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경주

from 여행을가다 2016. 1. 3. 13:30

 

 

 

과감하게 케이티엑스 / 무인호텔 무인무료조식서비스 / 경주에 오래 살면 이 능들을 보고도 무뎌질까 / 교리김밥 줄 계란냄새 / 니 하오, 양동마을 새해 무료 / 콜로세움 스타벅스 로스트넛츠라떼 / 익숙한 새벽 세시 / 녹두전과 해물순두부, 막걸리 / 무서운 불국사 콜택시 / 성호리조트 별들 / 세 명이지만 방 안 바꿉니다 / 포르투갈 와인 개봉 / 아침목욕 / 꽃청춘 아이슬랜드 / 바글바글 불국사 / 다음에는 아리수관광호텔 / 부의 끝은 스스로 만족하는 데 있다, 극락전 / 석가탑은 7월 이후 / 벌써 새순 / 9와 숫자들 방공호 / 도솔마을 정식, 동동주 / 커피플레이스 에스프레소와 딸기주스 / 봉황대의 노을 / 신경주역 기념품 쇼핑 / 소시지와 맥주 / 첫 로드무비 완성 / 또 보자, 경주

 

케이티엑스 안에서. 케이티엑스 매거진.

새해 소망이 담긴 요리 / 스페인 포도 열두 알

12월 31일 자정, 새해의 행운을 비는 전통 행사 라스 우바스가 열린다.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포도 열두 알을 먹는데, 소리가 한 번 울릴 때마다 포도를 한 알씩 계속해서 삼키며 새해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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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출근을 하고 함께 밥을 먹는데, 내게 '혼자 여행을 가게 된 게 운명인 것 같아요' 라고 말해준 동료가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는 여행의 감흥이 아직 엄청날 때였으니까 (오랫동안 염원하던 그곳을 혼자서 무사히 다녀오다니!) 신이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동료가 하품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물론 그녀는 당시 만삭이었고, 자주 피곤해했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을 때에도 늘 피곤해했다는) 조회시간에도 팀장님 앞에서 하품을 하곤 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여행담을 마무리했다. 그 뒤 내가 여행을 간 줄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들이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그 하품을 떠올렸다. 그래, 처음엔 흥미롭다가 길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 그렇다고 믿고 싶다!) 지루해질 수도 있겠지. 그만 듣고 싶은데 그만 듣고 싶다고 얘기 못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나의 찬란했던 여행담을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누군가 물어보면 되도록이면 짧게 말했다. 좋았어. 외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좋았던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 또 가고 싶다. 이 정도로 끝냈다. 그렇지만, 내 기억이 점점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끝까지 들어줄 수 있고, (자기도 모르게)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중간에 하품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래서 이곳에 최대한 세세하게 풀어냈다. 물론 여행기가 길어질수록 나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뒷날의 이야기는 충분히 자세히 쓰지 못했지만.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하품을 하지 않고, 지루하다 생각하지도 않고, 끝까지 잘 읽어주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니,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다.

 

   포르투 공항에서 마지막 엽서를 썼다. 엽서와 우표가 한 장씩 남기도 했지만, 첫 엽서를 쓸 때 그러기로 다짐했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7월의 내가 한국에 있을 7월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생각,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자는 말 등을 적었다. 그리고 공항의 우체통에 넣었다. 수속을 하고 들어와선 동생들이 부탁했던 에그타르트와 커피가루를 사고, 남은 동전으로 비카,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켰다. 높은 테이블에 커피를 올리고, 높은 의자에 올라가 설탕을 탈탈 털어넣고 휘휘 저어 천천히 마셨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커피. 쓰지 않고 달달했다.

 

    여기 쓴 여행기는 실제 그대로가 아니다. 나는 이처럼 씩씩하고 단단하게 여행하지 못했다. (내 기준에선 그렇다) 이건 시간이 지나 내 기억 속에서 과장되고 축소된, 꽤 미화된 여행기다. 나는 많은 순간 외로웠고, 그래서 마지막 날은 이제 하룻밤만 자면 돌아간다는 생각에 정말 기쁘게 돌아다녔다.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필요해 한국의 인터넷 카페에 동행을 구하는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퇴짜를 맞기도 했다. 영어가 짧으니 식당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 게이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리웠던 모국어가 여기저기서 우르르 들려왔을 때, 살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주 푹 잤다. 푹 자고 일어나니 인천이었다. 무사히 돌아온 게 꿈만 같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게 다시 없을 소중한 기억들이 되었다. 흠. 여행기를 마치며 든 생각.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가, 한 차례의 여행이,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놓기도 한다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다. 물론 언젠가 강렬하게 나를 바꿔 줄 한 권, 한 편, 하나, 한 차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 한 권과 어떤 한 편과 어떤 하나와 어떤 한 차례가 모이고 모여, 쌓이고 쌓여 나를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꿈꾸던 곳에서의 일주일이 나를 단번에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좀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줬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거. 다음 여행까지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당연하게도 7월의 포르투에서 이금령이 쓴 엽서는 잘 도착했다. 7월의 서울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금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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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에 검색을 했더랬다. 리스본에서 못 들은 파두를 포르투에서 혹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소박한 곳이면 좋을 것 같앴다. 저녁을 먹으면서, 와인 한 잔을 하면서 잠시동안 그 깊은 울림으로 빠져들 수 있는 곳. 결국 그 곳을 찾았다! 가족 전체가 파두를 너무 좋아해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파두 공연을 하는 곳. 마지막 밤이 목요일이었다.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오다니! 포르투갈이여! 캐리어에 돈 뭉치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남은 돈을 끌어 모았다. 안 되면 카드를 긁자. 카드도 챙겼다. 그리고 나섰다. 마지막 밤을 즐기러!

 

   익숙한 길과 초행인 길을 지나 식당에 도착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아직 저녁식사 시간인데, 식당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건 좀 불길하다. 하지만 차선책이 없었다. 들어갔다. 보아 노이찌! 인상 좋아보이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리스본에서 제대로 된 첫 저녁을 대구 요리로 먹었는데, 포르투에서의 마무리도 대구 요리로 했다. 리스본의 요리가 너무 짠 탓에 소금을 조금만 넣어달라고 말했는데, 아주머니께서 잘못 알아듣고 주방에 대고 외쳤다. 소금을 아예 넣지 말라고. 읔- 뭐. 그래, 짠 것보다 싱거운 게 낫지. 아주머니는 포트 와인 먹어봤냐고 물어봤다. 먹어봤는데, 너무 세다고 하니까, 우리집 와인을 한번 맛보라면서 조그만 잔에 채워줬다. 그리고 자기네가 만든 정말 맛있는 치즈 소스라며 크래커와 함께 내어 왔다. 나는 말했다. 카드 되나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도로에서 떨어질수록 카드 수신전파가 약해진다. 너도 보다시피 우리 식당이 도로에서 좀 떨어져 있잖니. 그래서 카드기계가 안돼. 미안. 흠. 나는 말했다.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이라고. 그래서 돈이 조금밖에 없다고. 그래서 나 이 크래커 못 먹는다고. 아주머니께서 딱하게 나를 쳐다보더니 돈 받지 않을테니 먹으라고 했다. 정말요? 그래, 불쌍한 아이야, 먹으렴. 나는 지갑을 꺼내 잔돈을 다시 세어봤다. 딱 와인 한 잔 마실 돈이 남았다. 그럼 포트 와인을 한 잔 주세요. 그렇게 나의 만찬이 시작됐다.

 

   대구요리는 무척이나 싱거웠다. 정말 소금이 한톨도 들어가지 않은 맛이었다. 리스본은 짜고, 포르투는 싱겁고. 하지만 내겐 포트 와인이 있었으니. 와인 한 모금에 대구요리 한 숟갈, 와인 한 모금에 대구요리 한 숟갈, 그렇게 포트루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싱겁고도 알딸딸하게 진행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손님이 더 들어오지도 않고, 파두 공연을 할 기미도 보이지 않아서, 아주머니를 불러서 물어봤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목요일마다 파두 공연을 한다고 하던데요. 오늘은 하지 않나요? 아, 파두. 파두는 추울 때만 해. 아아아아아아. 그래그래. 파두는 추운 날씨와 어울리지. 파두는 이렇게 더운 날 느낌이 나지 않겠지. 파두는. 파두는. 결국 이번 여행에서는 듣지 못하는 거였다. 아, 멀어지는 사우다드여. 나만큼이나 안타까워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추울 때 다시 올게요. 그렇게 파두가 없는 한산한 식당에 앉아, 센 포트 와인을 마시며, 싱거운 대구요리를 빡빡 긁어 먹었다. 계산을 하니 아주머니가 사탕 한 알과 가게 명함을 한 장 챙겨주며, 말했다. 친구 있지? 친구들에게 홍보해 줄 수 있겠니? 나는 휑한 가게를 한 바퀴 둘러보고 대답했다. 오-케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동 루이스 다리를 한번 더 갔다.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니 무섭다는 느낌도 안 들더라. 낮에 갔던 교회당 건물도 빛이 들어오니 더 아름다웠다. 강 위로 유람선이 지나가고, 하늘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격렬하게 날아다니고. 좋다좋다. 고마웠어, 포르투.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 오브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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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은 아침에 공항에 가야 했으니, 이 날이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날엔 가이드북은 숙소에 두고 수첩과 엽서, 우표와 펜, 지도 한 장만 챙겼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대로 걷고, 포르투갈에서의 마음을 엽서에 담을 생각이었다.

 

 

마지막 날, 해가 떴다. 아침.

 

 

오늘도, 길을 나섰다.

 

 

어젯밤의 흔적.

 

 

그리워질 풍경. 이 길을 매일 걸었다.

 

 

카르멜 성당과 카르무 성당. 카르멜 성당에 들어가니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없었고. 성당 앞자리에 앉아 아빠에게 엽서를 썼다.

아빠, 여행이 끝나면 좀더 좋은 사람이 될게.

다음엔 좋은 곳을 같이 여행하자. 그러니, 건강하자.

 

 

첫날, 지하철 역도 제대로 못찾고 잔뜩 긴장했던 상 벤투역. 이제는 친숙해진.

 

 

아, 시장이 제일 싼 줄 알았는데. 여기가 더 싸네. 읔-

 

 

도우루 강 가는 길.

 

 

오늘도, 도우루 강.

 

 

올라!

 

 

골드쏘이라고 새겨 주세요.

 

 

짜잔-

 

 

마지막 날도 날씨가 좋았다.

 

 

바람도 좋고.

 

 

강가에 자리잡고 앉아 엽서를 썼다.

 

 

좋다아.

 

 

좋은 여행.

 

 

헤헤-

 

 

좀더 높이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와-

 

 

와와-

 

 

와와와-

 

 

와와와와-

 

 

와와와와와-

 

 

노사 세뉴라 두 필라르 산맥 수도원. 포르투갈 유일한 원형 교회당.

 

 

빌라 노바 지 가이아 지구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곳.

와, 여길 걸어 올라 왔어.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이렇게 내려다보이는 곳.

 

 

햇볕과,

 

 

나뭇잎.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땀이 순식간에 식었다.

 

 

올라!

 

 

풍경이 좋아 오래 머물렀다.

 

 

낮의 동 루이스 다리.

 

 

여전히 다리는 후덜덜했지만,

 

 

걷기에는 밤보다는 낮이 더 나았다.

 

 

야호

 

 

걷다보니, 대성당.

 

 

카테드랄.

 

 

빛.

 

 

아줄레주.

 

 

지붕들.

 

 

포르투.

 

 

덥다 더워. 배고프다 배고파. 밥을 먹자. 맥주를 마시자.

 

 

드디어 먹게 된 해물밥. 완전 맛있다!

 

 

커피도 마시고,

 

 

와인도 한잔 마셨다. 엽서를 쓰고 있으니 서빙하시는 분이 물어봤다.

- 그거 중국어야?

- 나는 한국인이야.

- 안녕하세요!

- 오- (여기 한국인 많이 오는구나)

- 어려운 글자다. 더 필요한 건 없니?

 

아, 바람도 적당하고, 음식도 맛있었다.

가게 앞에서 기타치며 노래하는 무리들 덕분에 더 흥겨운 점심시간이 됐다.

 

 

지나가다 이런 흥겨운 공연도 보았다.

 


강을 따라 걸었다.

 

 

소품가게에도 들어갔다.

 

 

걷다 생각난 곳. 그래, 로맨틱 박물관에 가보자.

 

 

포르투의 트램.

 

 

포르투의 집.

 

 

포르투의 공룡.

 

 

포르투갈의 국기.

 

 

포르투의 집 2.

 

 

포르투의 트램 2.

 

 

포르투의 트램 3.

 

 

이 할아버지들이랑 줄곧 같이 걸었다.

할아버지들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걷다보니 좁은 골목길이 이어져서 무서웠다.

길이 맞는지 몰라 무서웠고, 누군가 갑자기 나타날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깡패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로맨틱 박물관이 나타났다!

 

 

포르투의 그림자.

 

 

짜짠- 로맨틱 박물관.

사르데나의 카를로스 알버트 왕이 유배되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집.

19세기 왕의 주거 공간과 유품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는데,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격하게 환영해줬다.

이어폰을 끼고 방과 방 사이를 둘러봤다. 걸을 때마다 내 발소리가 났다.

내가 방과 방 사이를 둘러볼 때 나를 따라다니는 직원 분이 있었는데,

내가 다 봤다고 하자 폐관시간이 지났어도 더 볼 수 있다며 충분히 봤냐고 거듭 물어봐주셨다.

내게 무척이나 친절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

 

 

그리고, 다시, 크리스털 궁중 정원.

 

 

작은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공연도. 벤치에 앉아 기타 연주를 들었다.

 

 

해가 좋았다.

 

 

나무나무나무.

 

 

숙소 앞에 골동품 가게가 있어 들어가봤다.

주인아저씨가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묻더니 이걸 꺼내왔다.

내 생각엔 이런이런 말인거 같은데, 맞니?

흠-

 

 

하룻동안 열심히 쓴 엽서들은 포르투의 빨간 우체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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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Praca da Ribeira

from 여행을가다 2015. 11. 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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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8일 수요일에 먹은 것들.

 

 

    이걸 먹기 위해서 볼량시장에 다시 갔다. 정어리 구이. 시장 한 켠에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식당이 있었다. 이 날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 모자를 벗고 메뉴판을 봤다. 사르디나와 맥주를 시켰다. 옆에 외국인 아저씨도 혼자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음식 한 접시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 정어리 구이는 생각했던 딱 그런 맛이었다. 맛있었다. 다시 먹고 싶을 만큼. 감자도 맛있었고, 샐러드도 맛있었다.

 

 

  한 접시 깨끗하게 비우고, 맥주 한 병을 더 시켜 마셨다. 든든한 점심이었다.

 

 

    불량시장에서 친구들 선물도 잔뜩 샀다. 앞치마도 사고, 조그마한 포르투갈 술도 사고, 내가 먹을 맥주도 샀다. 동생에게 줄 와인도 사고, 정어리 마그네틱도 사고, 재물의 상징인 닭이 그려진 수건도 샀다. 술을 파는 가게 아저씨가 영어가 전혀 되질 않아, 손짓발짓 동원해서 겨우겨우 의사소통을 했다. 달지 않은 맛있는 와인을 달라고 했고, 친구들에게 선물할 포르투갈 술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내가 먹을 저 흑맥주도 달라고 했다. 결국 아저씨는 옆집의 젊은 아가씨를 데려왔고, 나는 원하는 술을 모두 얻었다. 아저씨가 말했다. 모두 맛있는 술이야. 시장에서 체리를 엄청 싸게 팔길래 사가지고 와 다음날까지 두고두고 먹었다. 달달하더라.

 

 

   저녁에는 통닭구이를 먹으러 갔다. 이때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리스본에서만 일기를 열심히 써서, 포르투에서는 얼마를 썼는지 써 두질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돈이 확 줄다니 이상하긴 했다. 마지막 밤, 캐리어 정리하다 보니 첫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러 봉투에 돈을 나눠 넣어뒀는데 두 봉투가 캐리어 안에 있었다. 읔- 암튼 그리하여 이 날 저녁에는 돈이 없으니 저렴한 걸로 먹자 해서 통닭구이를 먹으러 갔다. 1층과 2층이 있었는데, 1층은 동네 아저씨들이 나란히 앉아 먹는 바였고, 2층은 테이블이었다. 1층에 앉겠다고 했다. 동네 아저씨들 틈에 끼여 앉았다. 내 왼쪽에 우디 알렌을 닮은 자그마한 체구의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는데,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여행 중이야? 언제부터? 포르투갈에는 왜 왔니? 왜 포르투갈이 좋아? 할아버지는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줘서 반가웠는데, 할아버지의 질문은 끊임없었다. 나는 영어가 짧고, 할아버지의 영어는 무척 어려워서 우리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질 못했다. 할아버지는 와인을 한 잔 더 시켰고, 밥을 먹으려는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와이? 프렌드쉽!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동네 아저씨들이 가게를 나가면서 모두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으니까. 결정적으로 내가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말을 계속 걸어와서 힘들었다. 아마도 술에 취하신 듯. 내 번호를 알려주진 않았고, 할아버지 번호만 받아왔다. 아, 그렇게 끊임없이 말만 안 거셨으면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올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 날 본 풍경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해리포터의 서점, 렐루 서점에도 갔다.

 

 

   사람들로 복작복작해서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중국인이 소매치기를 당했다. 소매치기 일당들은 머리카락을 뜯기면서 잘도 도망갔다.

 

 

  G가 부탁한 페소아의 포르투갈어 시집을 사면서, 내 것도 하나 더 샀다. 언젠가 읽을 수 있을까.

 

 

   그리고 걸었다.

 

 

   이 날도 날씨가 좋았다.

 

 

   사진 미술관에도 갔다.

 

 

   1767년 사다리꼴로 만들어진 사진 미술관 건물은 원래 법원과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두꺼운 화강암 벽과 철창이 박혀 있는 창이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포르투갈 현대 작가의 사진전과 카메라를 전시하고 있다. 포르투갈 대표 소설가인 카밀로 카스텔로 브랑코는 유녀와의 연애로 1년간 당시 감옥에서 복역하였는데 여기서 쓴 소설 <파멸의 사랑>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 <포르투갈 셀프 트레블> 中

 

 

   미술관 안에 있는 자판기 커피도 마셔보았다.

 

 

    그리고, 강 보러 다시 걸었다.

 

 

   코르크 가게에서 조그만 지갑도 샀다. 나도 쓰고, 선물도 주고.

 

 

   내 지갑은 하늘색인데, 볼 때마다 포르투의 바람과 강물 생각이 난다.

 

 

   포르투갈의 하늘빛.

 

 

   포르투의 하늘빛.

 

 

   얼마나 있었다고,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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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리구스 성당 & 탑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클레리구스 탑과 성당은 포르투의 랜드마크다. 1754년 클레리구스 형제회를 위해 포르투갈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화가인 니콜라 나소니가 10년 동안 지었다. 도시 최초의 바로크 양식 건물로 지어질 당시에는 포르투갈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다. 75.6m로 나선형 계단을 15분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도우루 강과 올드 시티, 빌라 지 오바 가이아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탑을 오르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람이 적은 아침에 가는 것이 좋다.

<셀프 트레블, 포르투갈> 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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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가기 전, 여러 친구들에게 좋은 노래들을 추천받았다. 누군가는 잠들기 직전에 들을 노래를 추천해줬고, 누군가는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가장 좋은 노래를 추천해줬다. S였을 거다. S가 말했다. 언니, 톰 웨이츠 좋아. 나는 여행을 가기 직전에 여러 노래들을 마구 듣고 다녔다. 출퇴근길에, 업무시간 중에, 마음에 드는 노래들은 모조리 하트를 표시해뒀다. S가 추천해 준, 톰 웨이츠. 그의 노래들을 찾아듣다 세상 다 산 듯한 오랜 풍파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 나오는 이 노래, 'Tom Traubert's Blues'. 첫 귀에 반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내 마음을 긁었다.

 

   나는 클레리구스 탑을 꼭! 오전에 올라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이른 아침이 아니면 올라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사실 포르투에서는 별 계획이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하루하루 걸어다녀보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날은 너무 열심히 안 다닌 것 같아 아쉬웠고, 어떤 날은 너무 열심히 돌아다니기만 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행이란, 이렇게 늘 아쉬움이 남는 거구나. 그러니 그냥 마음을 놓고 편하게 다니자. 2015년 7월 8일 수요일. 이 날의 목표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아침의 탑에 오르는 것이었다. 역시나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리스본에 비해 조그만 호텔이라 일단 접시를 챙겨들고 마음에 드는 음식들을 마구 퍼 담고 있으면 그제서야 직원이 다가와 방번호를 물었다. 방번호를 말해주고 나면 미소를 보이며 맛있게 먹으라 인사해줬다. 수요일에도 어김없이 맛있는 아침식사를 혼자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열심히 양치를 하고, 길을 나섰다. 탑까지는 금방이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카르무 성당이 있었고, 그 대각선 맞은편에 클레리구스 성당과 탑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으나, 역시 관광객이 붐비는 관광명소이다 보니 직원이 입장료는 동전으로만 받는다며 짜증을 냈다. 다행스럽게도 가방 구석구석을 뒤져보니 동전들이 있었다.

 

    탑을 올랐다. 리스본에서 올랐던 탑과 마찬가지로 올라가는 시간과 내려오는 시간, 그 각각의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른 시간이었기에 사람도 거의 없었고 오직 오르는 사람 뿐이었다. 계속 탑을 올라갈 수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15분 동안 올라야 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더 빨리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니 가이드북의 설명대로 포르투의 전경이 아래에 훤히 내려다보였다. 한바퀴 쭉 둘러보다 이제 어쩔까 고민하다가 이어폰을 찾아 꽂았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다운받아온 음악 중에 톰 웨이츠의 음악을 찾아 그 곡만 다섯 번 정도 내리 들었다. 내 발 아래 생전 처음보는 나라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아침의 햇볕이 강렬하게 빛났다.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내 귀에선 세상 다 산 것 같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나는 정말 말도 되지 않지만,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포르투갈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여행을 혼자 떠나게 되었을 때, 포르투갈이 혼자 오라고 말을 걸었던 것처럼, 또 한번 내게 말을 건다고 생각했다. 그 말들은 이런 거였다. 응. 알아. 쉽지 않았지? 이 곳에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외롭기도 했지? 응. 알아. 그런데 어쩌니. 앞으로도 그럴 거야. 니가 어느 땅 위에 서 있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너는 여전히 행복하기도 할 테고, 지금처럼 지독하게 외롭기도 할 거야. 응. 알아. 그런데 그게 너의 운명이야. 응. 알아. 응. 알아. 그러니 걱정마. 잘 되고 있는 거야.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그 탑 위에서 옆에 있는 관광객들 모르게 엄청 울었다. 한순간에 내 마음 속의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눈물이, 정말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서 나도 당황했다. 그러는 동안 포르투의 76.5m 바람과 톰 웨이츠의 목소리가 나를 위로해줬다. 뭐 어때.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걸. 앞으로도 그럴거야. 그러니 걱정 마. 그런 시간을 가진 후 탑을 내려왔다. 그 후의 시간들은 신기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물론 아주 행복하거나 아주 불행하지도 않았다. 흠. 사실 사람들이 여행 전에도, 후에도 내게 알게 모르게 많은 말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옳다고, 지금의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응. 나는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내가 좋다. 내가 동경했던 포르투갈이 직접 말해준 거다. 외롭고 고독한 순간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나를 더 성장시켜 줄 거라고. 그러니, 이 곳까지 잘 왔다고. 응. 그리고 잘 해내갈 거라고. 포르투갈이 두번째로 내게 말을 걸어줬다. 포르투의 탑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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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 밤에는 도우루 강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숙소에서 쉬다 배가 출출해지자 길을 나섰다. 나무가 많은 공원을 지나갔는데, 곳곳에 조각상들이 있었다. 멀리서 뒷모습만 봤을 때는 쓸쓸해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가 표정들을 보니 즐거운 거였다.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표정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러니 즐거워지더라. 강가로 가기 위해 낯선 골목길을 걸었다. 해가 스물스물 지고 있어서 골목길의 풍경이 근사했다. 그리고 강을 옆에 두고 식당가까지 한참을 걸었다. 어딘지 감이 오질 않고, 혼자이다 보니 좀 무서워서 발길을 서둘렀다.

 

    걷다보니 식당가에 도착. 초코슈님이 추천해준 식당이 있어 가 봤는데, 만원이더라. 혹시나 해서 자리가 있나 물어봤는데 1시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포기했다. 식당을 나오니 바로 옆의 작은 계단에서 악기들을 흥겹게 연주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 노천에서 먹으면 딱이겠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초코슈님이 추천해준 두번째 식당이 있었고, 그곳에 노천테이블 자리가 있었다. 일단 맥주를 시켰고, 대구 요리도 시켰다. 리스본의 대구요리의 짠맛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해서 감자가 곁들여지면 간이 딱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흠. 결론은 아주 근사한 저녁이었다. 대구 자체도 간이 세지 않았다. 맥주와 간이 딱 맞는 대구요리를 먹는 동안 도우루 강에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쌀쌀하게 불었다. 원래 추운 바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강바람이 딱이었다. 맥주를 다 마시고 아쉬워서 와인을 한 잔 더 시켰다. 이제 포트와인이 내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냥 포르투갈의 와인을 시켰다. 며칠 전까지 있었던 리스본의 와인이었다. 앞 테이블의 분위기 좋은 연인들의 뒷모습도 보고, 도우루 강의 근사한 야경도 봤다. 외로워질 때마다 보려고 적어둔 수첩의 글귀들도 꺼내 봤다. 충분히 좋았지만, 누군가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 밤이라고 생각했다.

 

    식당을 나와 강변을 걸었다. 밤 10시에 겨우 해가 졌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강가에 앉아 화요일 밤을 즐기고 있었다. 음악도 있고, 음식도 있고, 술도 있고. 모두들 즐거워 보였다. 화요일 나의 마지막 목표는 동 루이스 1세 다리 위의 아경. 에펠탑을 닮은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2개의 철골 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위는 전차전용 다리고, 아래는 자동차전용 다리. 둘 다 보행자 도로가 있다. 근사한 야경을 보기 위해 으슥한 골목을 벌벌 떨면서 올라갔다. 그리고 다리 위에 선 순간, 고소공포증이 몰려와 다리의 난간을 힘껏 잡았다. 읔. 다리가 저절로 후덜거렸다. 전차가 지나가니까 그 진동으로 다리가 막 흔들리더라. 정말 겨우,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그리고 숙소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큰길로만 걸으니 무섭지 않더라. 낮에 본 건물들이 밤의 조명으로 근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편히 잤다. 7월 화요일 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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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에서 배를 채운 뒤 크리스털 궁전 정원까지 걸었다. 가이드북의 설명. "바다로 뻗어 나가는 도오루 강 하류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정원의 건물은 16세기에 스포츠 경기장으로 사용되다가 19세기에 철 구조물과 유리를 보수해 크리스털 궁전으로 불린다. 지금은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를 위해 사용된다. 붉은색의 벤치와 싱그러운 가로수길, 푸른 강물, 고혹적인 공작새들 덕에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공작새는 영원과 불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크리스털 궁전 정원을 걸어다니다 영원과 불사의 상징을 보았다. 공작새는 궁전을 마당 삼아 고고한 자세로 느긋하게 걸어다니고 있었다. 공작새를 발견하고는, 신기했지만 조금 무서워서 먼 벤치에 앉아 바라봤다. 그러다가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볼까, 라는 생각에 다가갔는데 그 커다랗고 화려하고 무서운 날개를 활짝 펼치려고 하는 통에 겁이 나서 달아나버렸다. 나는 공작새가 느긋하게 그 큰 정원을 산책하며 돌아가는 게 무척 신기해서 눈을 떼질 못하겠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더라. 그만큼 이 곳에서의 공작새는 친숙한 가 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도우루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으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강물이 소리없이 흘러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역시 도시엔 강이 있어야 해. 조용한 나무 숲 아래 벤치에 앉아 자우림의 노래도 들었다. 좋다좋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원에서 나와 또 부지런히 걸어 불량 시장에 갔다. 가이드북의 설명. "1850년에 신고전주의로 지어진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생선 가게, 정육점, 과일과게, 꽃집 등이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들러 여행 중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해도 좋다. 상점들 사이에는 아케이드가 있고 2층에도 지붕이 있어 비가 와도 걱정 없이 쇼핑할 수 있다." 사실 불량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았다. 2층까지 있다고는 하지만, 2층에는 가게들이 얼마 없었다. 그래도 시장 구경은 늘 신나니까. 시장에서 엄마에게 줄 말린 과일.견과류도 한 봉지 사고, 좋아하는 맥주 마그네틱 자석도 사고, 친구에게 줄 앞치마 선물도 샀다. 정어리 요리를 파는 곳이 있길래 내일 점심에 와서 먹어보자고 계획을 세워 두기도 했다. 포르투갈 꽃도 구경하고, 포르투갈 마늘도 구경하고, 포르투갈 과일도 구경했다.

 

   시장을 나와서 너무 덥고 지쳐서 이제 숙소로 들어가서 좀 쉬자고 생각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데, 아까 찜해둔 와인가게의 간판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 간판에 의하면 지금이 해피타임! 와인이 할인되는 시간이다. 가게 앞에서 망설이다 결심하고 들어갔다. 어제 너무 세서 즐기기에 실패했던 포트와인을 덜 피곤한 상태에서 다시 먹어보기로 했다. 화이트 포트와인 한 잔을 시키니 올랜드 볼룸을 닮은 직원이 되물어봤다. 정말 포트와인을 원해? 이거 19도야. 정말이지? 화이트가 맞고? 예스! 예스! 예스! 더 많은 얘길 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딸리니. 블룸은 친절했다. 옆 테이블의 외국인에게도, 내게도 와인이 괜찮은지, 부족한 건 없는지 물어봐줬다. 계산을 할 때 블룸이 물었다. 포트 와인 어때? 나는 고민하다 말했다. 스트롱! 이제 확실히 알았다. 포트와인은 너무 세고, 내게는 맞지 않다는 걸. 그래도 한 잔을 다 마셨다.

 

   낮와인도 마셨고 알딸딸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포르투의 구름들이 내게로 모두 몰려드는 것 같았다. 구름들이 마구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에 길가의 가게에서 엽서를 고르고 있는데, 한 동양인이 와서 물었다. 한국인이시죠? 그래서 나도 구름들이 마구마구 움직이는 카르무 성당 앞에서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동양인에게 가서 물었다. (사실 나는 그 아이를 오늘 세 번째 보는 거였다. 볼 때마다 아이는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한국인이시죠? 제가 찍어드릴까요? 아까도 봤어요. 셀카찍고 있는 거요. 그 아이는 뭔가 싶었을 거다. 얼굴이 새빨간 나이 많은 누나가 갑자기 와서 아까부터 봤다면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으니 식겁했겠지. 딱 봐도 스무살 같았다. 아이는 당황하며 아..니요, 괜..찮아요, 하면서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 뒤 인터넷 카페에서 한 번의 시도를 더 했으나 동행은 구할 수 없었다. 혼자다닐 운명이라 생각하고 바로 포기했다. 구름들이 마구마구 움직이는 포르투의 하늘 아래 이 나이 많은 누나는 혼자서 얼큰하게 취해 한낮에 신나서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 창가에 의자를 가져다두고 앉아 스펙터클한 구름들을 올려다 보면서 마구마구 즐거워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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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7일 화요일. 포르투의 아담하고 고즈넉한 숙소에서 푹 잤다. 여행 시작하고 난 뒤 처음으로 푹 잤다. 이제서야 시차 적응이 된 듯. 조식을 먹기 전, 가이드북을 보다가 오늘 오전에는 여길 가보자고 결심했다.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국립미술관.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는 조각가 이름이다. 원래 궁전이었던 곳을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포르투갈이 사랑한 조각가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의 대표작품 '유배'가 유명하단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작품을 보지 않고 가는 것은 바티칸에서 교황을 만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사실 작품 보다는 오른쪽 작은 박스에 있는 '팁'에 더 이끌렸다. "아담한 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나서 1층의 카페테리아에서 포르투갈 가정식을 즐겨도 된다. 오늘의 메뉴 5.5-7.5유로."

 

   일단 숙소를 나섰다. 발길 닿는대로 포르투의 골목들과 광장들을 구경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고, 카톨릭 국가답게 성당도 많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빵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던 가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태양은 역시 뜨거웠고. 노천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오전의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은 꽤 넓었다. 사람들도 없었다. 표를 끊고 오전의 미술관을 혼자서 걸어다녔다. 좋았다. 그 커다란 공간에 내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샌들이 바닥과 닿는 소리, 팔의 옷과 몸의 옷이 스치는 소리.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그림이 있어 작가와 작품명을 찍어왔는데, 검색을 해도 정보가 나오질 않았다.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의 '유배'도 봤다. 이게 유명한 작품이구나, 하고 들여다봤더니 딱 그만큼의 생각만 들었다. 커다란 감흥이 없었다. 작은 그림들이 더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곳에 온 나의 목적! 포르투갈 가정식을 먹으러 카페테리아로 갔다. 정원이 보이는 노천자리에 앉았다. 친절한 직원분이 메뉴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내가 잘 못알아듣고 코스를 시키지 않고 단품만 시켰다. 고기 종류만 잘!(ㅠ) 시켰다. 접시가 나오는데 양이 너무 작아서 실망. 하지만 한입 썰어 먹자마자 행복. 당연히 맥주도 시켰다. 여행에서는 늘 1식 1맥. 식사양은 작았지만 맥주가 들어가니 금새 배가 불렀다. 한창 먹고 있는데, 그제서야 현지인들의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는지 사람들이 몰려왔다. 역시 모두들 코스요리를 시켜 먹더라. 따뜻해보이는 스프도 나오고, 신선해보이는 샐러드도 나오고. 나는 그걸 보면서 맥주를 들이켰다는. 하지만, 무척이나 맛있었던 점심이었다. 노천에서는 팁을 줘야해. 잊지 말자. 친절하게 몇 번이나 맛이 괜찮냐고 물어본 직원분께 드리는 팁과 한국의 홍삼 캔디를 테이블위에 가지런히 놓고 나왔다. 길을 걷다 우체통이 보여 포르투로 오는 기차 안에서 썼던 엽서도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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