌석. 그러니 완벽한 좌석이었지만, 나의 상태는 비몽사몽했다.) 빨간바지의 멋쟁이 외국인도 짐을 찾아 떠나갔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나와 함께 인천에서부터 날아 온 형광색 캐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빙빙 도는 짐들 사이에서 그 녀석을 발견한 기쁨이란.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유일한 나의 친구였구나. 친구 형광이를 발견하고, 벨트에서 끄집어 내고, 손잡이를 꺼내 끌고, 사이다(Saida 출구)로 나가는 동안 되뇌였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별 것 아니야, 이 야밤에 낯선 도시에서 혼자, 충분히 숙소까지 갈 수 있어.' 

     

       밤이 늦은 지라 모두들 택시를 탔다. 택시 승강장은 붐볐고, 줄 사이에 서 있는 내내 긴장했다. 내내 별 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내 차례가 왔고, 승강장에서 택시를 안내하던 아저씨가 내 택시를 가르켰다. 나는 재빨리 캐리어를 끌고 갔다. 좀 나이든 분이었음 했는데, 젊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내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숙소 이름을 말하며 그 호텔을 아냐고 영어로 물었다. 앵앵- 내 목소리는 모기소리 같았다. 작디 작았다. 이 낯선 도시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근육청년은 과묵했다. 나는 숙소 주소가 인쇄된 종이를 보여줬고, 청년은 주소와 숙소 이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종이를 조용히 내게 넘겼다. 바가지는 분명 쓸 거야. 그냥 두 배를 낸다고 생각하자, 고 마음 먹었다. 택시에는 포르투갈 라디오 심야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인사말 밖에 모르는 주제에 포르투갈어 선생님이 라디오를 많이 들으라는 말을 잊지 않고 (문법 공부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말도 했었지만) 일을 하면서 이어폰으로 열심히 들었던 포르투갈 라디오. 내가 낮에 들었으니, 포르투갈에서는 밤의 라디오였을 거다. 그러니, 바로 '그' 방송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내 눈 앞에 리스본의 야경이 펼쳐졌다. 오래된 유럽의 건물들, 그 건물을 이루고 있는 돌틈 사이를 비추는 주황색 조명들, 중간중간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 그 속의 사람들, 'Ola'라고 인사하는 간판들, 뜻 모를 표지판들. 그러는 사이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 도시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아는 곳도 하나 없다. 내가 이런 생소한 곳에 와 있다. 영화에서 보았던 곳. 책에서만 보았던 곳. 그래, 될대로 되라. 생소한 감격에 차 있는 사이 익숙한 지하철 역 표지판이 지나갔다. Martim Moniz 역. 어라, 그럼 숙소에 다 온건데.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는 사이 또 한번의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Mundial 호텔. 내가 리스본에서 3일 밤을 묵을 숙소. 과묵근육청년은 도착을 해도 말이 없었다. 청년이 호텔 간판을 보고 손짓을 했다. 나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미터기를 한 번 눌렀고,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바가지라고. 왜 미터기를 누르겠는가. 이미 숫자는 나와 있었는데. 그런데 미터기를 누르고 내게 보여준 숫자는 무척 적었다. 나중에 나는 국제우표를 10장 샀는데 그것보다 택시비가 더 쌌다. 리스본이 공항과 시내 사이의 거리가 짧다고는 했지만, 포르투갈이 물가가 저렴하다고는 했지만, 나는 순간 알았다. '이건 바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준비한 멘트는 했다. 리시트, 플리즈. 포르투갈에서는 택시에서 영수증을 달라고 해야 바가지를 씌울 수 없단다. 리시트? 근육청년은 수줍게 종이를 꺼내더니 직접 볼펜으로 숫자를 적어 내게 건넸다. 나는 그 순간, 이 종이가 바가지 요금이든, 아니든 내게 엄청난 기념이 될 거란 걸 알았다. 내가 유럽에 왔다. 그렇게 바라던 리스본에 왔다. 그것도 무사히. 근육청년은 트렁크 문을 열고 캐리어를 꺼내 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오브리가다. 

     

       내가 두 달동안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가장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말. 근육청년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오브리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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