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가다'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첫째날, 오키나와 8 2016.07.05
  2. 오키나와, 마지막날 5 2016.06.12
  3. 오키나와, 넷째날 4 2016.06.11
  4. 오키나와, 셋째날 4 2016.06.10
  5. 오키나와, 둘째날 4 2016.06.09
  6. 오키나와, 첫날 2 2016.06.08
  7. 오키나와 출국전 2 2016.06.08
  8. 2016년 봄, 전주 6 2016.05.15
  9. 봄, 전주 2 2016.05.02
  10. 경주 16 2016.01.14

첫째날, 오키나와

from 여행을가다 2016. 7. 5. 16:38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어나면 기억이 희미한 꿈 같았다.

   '아이슬란드.'

   그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 진짜 집에서 멀리 떨어진듯한 아득함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지지 않던 여름의 태양 그리고 절대 떠오르지 않던 겨울의 태양, 그 하늘에 슬그머니 뜬 희미한 달과 치맛자락처럼 펄럭거리는 오로라, 북극에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묵묵히 맞으며 견디고 서 있는 양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과 그 위로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이끼, 눈 덮인 산과 거친 바다와 검은 모래사장,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천 개의 폭포와 호수, 아직도 끓어오르고 있는 땅,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러기들, 서서히 녹아내린다는 빙하, 어디가 음절의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는 낯선 언어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과묵하고 고독해 보이는 사람들...

   이런 곳에서 나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이 밀려 오는 고립감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나 자신을 느꼈다. 또, 내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이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슬란드는 그런 나라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별것 없는 나라지만 사람을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계속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 김동영, '내가 기억하는 가장 낯선'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중에서

 

 

 

 

 

 

 

 

 

 

 

 

 

 

 

 

 

 

 

 

 

   이번 여행에서 막내의 로망 하나가 실현되었다. 라운지에 간 것. 기대하고 갔던 라운지는 사실 별 게 없었다. 비행기에선 음식을 주지 않으니까, 배와 목을 채웠다. 탑승은 30분 넘게 지연되었다. 막내는 옆자리의 근사한 남자를 기대했지만, 오키나와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갓난아기나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었다. 앞자리의 갓난아기는 눈을 마주치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갓난아이들은 비행기가 뜨자마자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

 

   원래 첫날 우리의 계획은 공항 라운지 - 오키나와 도착 - 미에바시역 - 숙소 체크인 - 슈리성 - 국제시장 구경이었다. 오후 비행기라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 지연 시간도 있고,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습기가 많은 더위가 확 느껴져서 단번에 포기해버렸다. 그래, 슈리성은 내일 가자. 내일 가도 그곳엔 슈리성이 있어.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수첩에 쓴 말은 이것.

 

덥다.

습기가 많다.

후덥지근하다.

오키나와는,

 

   숙소는 깔끔했다. 일본의 여느 호텔과 마찬가지로 공간은 좁았지만, 그다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 두 개, 그 사이의 조명, 책상 하나, 벽에 걸린 티비, 냉장고와 거울, 두 개의 일회용 슬리퍼, 욕조가 있는 샤워실, 수건과 칫솔, 삼푸와 린스와 샤워젤, 변기와 큰 거울과 세면대.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10층, 1008호로 배정받았다. 데스크에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시는 여자분이 계셨다. 모노레일 승차권 자판기에도 한국어 안내가 있었다. 거리 곳곳에 한국어 안내판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오키나와에 오는 걸까, 생각했다.

 

   배가 고파 검색을 한 끝에 라멘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사실 막내는 유명한 스테이크 집에 가고 싶어했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하자고 했다. 그때 먹었어도 좋았을 걸, 생각이 든 건 마지막 날. 아무튼 걸어서 라멘집까지 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줄 서서 먹는 거 싫어하는데 맛있다니까 한번 먹어보자 싶어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이 길어질수록 뭔가 아니다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랑 중국어만 들려왔기 때문에. 예감은 적중했다, 라고 해야 할까. 라멘집의 맛은 평범했다. 블로그처럼 극찬할 맛은 아니었다. 음식은 빨리 나왔고, 직원 분들은 친절했다. 그 정도였다. 우리는 맛집, 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계속 가야할 지 고민했다. 암튼 배는 채웠다. 그리고 건배를 하고, 오키나와 첫 생맥주를 마셨다!

 

   막내는 구글지도를 보고 헤매지 않고 잘 다녔다. 잘 헤매는 내게 적합한 여행친구였다. 골목과 골목을 걸으며, 한적한 나하 시내 구경을 하고, 류보 백화점에 가서 프랑프랑과 무인양품 구경을 했다. 무인양품은 뭔가 색다른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서울이랑 비슷했다. 가지고 온 펜이 잘 나오지 않아, 하나 사야지 했는데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사질 못했다. 오키나와스러운 걸로 하나 사 두었으면 기념도 되었을텐데. 동생은 미키 그릇을 발견하고 너무나 귀엽다며 고민에 고민을 했고, 첫날부터 짐을 늘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냥 나왔다. (결국 잊지 못했고, 마지막날 샀다!)

 

   그리고 국제거리의 포장마차 거리까지 걸었다. 이것도 블로그에서 발견한 건데, 블로그 사진이 꽤 운치 있었다. 그곳에서 오늘의 마무리 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거리가 참으로 먼 것이다. 결코 헤매지 않았지만, 참으로 먼 것이다. 걷기 시작한 게 아까워 걷고, 또 걸었는데, 걷다보니 또 걸을만 해졌다. 해가 진 뒤라 적당히 선선한 바람도 불었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도 보였고, 갖고 싶은 기념품들을 잔뜩 파는 가게도 보였다. 텀블러 구경을 하러 스타벅스에도 들어 갔다. 번화가라 그런지 밤의 풍경이 그다지 이국적인 느낌이 들고 않고, 친숙했다.

 

   마침내 포장마차거리 도착! 생각보다 아담했다. 꼬치구이가 먹고 싶었는데, 그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아마도 맛집이었겠지) 어느 한가해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물었다. 꼬치구이 있습니까? 우리 가게에는 없는데, 파는 가게가 있다며 안내해 주었다. 바깥자리에 앉기엔 너무 더워서 안쪽의 바 자리에 앉았는데, 안주가 너무나 비싼 것이다. 포장마차라 싼 줄 알았는데. 배도 부르고 해서 흑돼지구이 꼬치 하나와 생맥주 한 잔, 하이볼 한 잔을 시켰다. 흠. 꼬치구이를 굽는다고 가게 안에 커다란 숯판이 있었다.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열기가 나오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도 약하고, 결정적으로 하이볼과 맥주가 밍밍했다.  맥주잔은 차갑게 유지하려고 그러는지, 스텐잔이었는데 거품이 삼분의 일이었다. 흑- 흑돼지구이는 맛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딱 고것만 먹고 나왔다. 우리 맞은편에 귀여운 여자아이 둘이 나란히 앉아 맥주도 마시고 사케도 마시고 있었는데, 둘이서는 얘기를 거의 안 하고 가게 직원이랑 얘기를 많이 하더라. 수요일의 술자리. 저 두 여자아이는 어떤 사이이고, 지금은 어떤 술자리일까 상상해봤다. 그리고 니네는 여기 덥지 않니, 물어보고 싶었다. 하하.

 

   술집에서 나와서 포장마차거리 사진을 찍는데, 전통복장을 한 키가 크고 잘 생긴 남자 분이 우릴 보더니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우린 괜찮다고 했는데, 계속 찍으라고 했다. 그래서 찍었다. 홍등이 잘 보이는 배경을 골라 다정하게 서서 브이를 했다. 남자분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한국인이냐며, 한국어 한마디를 하더니,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숙소까지 걸었다. 포장마차거리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걷기 딱 괜찮았다. 이 더위에 적응이 조금 되기도 했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근처에 소소하고 조용한 가게들이 보였다. 이런 곳에 갈걸 후회했다. 우리는 이제 맛집 검색은 그만하자고 다짐했다. 줄 서서 먹지도 말자고 다짐했다. 숙소 주변은 한적했다. 패밀리 마트에 들러 맥주와 하이볼과 안주를 사서 들어왔다. 잔뜩 마시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두 캔밖에 못 마시고 잠들었다. 나머지 맥주는 결국 캐리어에 담겨 다음 숙소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하이볼은 결국 캐리어에 담겨 서울집까지 우리를 따라 왔다. 동생은 씻고 거의 바로 잠들고,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티비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다 이를 닦고 잠들었다. 자다가 새벽에 깜짝 놀라 잠을 깼는데, 커튼을 열어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너무나 근사해서, 한참을 내려다보다 가지고 온 책을 펼쳤다. 몇 줄 읽지도 못하고 금새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보니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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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몽글몽글한 구름을 내려다 보며 생각했다.
그래, 잘 살아보자.


7.6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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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넷째날

from 여행을가다 2016. 6. 11. 20:55


미술관에서 깨달은 건, 지난 여행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결코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다음 여행에서도 그럴 거다. '혼 불어넣기'를 다시 읽었다. 그것도 오키나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아시따 카에리마쓰-


11.0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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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셋째날

from 여행을가다 2016. 6. 10. 22:25


수족관에서는 물고기들이 탈출하는 상상을 했다.
맛있는 스시를 먹었다.

14.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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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둘째날

from 여행을가다 2016. 6. 9. 22:11


물이 가득찬 바다에서 짜증을 냈지만, 금방 사과했다.
나하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9.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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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첫날

from 여행을가다 2016. 6. 8. 21:55



비행기가 지연되서, 가야할 곳을 못갔다.
그래서 걷고 먹고, 걷고 마시고, 또 걸었다.​


12.2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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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출국전

from 여행을가다 2016. 6. 8. 11:28


   예상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늦지는 않았다. 막내는 내내 진짜 감정을 숨겨두고 이따금 날을 세웠는데, 지난 생일에 폭발을 했다. 나도 언니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막내의 말들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그때부터 막내의 마음으로 여러 일들을 되돌아봤는데, 서운할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여행에 있어 서운해 해서, 동생과 나는 언제고 함께 가자고 하면 가야지 다짐했었다. 6월에 휴가를 길게 써야 한다고, 어디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럼 둘이 갔다 오자고 했다. 우리는 상해를 고심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오키나와에 가보자고 결정했다. 한번의 커다란 다툼이 있어, 여행은 파토날 뻔 했지만 결국 기분좋게 다녀오기로 했다. 다투길 잘했다. 그뒤로 서로 조금씩 참고 배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출발! 비행기가 연착되서 공항 안에 있다. 지금 오키나와는 장마의 한가운데 있다는데, 우리가 그 중심으로 간다. 남쪽의 구름과 비와 번개 속으로. 날씨가 좋지 않아도, 꽤 괜찮은 여행이 될 것 같다. 되돌아 본 모든 여행이 각각의 이유로 좋았고, 지금 무척 그리운 것 처럼. 오키나와는 우리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럼, 다녀와보겠습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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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전주

from 여행을가다 2016. 5. 15. 23:23


2016년 4월 30일에서 5월 1일까지의 기록. 4월에 떠나 5월에 돌아왔다.


전주에서 기록한 메모장을 열어 봤더니 이런 글귀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조용한 밤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무엇에 관한 메모였을까, 1분동안 생각했다. 이 메모 앞에는 "최악의 여자"라는 메모가, 뒤에는 "남산 밤산책"이라는 메모가 있었다. 아, 맞다. 영화 <최악의 여자> 대사였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나의 목표는 이 영화였다. 이 영화만 볼 수 있으면, 단 한 편만 보고 와도 좋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전주행을 결정해서 영화는 진작에 매진되었지만, 점심시간마다, 쉬는시간마다 매일매일 들어가 좌석을 체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같이 취소표 1장이 풀렸다. 바로 예매 완료! 혼자 다녀올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옷의 아이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M은 전주에 있었고, s는 함께 출발하기로 했는데 금요일 알바가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 먼저 내려갔다. 셋이 함께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내려 가는 길은 조금 막혔다. 고속버스가 좋아졌더라. 집에 가는 버스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최근에 생긴건지 좌석마다 고속버스용 잡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잡지를 보고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지구당. 서울대앞 규동집. 1메뉴 1인1맥."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인생이라는 길고 긴 여행 중, 세월은, 청춘은 매일매일 우리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휴게소에서 상복을 입은 할머니를 만났다. 빵과 바나나우유를 드시고 계셨다. 고개를 돌려보니 곳곳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나나우유와 빵을 먹고 있었다. 볕이 아주 좋은 오전이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전주에서 이동수단은 딱 세 번 탔다. 시내로 들어갈 때 영화제 셔틀, 숙소에서 늦게 나와 영화 시간 맞추느라 택시 한번, 서울가는 버스 타러 터미널로 갈 때 택시 한 번. 세 번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어다녔다. s는 밥을 먹었다고 해서 혼자 물짜장을 먹으러 큰 길과 골목길 구석구석을 걸었다. 방송에 나온 물짜장 집이라 줄이 길었다. 밥때도 아닌데 줄이 기니까 더욱더 맛있지 않을까 하고 서 있었는데, 테이블 회전율이 너무 낮아서 그냥 포기하고 남부시장 청년몰로 올라왔다.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면류를 먹자, 하고 들어간 곳. 뭐가 맛있냐고 물었더니 무뚝뚝하게 답했지만 알고보니 주인 아저씨는 츤데레였다. 음식도 맛있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혼자 낮술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작년 초여름 생각이 났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청년몰을 한바퀴 돌았다. 4월의 전주의 기운을 5월의 시옷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전주의 풍경들 위에 열심히 스탬프를 찍었다. 책갈피로 써 주면 고마울 것 같아, 라고 말하고 이쁨 받아야지.






아직까지 s와 M을 만나지 못했다. 카톡으로 계속 서로의 위치를 주고 받았다. 뭘 하고 있는지도. 혼자 있지만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M이 추천한 한옥카페에 가서 아이스라떼를 마셨다. 옆과 뒤 테이블에 모두 영화하는 사람들이었다. 온통 영화얘기였다.





<최악의 여자>는 기대만큼 좋았다. 사실 중후반 정도까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데, 결말부분이 너무 좋았다. 아,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감독은 그 전 이야기를 했구나, 이 영화를 찍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GV도 좋았다. 사회를 맡으신 분이 이렇게 말했다. "8월에 개봉을 합니다. 9월에 남산에서 찍은 영화니까 9월까지 상영이 이어져서 현실과 영화가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개봉을 하면 한번 더 볼 거다. 그리고 남산에서 밤산책을 할 거다. 누군가와 함께.





전주영화제라고 쓰여있던 커다란 공이,





이렇게 노오란 달이 되고.





체크인을 하러 숙소로 왔다. 혼자. s의 영화가 조금 늦게 끝나 먼저 출발했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많이 걸었는데, 김종관 감독이 GV에서 실제로 자신이 산책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하는 전주 길을 걷는 일이 좋았다. 어떤 이야기들은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마법의 순간.

 





s가 숙소와 방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사진을 보냈다. 설구화 방이었다.






두번째 영화 <바덴바덴>은 특이했다. 그런데 좋았다. 뭐가 좋았냐고 물어보면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좋았다. 여배우의 머리 스타일도 좋았고, 평소 입고다니는 보이시한 옷들도 좋았다. 남자와 함께 욕실을 고쳐나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쁜 남자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펐다. M의 집에 문제가 생겼고, s는 취소시간을 놓쳐 오늘도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제는 혼자 있기 싫었는데, 함께 마셔줘야 하는데. 아쉽지만 혼자 이 밤을 즐기기로 했다. 전일갑오에 들러 황태포를 샀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캔도 샀다. 두 캔만 살까 고민했는데, 다섯 캔에 만원이라 고민하다 결국 다섯 캔을 샀다. 다 마시지 못할 걸 알면서도. 씻고 티비를 켜고 맥주캔을 땄다. 마침 티비에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해줬다. 하루종일 걸어다녀 맥주가 들어가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두 캔을 마시고, 양치하고 누웠다.





잠들기 직전 오후에 봤던 <최악의 여자>가 계속 생각나서 검색을 해 봤다.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여자> 제작기가 있었다. 오래전 문학동네 카페에서 산 그의 책이 내게 있었다. 불현듯 떠올랐다. 사 두고 읽지 않고 있었는데, 서울에 올라가면 바로 읽어야지. 그가 궁금해졌다.





전주의 밤.







전주의 아침.





아침에 드디어 s의 얼굴을 봤다. 옆 이부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역시 젊음은 좋아서, s는 이틀 연속 심야영화를 봤다. 무려 이틀밤에 여섯 편의 영화를 본 것이다! 매일 두 시간 정도 자면서. s가 깰까봐 조용히 나와서 동네 산책을 했다. 전주천이 보이는 곳에 앉아 가만 있었다. 아, 좋았다. 날씨도 좋고.





s가 30분만 더 잔다고 하다 결국 일어났다. 우리들의 수다가 시작되었기 때문. s는 그동안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영화는 정말 좋았고, 어떤 영화는 지독하게 불쾌했다고 했다. 나는 어제 술집이 즐비한 거리를 혼자 걸어오며 쓸쓸했노라고 고백했다. 술집 안의 사람들이 모두들 함께였거든. s는 오늘은 정말이지 혼자 다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찌찌뽕. s가 씻는 동안 s가 극장에서 얻어온 <지금 가장 핫한 전주> 책자를 봤는데, 엄청 알찼다. 나중에 본 전주시민 M도 인정했다. 결국 s는 전주를 떠나기 직전, 내게 이 책자를 안겨 주었다. 

 






전날, 고등학생들에게 집을 습격받은 M과의 약속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 아침커피를 마시러 갔다. M이 이곳을 추천해줬다. 한옥마을이 훤히 내려다보는 곳.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라 카페 이름이 '전망'. 운 좋게도 창가 자리가 있었다. 풍경이 매달려 있었는데, 바람이 부니 흔들거렸다. 아, 좋다. 몇 번을 말했다. s가 헌책방에서 산 책들을 구경시켜줬다. 나는 내가 찍고 있는 영상을 보여줬고, 세로쓰기의 누렇게 변색된 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넘겨보라고 했다. 영화제 와서 나 나름의 영화를 찍었다.







M과 만났다. 드디어 만나게 된 우리 셋. 결국 s와 나는 전주에서의 마지막 영화를 취소했다. 우리는 막국수와 떡갈비를 먹고, 걷다가, 시원한 커피를 마셨고, 또 걷다가, 문 닫은 가맥집들 사이를 방황하다 문 연 집을 발견하고 황태포와 맥주를 마셨다. M이 길을 걷다가 이 곳이 은근 예술인들의 거리라며, 예술인들이 자주 오는 술집과 카페를 알려줬다. 다음에 와봐야지. 밤에 와봐야지. 해태바베큐를 가리키며 진짜 맛있는 통닭집, 이라고 말했다. 다음에 와봐야지. 꼭 와봐야지. 곧 영국유학을 떠나는 M에는 나는 어디서든 잘 자라고 목베개와 수면안대를 선물했고, s는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던 초록색 인형반지(캐릭터 이름을 모른다는. >.<)를 선물했다. M이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고, 옆자리 아저씨들에게 테이블 위에 남아도는 병따개를 준 죄로, 우리는 전주의 역사와 역사와 역사에 대해 한참을 들었다. 버스 핑계를 대고 일어났다. s는 집에 가져갈 떡갈비를 샀고, 나는 <지금 가장 핫한 전주> 책자를 얻었다. 한산한 극장 테라스에 앉아 땀을 식혔다. 그리고 말했다. 둘이서 번갈아가며.


아, 전주 좋았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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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전주

from 여행을가다 2016. 5. 2. 00:05




4월에 떠나 5월에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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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from 여행을가다 2016. 1. 14. 22:17

 

 

 

 

 

 

 

 

 

 

 

 

 

 

 

 

 

 

 

 

 

 

 

 

 

 

 

 

 

 

 


 

 

 

 

 

 

 

 

 

 

 

 

 

 

 

 

 

 

 중간에 새까맣기만 한 사진은 밤하늘인데, 가만히 올려다보면 경주별이 그득하다.

2016.01.01-2016.01.02 세자매의 경주여행.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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