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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리스본, 알파마지구
    여행을가다 2015. 8. 16. 08:46

     

     

     

     

     

     

     

     

     

     

     

     

     

     

     

     

     

     

     

     

     

     

     

     

     

     

     

     

     

     

     

     

     

     

     

        7월 5일 일요일. 리스본에서 맞는 세 번째 새벽. 새벽 네시에 깼다.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잘' 잔 탓에, 일찍 잠이 깼다. 몸은 피곤한데, 잠을 길게 자질 못하고 자꾸 중간에 깬다. 잠깐씩 숙면하는 건가. 꿈을 꿨는데 사람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며 밤새 노는 꿈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주문할 때랑 길 물어볼 때만 빼면 거의 얘기를 못했네. 숙소에 욕조가 있어서 피로도 풀 겸 아침 반신욕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 <환상의 빛> 딱 한 권만 읽었다. 욕조에 들어가 몇 페이지를 읽었다. 슬픈 내용인데,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거야, 토닥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7시 땡 하자마자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숙소 앞에 트램 출발하는 정류장이 있어 트램이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한 두명의 사람이 트램에 오르는 걸 내려다 보면서 아침을 먹었다. 어제 산 리스보아 카드가 10시에 종료되어서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알파마 지구에 가 보기로 했다. 알파마 지구는 리스본 대지진에도 견고한 암반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리스본 달동네'라고 불리는 지역인데, 한때는 낡은 이 지역을 허물고 개발을 하려고 했단다. 다행스럽게도 개발하지 않고, 낡은 곳을 보수해가면서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고 한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거닐면서 리스본의 알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리스본은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도시. 어제 돌아다니며 느낀 바, 리스본은 크지 않아 충분히 걸어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는 도시지만, 언덕이 문제다. 오르막길이 많으니 거리는 짧지만 힘이 많이 든다. 그래서 트램이 유용하다.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조금 힘들다 싶을 때 트램을 타면 금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알파마 지구는 관광지도 많고, 트램이 좁은 골목길을 건물과 닿을 것 같이 가깝게 지나가서, 여러모로 인기가 많다. 때문에 소매치기도 많다고 했다.

       

        카드 종료 시간도 있고 해서 일찍 28번 트램에 탔다. 아침의 트램은 선선하고 한산했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않았다. 트램이 움직일 때마다 오래된 나무 소리, 오래된 기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오래된 풍경들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아, 좋았다. 웃음이 절로 났다. 그라샤 성당 뒤로 조금 한산한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정류장에 앉아 계시는 아주머니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콩리쎈-샤. (가이드북을 내밀며) 엥 끼 후아 에스따무-스? 사실 못 알아 들으실 줄 알았는데, 우아, 알아 들으시고 가이드북을 자세히 들여다보신다. 그리고 저쪽이라고, 저쪽으로 쭉 가라고 알려주신다. 아, 오브리가-다! 아침부터 신이 났다. 지금 나는 알파마 지구를 걷고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설레여 하며 찾아본 여행 프로그램 영상에 나왔던 그 알파마 거리. 좁은 골목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이 보이고, 선명한데도 세월에 바래버린 색깔들이 보이는 이 곳. 아침의 그라샤 전망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개와 함께 아침 산책을 나온 여자,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는 북치는 예술가들, 가판 주위를 청소하고 계시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리고 주황색 지붕들. 와, 태양의 빛깔을 닮은 유럽의 지붕들이 보였다. 전망대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두어 곡 듣고, 바로 옆에 있는 그라샤 성당에도 들렀다. 그리고 더 위쪽에 있는 솔전망대까지 느릿느릿 걸어 올라갔다. 중간에 성당이 보이면 들어갔다.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 그들의 일상을 잠시 함께 했다.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인상적인 성당의 벽면 조각상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고, 또 걷고, 또 들리고, 또 걷고. 그렇게 솔전망대에 도착했다.

     

        솔 전망대에서는 그라샤 전망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테주강이 보였다. 테주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바다와 같은 풍광을 내뿜고 있었다. 해가 얼마나 강렬한지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바람이 불어 그리 덥지는 않았다. 전망대에 서서 풍경을 한참 내려다 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왔던 숙소가 이 근처일 것 같은데. 누군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그 곳을 아느냐고. 그 영화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다고. 전망대 한 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아저씨가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을 연주했다. 내 옆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외국인은 바람을 만끽하며 웃고 있었다. 아, 여기도 좋다. 좋구나. 연주를 마친 아저씨의 기타 케이스에 동전을 넣었다. 솔 전망대에서 수퍼복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저걸 마셔야겠어! 그런데 마시면 마시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야 될 것 같았다. 화장실을 먼저 해결해야 해서, 할 수 없이 유료 화장실에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유료 화장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아주머니 바로 옆에 있는 칸으로 들어갔다. 깨끗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들어왔을 때 라디오 주파수를 손 보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보고 있을 때 제임스 므라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화장실을 나와 생맥주 큰 걸로 하나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늘 자리는 사람이 꽉 차 있어, 뭐 어때 싶어 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자리에 앉았다. 더웠지만, 시원했고, 그만큼 맥주맛도 최고였다. 이어폰을 꺼내 음악도 듣고, 일기도 쓰고, 엽서도 썼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맥주도 한 잔 했겠다. 기분도 좋겠다. 경계심을 풀고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이어폰에서 투개월의 로맨틱이 흘러나왔다. 아이 신나. 기분 최고. 그래, 가보자. 대성당으로. 신나서 걷고 있는데, 중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엇, 저긴 어디지? 좋은 덴가 보다, 대성당 가기 전에 저길 가볼까, 생각하며 가이드북을 꺼내 어디인지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 곳은 상 조르제 성이었다. 결국엔 가지 못한 곳. 가이드북에 의하면 '세월을 지켜보고 있는 신의 존재처럼 리스본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가보고 있는 곳'. 일출도 일몰도 최고란다.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외국인 언니 두명이 나에게 왔다. 나는 술도 먹었고, 기분도 좋았고, 외로웠는데, 그 언니들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줬다.

     

      언니들이 물었다.

    - 너 영어 할 줄 아니?

       내가 말했다.

    - 아니. 잘 못해.

    - 그럼 너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니?

       이때 알았어야 했다. 영어 못하는 애를 굳이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 화려한 차림의 언니들이었다.

    - 잘 모르겠어.

       언니들이 자기들 지도를 보여줬다. 낡았는데, 아주 커다랬다. 접혀져 있던 지도를 언니들이 펼쳐줬다.

    - 한번 봐봐. 혹시 너도 지도 있니?

    - 응 있어. 근데 내껀 작은 지도야.

    - 꺼내봐. (한 언니가 옆의 언니에게) 작은 지도래.

     

       그렇게 그들은 내 가방을 열게 했다. 그리고 내가 자기네 큰 지도를 들여다 보는 동안 한 언니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이때도 나는 몰랐다. 이 언니들이 진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 열 명 정도 되는 경찰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다가왔다. 나한테 물었다. 

    - 너 괜찮아? 없어진 거 없어? 너 지금 얘들한테 당하고 있는 거야. 가방 봐봐. 없어진 거 없는지. 

       맙소사! 정말? 다행히 없어진 건 없었다. 나는 굉장히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인터넷 카페에서 이런 소매치기 사건들을 열심히 읽은 탓에 오늘 쓸 돈만 가지고 나왔고, 그것도 가방 여기 저기에 나눠서 넣어뒀었다. 그 언니들이 나도 모르게 슬쩍 가져갔어도 푼돈이었을 거다. 그런데, 맙소사.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친절한 리스본의 경찰 청년은 나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없어진 게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물었다나는 괜찮다고, 없어진 것도 없다, 조심하겠다고, 고맙다고 했다. 경찰 한 명이 언니들의 신분증을 뺐었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도둑들이 확실하다고 뭐라뭐라 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엔 이 언니들이 자기네는 외국인이라고 했는데, 신분증을 보니 리스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한 언니가 소리쳤다. 

    - 얘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아, 빡 도네. 니가 먼저 말 걸었잖아! 아, 이럴 때는 영어가 잘도 나왔다.

     

       결국 모든 여행이 끝나고 여행을 되돌아 봤을 때, 이 사건이 여행의 초반에 일어났던 이유, 결국 없어진 게 하나도 없었던 이유, 등을 나 나름대로 합리화했다. 이건 너무 마음을 놓지 말라고, 조금 더 조심하고 다니라는 포르투갈의 배려였다고. 그래서 리스본의 마지막 밤이 좀 아쉽게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나름의 추억이 하나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 전날 소매치기의 각종 유형에 대한 글을 몇 페이지 넘게 읽다 갔는데도 당할 뻔 했다. 그러니, 소매치기의 수법이 뻔한데 그걸 당했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다. 아무튼 아무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원래 트램에서 봤던 작은 가게에 들러 맥주 한잔을 더 하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서둘러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 다른 길로 내려왔던 탓에 시내까지 걸어가는 길이 생소했다. 대낮인데도, 무서웠다. 아, 조심하자, 조심하자, 생각했다. 

     

     

     

    어찌되었건 좋았던 알파마 지구의 28번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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