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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싸바도 2 2017.06.27
  2. 비에르네스 4 2017.06.26
  3. 부에노스 디아스, 비에르네스 3 2017.06.25
  4. 올라, 후에베스 2 2017.06.23
  5. 바르셀로나, 도착 8 2017.06.22
  6. 바르셀로나, 출발 4 2017.06.21
  7. 마지막날, 오키나와 2 2017.05.17
  8. 넷째날, 오키나와 2 2017.05.11
  9. 지난 가을, 제주 2017.05.09
  10. 부산맥주여행 2 2017.05.08

싸바도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7. 15:41


   토요일. 가우디 건물 까사밀라 썸머나잇을 온라인으로 예매해뒀다. 조식을 먹고, 어제 야경투어를 했던 고딕지구를 낮의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까사밀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어제와 변함없는 조식. 오늘의 빵은 첫날과 같은 크로와상. 같은 메뉴이지만 좀 다르게 먹어보고 싶어 바게뜨의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치즈와 하몽을 넣어 샌드위치로 만들었다. 크로와상까지 다 먹으니 또 배가 엄청 불러오고. 오늘은 모자를 챙겼다. 출발해봅니다. 야경투어의 가이드님이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보는 플라멩고 공연을 추천해서 온라인 예매를 하러 들어갔더니 직접 가서 표를 사는 게 조금 싸더라. 그래서 극장에 가서 중간정도의 가격으로 티켓을 구입했다. 여기 음악당 기둥 부근에서 푸른바다의 전설이 촬영되었단다. 기둥 앞에서 셀카를 찍었는데, 셀카는 어떻게 찍든지 좀 애처로워 보인다. 인스타그램에 셀카와 함께 "나는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다들 짝이 있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주문을 외운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현재 이 셀카문구는 시리즈가 되어 올라가고 있다. 읔- 최대한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 포인트!

   메모해두지도 않고, 지도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어제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어제는 리세우 극장에서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시작했다. 고딕지구는 정말 낮과 밤이 다르더라. 어둡고 혼자 걷기에 무서웠던 거리가 밝고 혼자 걷기에 더 괜찮은 거리로 변모해 있더라. 오래된 건물들, 오래된 골목들. 좋았다. 츄러스 맛집과 따로 구입하길 권장했던 초콜릿 맛집도 보였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사먹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 츄러스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다음번에 기회되면 먹어보자고 위안했다. 가이드가 왕의 광장 부근의 기념품 가게가 비교적 저렴하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상점직원이 있었다. 나를 보더이 단번에 꼬리아? 한국에서 '7살' 동안 살았다고 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서 좋았단다. 그러면서 티셔츠를 싸게 주겠다고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지도가 그려진 상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귀여운 바르셀로나 상징물들이 그려진 티셔츠에 관심을 보이니 벽에 걸려있던 걸 푹 찢어서 보여준다. 아, 나는 이걸 살 수 밖에 없겠구나. 결국 티 하나랑 친구가 선물해준 캔들에 쓰려고 라이터 하나를 샀는데, 라이터는 망설이다 안 산다고 하니 깍아준다 하더니 계산할 때 그대로 받겠다고 하더라. 그냥 제값을 줬다.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티 더 사라할까봐 사실대로 없다고 말했는데, 전화번호를 물어봤다는. (그래도 고마웠다;;) 

    아까 미사 중이라 입장하지 못했던 대성당에 다시 갔다. 나는 스테인드글라스만 보면 편안해진다.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사진을 찍으면 절대 내가 보고 있는 그대로 찍히지 않는다. 훨씬 아름답다. 그냥 가만히 올려다 보는 수밖에 없다. 대성당을 나오니 광장 한 켠에서 클래식 악기들의 연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 까딸루냐 전통 춤인 사르다나를 추고 있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일요일에 엄청 큰 대열로 사르다나를 추는 광경을 이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작은 동그라미였다. 쉽고 단단한 춤. 책에서 읽은 사르다나 춤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음악이 끝나니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도, 사르다나를 추던 어르신들도 모두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음악이 또 시작되니 다른 동그라미가 금새 만들어졌는데, 한 할아버지가 한창 진행되는 춤에 슬그머니 다가가 살며시 두손을 내밀어 합류하셨다. 귀여우셨다. 

    배가 고파 타파스 맛집을 검색해봤는데, 근처에 저렴하고 친철하다는 후기의 가게가 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바로 근처인데, 도저히 보이지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검색한 맛집보다 가격이 더 비싸고 그리 친절하지 않았지만, 들어왔으니 시켰다. 일단 물과 맥주. 타파스는 4개 세트를 주문했는데, 추천 받아서 그대로 주문했다. 맥주가 들어가고, 타파스를 하나하나 먹어보는데 나쁘지 않았다. 아, 괜찮네. 생각이 들 즈음 맞은편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내가 찾던 바로 그 가게였다. 아아아. 그렇지, 뭐. 내가 그렇지. 흠. 그래, 그냥 맥주나 하나 더 시키자. 세르베사 뽀르 빠뽀르. 든든해진 배로 화장실까지 다녀오고 가게를 나섰다. 고민하다가 그냥 숙소로 들어가기는 너무 배가 불러 구엘저택에 갔다. 어제 가이드가 들어가보면 참 좋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큰 감흥은 없었다. 구엘은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가우디와 동시대에 살았던 조지 오웰과 피카소가 모두 가우디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어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조지 오웰은 가우디가 부자들의 건물만 지어댄다고 싫어했다고 한다. 옥상에 오르니 바르셀로나의 강한 햇볕이 그대로 쏟아졌다. 가우디와 가우디의 꿈을 실현시켜준 구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저택을 나왔다. 

   그리고 숙소에서 까사밀라 입장 시간까지 쉬었다. 아, 정말이지 저질 체력이구나. 중간에 크게 쉬어주지 않으면 돌아다니질 못하겠어. 샤워를 하고,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는 원피스로 갈아 입고 까사밀라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안테나 뮤직의 워리어스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아, 신난다. 나는 지금 바다 건너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고 있다. 바람 결에 실려 내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 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 신재평이 콧소리를 콩콩 내며 여름날을 노래한다. 까사밀라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관람은 옥상에서부터 시작해서 두 층까지 내려온다. 그 밑에는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전반적인 건축 세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둘러보는 동안 자리는 아팠지만 좋았다. 아, 구엘저택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서 내게 지루했던 걸까. 다 둘러보고 나와서 저녁을 먹을 만한 데를 찾다가 그냥 까사밀라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만석이라고 해서 테라스에 앉았다. 피곤하지만, 일단 맥주. 대구 요리를 시켰는데, 색깔이 무척 예뻤다. 맛도 근사했다. 중간에 바뀐 웨이터가 내가 읽고 있는 가우디 책을 보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캄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서울에서 왔냐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니 좋아하는 뮤지션이 서울에 있다고 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이루마라고. 내 왼쪽 테이블에는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내 오른쪽 테이블에는 왠지 대만 사람인 것만 같은 귀여운 청년이 혼자 와서 맥주와 음식을 시켰다. 썸머 나잇 입장 시간이 되어 이루마를 좋아하는 친절한 웨이터에게 팁을 남기고 테라스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올라간 까사밀라 옥상. "특히 옥상은 카사 밀라 감상의 하이라이트로 옥상에 오르는 순간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는 사라지고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우주가 펼쳐진다. 한여름 밤에는 음악 연주회를 열어 아주 특별한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의자는 따로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앉으면 된다. (7박 8일 바르셀로나, p.142)"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잔잔한 물결을 닮은 건물과 정말 다른 세상에 온듯한 굴뚝과 구조물들이 즐비한 옥상에 앉아 밴드의 재즈 연주를 들었다. 음악이 딱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 여름밤 바르셀로나 도심 한가운데서 몇몇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 마법같은 분위기가 무척 설레였다. 비록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밴드가 보이는 좋은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이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외롭긴 했지만, 좋았더랬다. 옆 사람이 말을 걸어주는 마법같은 순간을 꿈꿨지만, 그런 순간은 절대 오지 않았고, 모두들 삼삼오오 행복해 보였더랬다. 도시는 어두워졌고,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이 적당히 쓸쓸한 것이 괜찮았다.


바르셀로나, 넷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M사이즈를 입어야 하는 내게 S사이즈를 추천해준 고딕지구 기념품 가게 직원. 살 빼서 입어야지 했는데, 왠걸 숙소에 와서 입어보니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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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르네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6. 00:52


   슬슬 조식 걱정이 되었다. 이 조식이 12일동안 나올 것이다. 빵을 두 개 주는데 하나는 바게트, 하나는 매일 바뀌는 듯 했다. 금요일은 달달한 도넛을 주었는데, 첫날 빵 두개를 다 먹어 너무나 배가 불렀던 게 생각나 가지고 온 지퍼팩에 싸두었다. (결국 먹지 못하고 버렸다는) 너무 물리면 커피만 마셔야 겠다.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일정을 짜두지 않아서 일단 걸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숙소에서 걸어서 19분 거리이다.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와서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수박도 사 먹었다. 무척 더웠다. 도착해보니 성당 근처의 공원에도, 성당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역시 아침 일찍 오는 것이 좋겠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 책을 읽다 궁금했던 근처의 산트 파우 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걷는 시간이랑 똑같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 내려서 병원까지 걷는데 나즈막한 언덕 같은 곳이 있었다. 올라가면 시내가 조금이나마 내려다보일 것 같더라. 그렇지만 화장실이 급해 그냥 내려왔다. 산트 파우 병원은 건축가 몬타네르가 지은 것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책에서 읽고 가고 싶어서 검색을 해봤었는데, 가우디가 환자들이 병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볼 수 있도록 각도를 조금 틀어서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입장권을 사는데, 오늘은 어떤 행사 때문에 이 건물들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지도에 표시해줬다. 그래도 괜찮냐고. 둘러보다 보니 준비하는 것이 공연 같았다. 밤에 야간투어 때에 들었는데 아마도 산트 호안 축일 관련 행사였던 것 같다. 

    사실 이곳에서의 로망이 있었더랬다. 정원의 벤치에 오랜시간 앉아 병원을 보며 사색을 하는 것.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더운 것.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어보았는데, 시원하긴 했지만 사색을 하기엔 너무나 더웠다.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건물들과 공원이 참 아름다웠는데, 이런 곳에서라면 저절로 병이 치유되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광객들은 모두 다 사그라다로 간 것인지 산트 파우 병원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그래서 좋았다. 마지막 건물의 2층에 오르니 사그라다 성당이 멀리 보였다. 몬타네르 건축가에 대한 흥미가 생겨 검색해보았는데, 정보가 그다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성희가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엘 나시오날에 갔다. 해산물, 스테이크, 타파스 등 4개의 푸드 코트가 있는 곳인데, 무척 핫한 곳이라고.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고 꼭 먹어보라고 했다. 일단 맥주를 시키고. 메뉴판을 봐도 잘 모르겠어서, 물어봤다. 친구가 지난 여행 때 여기 왔었어요. (사진을 보이며) 그 친구가 이걸 먹었어요. 그러자 잘 생긴 웨이터가 20유로가 조금 넘는 메뉴를 가르켰다. 이걸로 주문할게요. 이 분이 신입인지, 이 분 옆에 계속 매니저인 듯한 여자분이 따라 붙었다. 그는 잘 생겼으나 나의 정직한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웨이터가 가우뚱하면 매니저언니가 오더니 발음이 구리지만 나는 알아 들었다 하는 표정으로 요청들을 처리해줬다. 맥주를 작은 걸로 시켜 금새 마셔버렸는데, 왠지 스페인에 와서 와인 한 잔 안 마셔보면 안 될 것 같아 레드 와인을 시켰다. (잘생긴 웨이터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알아 듣는 척 하더니 주문을 넣지 않았다!) 매니저 언니가 한 잔만 시키는 거냐고, 강한 걸 원하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양도 많이 줘서 마시면서 머리와 속이 핑핑 도는 줄 알았다. 그래도 시킨 거는 다 마시자며 물과 함께 잘 마셨다. 스테이크도 맛있었다. 내가 미듐 웰던으로 시켜서 주인여자가 정말로?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웨이터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잘생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챙겨주었으므로 팁을 남겼다. 구린 발음 때문에 영어 울렁증에 빠져 잠시 우울했지만, 푸드 코트를 나오자 알딸딸 한 것이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저녁에 2시간 짜리 고딕뮤지컬야경워킹투어를 신청해놓아서 그때까지 숙소로 들어가서 쉬다 나왔다. 땀을 많이 흘려 씻고 누웠다. 다음에는 어떤 맛집을 갈까 검색해보고 (책을 좀 읽어라. 이 먼 곳까지 몇 권을 가지고 왔느냐.) 약속장소는 가본 곳이나 나는 충분히 헤맬 수 있는 아이이므로 좀 일찍 숙소를 나섰다. 람블라스 거리의 리세우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20분 정도 걸려 걸어갔다. 헤매지 않고 도착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디 들어가서 뭘 마실까 했는데 번화가라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는 아팠지만, 그리고 앞으로 2시간동안이나 더 걸어야 하지만, 별 수 없이 람블라스 거리를 좀 걸었다. 람블라스 거리는 어제와 느낌이 달랐다. 어제는 첫날이라 긴장해서 그런건지 실망스러웠는데, 오늘은 활기가 넘치고 괜찮더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문제였나. 구경을 하다 2분 정도의 시간동안 가위로 종이를 오려 옆모습을 만들어주는 예술가를 발견했다. 굉장히 신기해서 갈 때 보고 올 때도 또 봤는데, 갈 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올 때는 한 명도 없어서 비싸지만 돈을 내고 해봤다. 친구가 잘 돌아다니고 있냐고 물어봐서 사진을 보냈는데, 어, 이 사람 너랑 진짜 닮았다, 라고 했다.

   고딕지구는 밤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 힘들다고 해서, 그리고 낮과 밤이 무척 다르다고 해서 2시간짜리 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이름에 뮤지컬이 들어가는데, 이동하면서 가이드님이 선정한 음악을 들려준다. 그게 독특하고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 여러 야경투어 중에 요걸로 신청했다. 이벤트를 해서 반값이기도 했다. 대부분 낮에 가우디 투어를 한 사람들이 참여한 거더라. 삼삼오오. 나랑 어떤 아저씨 한 분만 혼자서 온 듯 했다. 나름 친해지고 싶었는데, 열심히 걸어다닌다고 기회가 없었다. 리세우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해 구엘 궁전 앞에서 설명을 듣고, 레이알 광장에서 가우디의 가로등이 켜지길 기다렸다가, 조지 오웰 광장과 피카소의 아비뇽 골목을 거쳐 산펠립 네리 광장으로 이동을 했다. 중간 중간 맛집과 쇼핑 스팟, 현지인처럼 보이려면 이곳에서 성호를 그어야 한다는 등의 정보 등을 알려주셨다. 왕의 광장에서는 금요일마다 사람들이 연주하고 춤을 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날도 공연이 있었다.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걸 계단에 앉아 잠시 지켜봤다. 라몽 베겡게르 광장과 대성당을 거쳐 까딸루냐 오페라 극장 앞에서 투어를 마쳤다. 가이드님은 이 코스를 다음날 똑같이 낮에 와서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을 하다 우연히 오늘 들은 음악들을 다시 듣게 된다면 오늘 이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걸었던 밤을 기억해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말도 했다. 가우디 투어는 하루종일이고, 책도 읽은 터라 조용히 다녀보고 싶어서 하지 않았는데, 했으면 어땠을까 야경투어를 하면서 생각을 했더랬다. 뭐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다. 아무튼 야경투어는 잘 한 것 같다.

   이날 가이드님이 말해준 것 중에 오늘밤부터 내일 새벽까지 여기 사람들은 밤을 새워 놀 거란다. 산트 호안 축일이기 때문에. 성 호안은 성 요한. 어쩐지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에도 총소리인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폭죽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찾아보니 성 호한 축일 2주 전부터 폭죽을 터뜨리면서 축일을 기념한단다. 이 날이 우리의 하지처럼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고. (응? ;;;) 가이드님은 지금 바다로 가면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볼 수 있어요, 라고 했는데 시간은 이미 11시.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거리 곳곳에서 폭죽은 계속해서 터지고 있었다. 물을 사러 슈퍼에 들어갔는데, 귀여운 라벨의 바르셀로나 크래프트 맥주가 있어서 샀다. 계산을 하려는데, (아마도 인도쪽) 11시가 되었는데도 잠을 자기는 커녕 똘망똘망한 눈빛을 빛내며 동생이랑 놀고 있던 주인집 아들은 고 귀여운 얼굴로 밤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올라! 올라. 께딸? 께딸. (아 귀여워-) 비엔? 씨, 비엔. 동생이 뭐라고 하자 단번에 달려가서 안아준다. 너무나 귀여운 것.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했다. 아디우스. 아디우스! 피곤했지만, 꽉 채운 하루를 보내 뿌듯했다. 까사밀라 썸머나잇 예약을 하고 너무나 피곤해 맥주는 한 병만 마시고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깨서 양치를 하고, 안경을 벗고, 스탠드를 끄고 잤다. 새벽에도 폭죽은 계속 터지더라.


바르셀로나, 셋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밤의 슈퍼에서 내게 말을 걸어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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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일찍 잔 덕분에 새벽부터 잠이 깼다. 새벽에 깨면 왠지 다시 잠들기가 아깝다. 새벽이 내게 주는 온전한 시간들 때문에. 숙소 테라스에 나가 해가 뜨는 걸 지켜보다가 아침산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걸어서 17분 거리에 가우디 건물 까사 바트요가 있었다. 까사 바트요까지 걸어갔다 오는 걸로 계획하고 가디건을 걸쳐입고 숙소를 나섰다. 걷다보니 가디건 걸치지 않았어도 되었더라. 아침일을 시작하는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부에노스 디아스- 



바르셀로나, 셋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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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후에베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3. 07:23


    가지고 온 책에 의하면 스페인 사람들은 총 다섯 번의 식사와 간식 타임을 가진단다. 오전 7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 끝난다. 정말 이렇게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오늘 넘치는 두 끼를 먹고, 너무나 피곤하고 더이상 무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 저녁 6시부터 누워 있었다. 가고 싶었던 라이브 바가 있었는데, 오늘 쿠바음악을 공연한다고 했는데, 결국 가질 못했다. 오늘의 키워드는 조식, 헤맴, 유심, 람블라스 거리, 크루즈, 예약하지 못했던 숙소의 레스토랑이다.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5시 즈음이었다. 바로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아직 어두웠다. 잠도 오지 않고, 오늘의 일정도 정하지 못해 책과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첫 시작인데 어디가 좋을까. 이동진 라디오의 여행코너의 여행잡지 편집장은 언제나 여행을 가면 처음과 끝은 전망대를 간다고 했다. 몬주익 언덕을 가볼까. 왠지 강행군이 될 것 같아 땡기지 않았다. 일단 유심을 사고, 시인과 소설가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극찬한 람블라스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일단 씻고 조식시간을 기다렸다. 문밖의 부엌에서 달그락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9시가 되어 나가보니 각방의 바구니에 각방의 조식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식탁에 앉아 먹었는데, 혼자 먹으니 영 어색하고 인사를 하며 나온 옆방사람이 방에서 접시를 가지고 나오길래 나도 치즈와 하몽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 먹었다. 보온병이 두 개라 2인분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우유였다. 빵은 바게트와 크로와상이었는데, 맛있었는데 너무 양이 많아 결국 남겼다. 나중에 먹으려고 싸뒀는데 결국 먹질 못했네.

   간밤에 바르셀로나에서 쓸 현금들을 정리해뒀는데, 1이라고 씌여진 첫번째 봉투에서 돈을 꺼냈다. 유심을 사야해서 여권도 챙겼다. 한껏 치장했지만 곧 더위에 온몸이 눅눅해지겠지. 동생이 준 핸드폰 도난방지용 줄도 챙겼고, 소매치기 방지용으로 옷핀도 가방에 꽂았다. 막내가 말한대로 크로스백의 지퍼부분에 손을 얹고 다녔다. 어제 숙소 언니가 카탈루냐 광장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해서 걸어가보려고 했는데, 너무나 소매치기를 의식해서인지 핸드폰을 절대 꺼내보지 않아서 이 방향이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 전혀 맞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정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다. 땡볕에 한 시간 넘게 헤매다 보니 너무나 지쳤다. 물을 사려 들어가서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 친절하지 않았던 수퍼마켓 직원은 결국 거스름돈 받는 걸 잊어버린 나를 이용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은 맞게 가르쳐줘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옷핀을 빼서 지갑을 재빨리 꺼내고, T-10 티켓을 사고, 지갑을 넣고 옷핀을 꽂고, 표를 쓰고, 다시 옷핀을 빼서 가방에 티켓을 넣고, 다시 옷핀을 꽂고, 손은 가방 지퍼 위에. 지하철에서 소매치기가 많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곁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사실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첫날 돈을 잃어버리면 너무나 속상할 것 같아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여권도 있고 해서.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카탈루냐 광장 도착. 보다폰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번호표를 뽑지 않고 중간중간 끼어드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고 다 처리해주고 있더라. 40여 분 기다려 내 차례가 왔고, 3.5기가 유심을 샀다. 이제 바깥에서도 구글지도를 쓸 수 있게 됐다.

   람블라스 거리를 걷는데, (손을 가방지퍼 위에 얹고) 나무들이 굉장히 커다랬다. 올려다보면 나뭇잎 사이로 뜨거운 빛이 통과하고 있었는데 그게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시인과 소설가들이 극찬한 거리는 흠, 내게는 그냥 그랬다. 거리의 양옆으로 아이스크림 가게, 기념품 가게, 꽃 가게 등이 즐비해 있었다. 나무만 기억에 남는다. 보케리아 시장에도 들렀는데, 여기서도 계속 소매치기 생각을 했다. 여기도 많다고 했지, 소매치기가. 그러니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도 워낙 많고.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 책을 볼 때마다 무척 먹고 싶었던 생선튀김이 있었는데, 작은 생선을 통째로 튀긴 페스카도 프리토였다. 열빙어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생선 튀김이 얼마나 고소할까 궁금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페스카도 프리토를 팔고 있었는데, 아침을 많이 먹어 도저히 들어갈 배가 없었다. 맥주 한잔이랑 같이 먹으면 딱일 것 같은데. 작은 수박주스를 하나 사 마시고 시장을 나왔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치고, 행위예술을 하시는 두 사람에게 2유로씩 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읔, 내가 못 나왔다. 한 사람은 총을 든 카우보이였고, 한 사람은 날아다니는 공룡 비슷한 분장이었다.

   콜럼버스 기념탑을 지나 바다에 도착했다. 콜럼버스 기념판은 무척이나 높았고, 새겨져 있는 조각들이 흥미로웠다. 동그란 탑을 빙 둘러 보았다. 제일 처음 읽은 바르셀로나 관련 여행책이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였는데 바르셀로나의 문화재들에 대한 역사적인 세세한 설명이 있어 좋았다. 오늘은 람블란스 거리와 콜럼버스 기념탑 편을 다시 읽어보고 잠들어야 겠다.

   그리고 지중해 바다에 펼쳐진 벨 항구를 구경하다가 아침에 찾아두었던 선박회사 매표소를 찾았다. 배를 타고 40분 도는 코스와 1시간 반을 도는 코스가 있는데, 20분 후에 40분 코스가 출발을 했다. 이것으로 표를 달라고 하니 나무 보트예요, 괜찮나요? 라고 물었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하자 팜플렛의 배 사진을 찾아줬다. 아, 좋아요! 7유로를 지불했는데, 직원이 환하게 웃어줘서 좋았다. 2시부터 3번홈에서 승선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항구를 둘러보는데, 나무 그늘에 서니 어떤 남자가 옆에 와서 철퍼덕 앉았다. 이어서 여자가 왔다. 아, 이건 소매치기가 분명해, 라고 확신하며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승선시간이 되어서 냉큼 배에 올랐다. 배는 예정시간보다 좀더 늦게 출발했는데, 배에 타서는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이번에 산 플레이어는 랜덤으로 노래가 나오는데, 김윤아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배는 물결에 조금씩 출렁거리고, 그늘에 앉아본 햇볕은 어여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너무나 좋고. 좋고, 좋고, 좋다, 라고 생각했다. 2층에 승객이 1/3쯤 차자 배가 출발했다. 배 안에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내내 들었는데, 배가 그늘에 있을 때는 바람이 서늘했고, 뱃머리를 돌려 돌아오는 방향에서는 배가 햇볕에 있어 바람이 따스했다. 그러니 두 방향 모두 좋았다. 이어폰을 들으면서 모두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보였고.

   배 안에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벨 항구 근처에 페스카도 프리토 맛집이 있었다. 여긴 메뉴가 단 네 종류 뿐이고 현지인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게 여길 가서 생선 튀김에 맥주를 마시자. 배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는데, 두 사람의 어여쁜 세뇨리따가 인사를 하며 떠나가고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흥이 잔뜩 오른 세뇨르 무리들이 차우! 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걱정하면 들어갔는데, 직원이 영업이 끝났다는 손짓을 했다. 나와서 구글지도 정보를 검색해보니 브레이크 타임이 3시 15분부터였다. 그때가 딱 3시 15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다시 오리라. 배가 고파져서 어딜 갈지 궁리하다, 원래 예약하려 했는데 하지 못한 호텔의 1층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조금 걸어가 H14번 버스를 타면 4정거장이었다. 가보자. 정류장에 내리니 내가 창밖 풍경으로 원했던 시우따델라 공원이 펼쳐졌다. 아, 그냥 지도로 보기만 했는데 넉넉한 부지에 단번에 마음에 들었던 곳. 역시 나의 예감은 맞았다. 좋더라. 아쉬울 정도로.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물과 맥주를 달라고 했다. 아쿠아 앤(그리고는 스페인어로 찾아놔야겠다!) 세르베사 뽀르 빠뽀르. 맥주가 빅과 스몰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빅을 주문했다. 아, 시원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주문판을 한참 보다가 메뉴 델 디아를 주문했다. 스타터와 메인메뉴도 선택해야 되는 건지 몰랐는데, 사실 뭐가 뭔지 몰라 둘다 추천을 받았다. 결과는 둘다 대만족. 생선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다만 맥주를 빅으로 먹어서 그런지 배가 금새 차서 빵은 손도 못댔다. 후식으로 과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멜론만 있다고 했다. 오케이. 아, 그런데 멜론이 정말이지 너무나 맛있었다. 구글지도로 검색해보니 숙소까지 도보로 18분이어서 힘을 내기 위해 에스프레소도 주문해 마셨다. 맥주랑 커피까지 마셨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나왔지만, 맛있는 점저였다. 내 담당 서버는 좀 무뚝뚝했는데, 중간중간 와서 맛있냐고 물어봐준 나이드신 분이 정말 친절했다. 

   전망대고 나발이고 너무 힘들어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눕고 싶었다. 걸어가는 길에 제법 큰 마트가 있어 물 세병과 맥주 네 캔, 과자 하나를 샀다. 숙소는 역시 나답게 단번에 찾지 못하고 한 바퀴 돌아 찾았다. 열쇠가 세개 있는데, 하나는 건물 대문 열쇠, 하나는 현관 열쇠, 하나는 방문 열쇠이다. 어제는 건물 대문이 늦은 시간이라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나갈 때도 들어올 때도 열려 있었다. 들여다 보니 건물 전체가 숙소는 아니었다. 2층까지 올라가 현관문을 여는데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열리지가 않는 거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마트 봉지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열쇠를 돌려보는 데도 열리지가 않았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없는지 기척도 없었다. 어쩌나. 어쩌나. 어제의 긴장이 되풀이되고 있네. 이게 뭐라고 안 열리나. 열쇠가 안 열린다고 매니저한테 또 전화를 해야 하나. 어제는 벨을 제대로 못 눌러서 전화하고. 그러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사람이 나왔다.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그 분은 내 말이 아예 안 들리는 듯 했다. 다시 오른쪽, 왼쪽, 진땀. 아래층 분이 다시 돌아왔다.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아래층 사람은 그냥 들어가고 잠시 뒤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올라다봤다. 문이 안 열려요. 열쇠가 있는데, 문이 안 열려요. 아저씨는 올라다 보며 뭐라고 했는데, 내가 라이트? 라고 하니까 오케이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돌려봤지만 열리지가 않는 문. 안 열려요, 다시 말하자 아저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2층으로 올라와줬다. 쏘리, 쏘리를 연발하는 나의 열쇠를 받아들고 왼쪽으로 두번을 돌리니 문이 열렸다. 맙소사.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왼쪽인 게 분명한 단어와 두번인게 분명한 단어를 말했다. 땡큐 쏘머치,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아저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씩 웃으며 내려갔다. 아, 살았다.

   나의 101호 냉장고에 사가지고 온 물 세 병과 맥주 네 캔을 채워넣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속옷과 오늘 입은 티셔츠를 빨아 널었다. 테라스로 나가봤다. 아직 6시인데 누워도 될까. 부지런한 여행자가 되지 않아도 될까 고민했지만, 너무나 피곤한 것. 내일도 모레도 돌아다녀야 하니 일단 눕자했다. 피곤하면 아픈 부위가 있는데, 거기가 아프기 시작해서 걱정이 됐다. 냉장고에서 물을 가져와 발포 비타민을 넣었다. 오마이갓. 물이 탄산수였어. 그것도 엄청 달달한 탄산수였어. 실수 연발이구만. 그렇게 누워 자다 깼다 자다 깼다를 반복했다. 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마음에 드는 티비채널을 발견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깼는데, 완전히 깨어버렸다. 시차 적응이 안되고 있는 건가. 맥주 한 캔을 땄고, 오늘밤에는 헤밍웨이 소설을 시작 할 거다.


바르셀로나, 둘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유람선에서 바르셀로나 바람과 햇살을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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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도착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2. 07:52


   정말이지 긴긴 비행이었다. 사실 혼자 이렇게 비행기 오래 타기 싫어서 멀리 있는 여행지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좀이 쑤셔서 잠도 자지 못하고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한 몇몇 시간들만 제외하면 그래도 잘 보냈다. 책을 조금 읽었고, 영화는 <히든 피겨스>를 온전히 봤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른 몇몇 영화를 졸다 보다 졸다 보다를 반복했다. 아직 배가 꺼지지 않았는데 싶었지만, 기내식이 나오면 꼬박꼬박 먹었다. 맥주는 첫 기내식에 같이 먹었는데, 왠지 몸이 안 받는 거 같아 더 마시지 않다가 간식에 새우깡이 있길래 한 캔 더 달라고 해서 마셨다. 몸이 영 이상해 더이상 마시진 않았다. 원래 앉으려고 예약해뒀던 자리는 옆자리 할머니가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바람에 바꿔주었다. 바꾼 자리도 나쁘진 않았지만, 예약자리가 좀더 좋았는데. 옆에 앉은 청년은 정말 열심히 영화를 보고, 기내식을 먹었다. 승객 때문에 1시간 늦게 출발했는데, 도착은 10분 늦었다.

   입국심사대에서 소심하게 인사를 시도해보았다. 올라. 그냥 도장만 쾅하고 찍어줬다. 그라시아스. 아무 말도 없는 무표정한 직원을 뒤로 하고 바르셀로나에 입성했다. 공항에서 유심을 사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여자아이가 너무나 꼼꼼하게 가격과 사양을 체크하고, 뒤에 있는 한국 사람에게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냐는 등 동의를 구하고 있어서 나와 버렸다. 레이크 체크인이라 돈을 더 내야 하는데, 10시까지 간다고 얘기해뒀더랬다. 숙소에서 추천해준대로 버스 대신 택시를 탔다. 택시 안내하는 분이 한 사람이냐고 묻더니 보통보다 좀더 큰 택시를 가리켜서 돈이 더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택시비는 바가지를 쓴다고 해도 그냥 다 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기사분에게 프린트해온 숙소 약도와 직접 적은 주소를 보여주면서 여기에 저를 내려줄 수 있나요? 물었는데 기사분이 주소의 숫자를 물어봤다. 내가 7이라고 적었는데, 이게 무슨 숫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7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며 웃으면서 볼펜으로 적어 보여줬다. 그러니까 앞머리가 없는 7의 중간에 선을 쫙 그어줘야 된다는 것.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기분 좋은 바르셀로나 하늘이 펼쳐졌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도저히 호텔같지 않아 보이는 길에 나를 내려다줬다. 정말 여기가 맞냐고 물었다. 맞다면서 가리킨 곳에 숙소의 이름이 아주 조그맣게 써져 있었다. 그라시아스. 아저씨가 씩 웃더니 유유히 떠났다.

   그러니까 이 숙소로 말하자면, 흠. 이야기가 긴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쓰고 보니 이것도 기네. 하지만 더 길게 말할 수 있다는. 흐흐-) 나는 이번 바르셀로나 숙소를 알아보면서 내가 창문성애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친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니네집 창문을 보라고 했다. 우리집은 한 면이 모두 다 창문이다. 게다가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창문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나는 그러한 숙소를 계속 알아봤는데, 비싸거나, 냉장고가 없거나, 체크인이 까다롭거나, 마음에 걸리는 후기가 드문드문 있는 곳들이었다. 내가 숙소 욕심이 있다는 걸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또 알게 됐다. 아무튼 제일 처음 본 숙소가 있었는데, 비싸지 않았고, 공원 옆이라 창문으로 나무가 보였다. 작은 호텔이었는데, 친절하고 1층 레스토랑 음식도 맛있다며 후기가 좋았다. 그런데 냉장고가 없었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 하는데. 일단 예약해두고 몇몇 숙소의 예약과 취소를 반복했다. 주말내내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자 스트레스가 쌓여 결심했다. 그래, 첫번째 숙소인 거야! 냉장고가 혹시 프런트에 있냐고 물어보려고 메일을 쓰려는데, 잘 안 쓰는 계정으로 한 달 전에 취소 메일이 와 있었다. 내가 카드 번호를 잘못 입력했었나보다. 호텔에서는 카드 정보를 다시 알려주면 예약을 할 수 있다고 답장을 보내왔지만 메일로 번호를 보내는 게 영 찜찜했다. 결국 나는 이전에는 꼼꼼하게 따졌던 무료취소도 되지 않고, 가격도 이 정도는 좀 비싸다 싶은 방을 예약했다. 몇주동안 이 시기 바르셀로나 방값이 비싸다는 걸 확인했고, 9년만에 주어진 긴 휴가인데 근사한 곳에서 묵고 싶었다. 이곳은 아침을 주는데, 각 방의 바구니에 넣어서 준다고 했다.

   근사한 발코니가 있는 오래된 건물 앞에서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쩔쩔 매고 있었다. 벨이 있는데, 여러 개이고 이건가 싶은 벨은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어쩌나. 예약해두고 못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했다. 문장으로 말하자는 처음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당황해서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났다. 내 이름은 이금령이에요. 예약했어요. 지금, 문. 문앞. 그러자 당황하지 않은 상대편이 웃으면서 1-1을 누르라고 했다. 1-1이요? 누르니 여자목소리가 나왔다. 아, 1-1이었어! 고맙다고 말하고 끊었다. 숙소에서 투숙을 하는 것 같은 아저씨가 마침 나타나서 열쇠를 돌려 문을 열어줬다. 그라시아스. 2층에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가자 예쁘고 착하게 생긴 아가씨가 나를 맞아줬다. 환영합니다. 좋은 여행이었나요? 그 뒤 알아듣기 힘든 말들이 나오자 나는 금새 고백해 버렸다. 아이 캔트 스피치 잉글리시 베리 웰. 아가씨는 왠지 모르지만 조금 긴장되는 목소리로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천천히, 그리고 쉬운 단어로만 이야기해줬다. 일단 남은 금액과 레이트 체크인 비용을 결제했고, 부엌을 소개해줬다. '내' 냉장고도 알려줬다. 그리고 아침으로 차를 먹을건지, 커피를 먹을건지 물어봤다. 그리고 숙소 안내 종이를 펼쳐 와이파이 비번과 근처 관광지를 소개해줬다. 어떻게 갈지, 몇번 버스를 탈지도 알려줬다. 쇼핑거리도 알려줬는데, 어떤 거리를 가리키면서 샤넬 같은 거 파는 비싼 거리라고 인상을 찌푸렸다. 물어볼 거 없냐고 해서 없다고 했더니, 언제든 뭐든지 질문하라며 방으로 안내해줬다. 한국어로 땡큐를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보더니, 귀엽게 따라하더라. 그뒤 아리가또, 를 말해서 아가씨도 나도 당황했는데, 덕분에 일본인 손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101호에서 열 두 밤을 잘 거다. 오래된 건물을 리뉴얼한 거라 문이 정확하게 맞지 않고, 문소리도 삐걱삐걱 난다. 나는 여기가 꽤 마음에 든다.


바르셀로나, 첫째날.  오늘의 행복했던 일 : 바르셀로나 무사히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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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출발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1. 13:10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언제나 실패하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비행기를 놓치기도 했고, 소매치기를 당할 뻔 하기도 했고, 계획했던 곳을 못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좋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 여행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에피소드만 일어나지 않기를. 이번 여행을 생각하면서 어떤 이미지들이 떠올랐는데, 처음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이 긴긴 여행을 떠나게 된 순간 그에 손에 들린 게 책 한 권과 기차표 하나였다는 것. 두번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까지 오는 비행기에서 작은 등 하나 켜두고 두꺼운 책을 긴 비행 내내 읽던 서양인 청년. 세번째는 리스본 테주강에서 이어폰을 끼고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강을 바라보던 동양의 여자아이. 가서 쓰라고 차장님이 주신 용돈, Y씨가 생일선물로 주려고 고민했던 축구표, 우울할 때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봉투에 유로를 넣어준 동생의 남자친구, ​포르투갈에 이어 바르셀로나 여행에도 배웅을 나와준 보경이, 산과 바다, 도시가 있는 완벽한 여행지라고 나를 바르셀로나로 이끈 혜진언니까지,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고 출발한다. 어제 나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언니를 반갑게 만나는 꿈을 꿨으며, 오늘 아침에는 외로울까봐 잔뜩 챙겨넣은 책들 때문에 너무나 무거워 휘청거리기까지한 캐리어를 계단 밑으로 들어다준 고마운 청년을 만났다. 그래, 좋은 여행이 될 거다. 나는 이번 여행을 위해 새 칫솔과 새 치약을 샀고, 새 엠피쓰리플레이어도 샀고, 새 책과, 새수 첩, 새 수분크림과 새 옷을 샀지만, 그래, 괜찮을 것이다. 돌아와서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 그럼, 지금까지의 걱정을 접어두고 다녀오겠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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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끝에 선생님은 놀라운 말을 했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했어요. 혼자 왔으면 보지 못했을 것을 봤어요."

   "선생님, 저도 즐겁게 놀다 가요.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관대해요. 저를 용안사에 데려갔잖아요. 기쁨은 희귀한 것이니 기쁨을 주는 사람만큼 관대한 사람은 없어요. 기쁨을 느꼈으니 잘 논 것 아닌가요?"

- p.103 정혜윤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中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날, 비가 왔다. 비가 많이 왔다. 우리는 펼쳐놓았던 짐을 챙기고, 시큰한 냄새가 고요하게 나던 숙소를 나왔다. 빗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두어 개 쯤 건너 인적이 드문 커다란 길가의 정류장에 섰다. 시내의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막내가 첫날 사고 싶어했는데 고민하다 사지 못했던 것들을 사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가 왔고, 각자의 캐리어를 들고 떨어져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내 앞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몸을 돌려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습니까? 오키나와 어땠습니까? 수영은 했습니까? 한국에서 오키나와까지 얼마입니까? 등등. 짧디 짧은 일본어라 대체로 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그러던 사이 시내에 들어왔고, 내릴 때쯤 할아버지와 우리가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다는 걸 알았다. 내릴 때 잔돈을 받을 수 없다는 걸 모르고 돈을 넣어버렸는데, 괜찮다고 했지만 거스름돈을 어떻게든 만들어 주려는 버스기사님 때문에 할아버지랑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동생은 남은 돈으로 원하던 것을 샀다. 마지막 날에도 우리는 다투고 화해했다. 오키나와에서 우리는 수십번 다퉜다 수십번 화해했는데, 이 여행 뒤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여행스타일이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막내가 가지고 싶어했던 물건 중에 미키마우스 그릇이 있었는데, 집에서 각자 먹을 수 있게 세 개를 샀다. 셋이 다같이 먹는 날은 거의 없었고, 내가 색깔별로 돌아가며 아주 잘 쓰고 있다.











 
    결론은, 잘 다녀왔다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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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오키나와

from 여행을가다 2017. 5. 11. 21:23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만났다.'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서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이 문장을 좇아 마침내 여기 서 있어, 라고 생각하니 행복으로 마음이 뻐근했다. 눈앞에는 나를 크레타까지 데려다 줄 거대한 6층짜리 배가 서 있었다.

   십사 년 전의 일이다.

   그리스에 가면 뭐가 있는데? 하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무심코 이 말부터 나올 것 같다. 카잔차키스의 묘지가 있지. 그 묘지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이오니아식 마을과 에게 해가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만한 곳이야. 아마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 김성중, '묘지와 광장'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中



   끊어져버린, 작년 오키나와 여행의 기록들. 이제는 기억이 조금씩 가물가물해져버렸지만 (이러니 기록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데), 기록을 이어가본다. 요즘 드는 생각은, 여행지는 가기 전보다 다녀온 후에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 보게 되는 것 같다. 가기 전에는 곧 떠날 미지의 대상인데, 다녀온 후에 영화나 책이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언급이 되면 두 눈을 빛내며 보게 되고, 좀더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되더라. 앗, 내가 갔던 곳이다! 저런 역사도 있었구나, 하면서. 나의 경우는 다녀와서 그곳에 대한 공부를 좀더 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전 읽고 본 소설과 영화 <분노>에서도 오키나와에 대한 공부를 했던 것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하여, 넷째날 오키나와의 기록들. 넷째날은 여유있게 일어나고, 아메리칸 빌리지에서만 느릿느릿 움직이기로 했다.




어젯밤의 흔적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자 동생은 계속 자게 내버려두고, 지갑과 책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커피 마시면서 책 읽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편의점에서 커피를 샀다.




계속 후타츠라고 말해서 커피도 후타츠라고 말해버렸다. 그러고는 나는 한 잔만 주문했으니 한 잔만 받아들고 나왔다. 나중에 바닷가에서 영수증을 보니 두 잔 가격이더라. 다시 편의점을 갈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150엔짜리 히토츠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아침.




어느새 비가 그쳤고, 전날 봐둔 바다와 가장 가까운 원형의 공간에 도착.




가만 보고만 있어도 지겹지 않았던, 잘도 움직이던 오키나와 대형 구름들.




처음으로 오키나와에 관심을 가지게 해준 메도루마 슌의 소설책을 가지고 갔다. 오키나와 바다를 마주하고 제일 좋아하는 단편을 읽는데, 뭉클했다. "고타로, 후미도 그렇고 겐타로와 도모코도 걱정하고 있어. 빨리 집으로 가자." 고타로는 현재 혼수상태. 우타는 하루종일 바다만 보고 있는 고타로의 혼에게 집으로 빨리 가자고 말했다. 모두들 걱정하고 있다고.




곧 비를 쏟아낼 것 같은 구름.




바다사진을 계속해서 찍고 있으니 줄담배를 피우며 쭈그린 자세로 바다만 계속 보고 있던 일본언니가 내게로 왔다. 귀엽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진 찍어줄까요? 아, 무서운 언니인 줄 알았는데. 내가 들어간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아서는 모른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숙소 근처에 어제 저녁에는 없던 도시락 가게가 열려 있었다. 오전에만 여는 가게인 듯 했다. 맛있어보이는데, 가격도 저렴했다. 고민하다가 나는 큰 것, 동생은 작은 걸로 구입. 밥이랑 반찬이 따끈따끈했다.




동생은 일어나질 않고, 후식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생이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비가 와서 테라스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는.




대신 폭신폭신 맛났던 팬케이크를 먹었다.




무척 고급스러웠던 카페였다.




근처를 돌아다니다 배고파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왔다. 비가 와서 구경하는 것도 마땅치 않고, 이동도 힘들었다. 찾으려던 스테이크집을 결국 못 찾아 카레 파는 가게로. 맥주 반주는 기본입니다.




맛은 그냥 그랬다.




동생은 피곤하다고 해서 숙소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나는 미술관이 있길래 들어갔다. 1층은 무료관람이었고, 2층부터는 유료관람이었다. 1층을 보고 괜찮아 입장권을 샀다. 보쿠넨 미술관이라고, 나카 보쿠넨이라는 판화 작가의 전시였는데, 1년 내내 그의 작품이 전시된다고 했다. 계절마다 다른 주제로 작품들이 바뀐단다. 언젠가 다른 계절에 와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에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조용히 관람했는데, 그 고요한 시간이 무척 좋았다. 건물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있었는데, 올라가보니 아메리칸 빌리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방명록이 있어서 사람들의 기록을 들춰 봤는데, 한국인 관람객의 기록도 있었다. 나도 남겼다.

엽서 한 장을 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 돌아오는 길.

운동장이 있어 들어가서 한바퀴 걸어봤다.

비온 뒤라 공기도 선선하고, 초록들도 더 선명해지고, 좋았다.




충전완료된 동생이 궁금했던 가게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숙소 근처에 바다가 내다 보이는 분위기가 좋은 가게가 있었는데, 전날에는 마음에 드는 자리가 없어 들어갔다 그냥 나왔더랬다. 그래, 가보자.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좋은 자리에 앉았다.




가게에서 밥을 챙겨줘서 그런지 귀여운 냥이 가족들이 떼지어 왔다.




트인 곳이라 바람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해가 지는 동안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고 도마뱀이 나타나서 화들짝 놀란 동생. 보호색으로 위장해 나무틀에 숨어있는 도마뱀 때문에 안절부절 못해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일어났다. 오는 길에 바다에 들렀는데, 멀리 번화가 쪽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동생은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자고, 내일 아침 떠나야하므로 나는 쟁여두었던 맥주를 꺼내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소라의 '믿음'을, '이소라의 프로포즈' 버전과 '유희열의 스케치북' 버전으로 연이어 보았다. 많은 밤이 지나,를 부를 때 두 명의 이소라가 있었다.




여행이 이렇게 철학적인 것인가. 여행이 거듭될 수록 깨닫고 있다. 빗소리가 창문을 마구마구 두들리고 혼자 깨어 있었던 밤. "내일 돌아가면 이 숨막히는 후덥지근함이 바로 그리워지겠지."라고 이 날 메모해뒀었는데, 정말 그랬다.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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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제주

from 여행을가다 2017. 5. 9. 19:40









































2016년 가을, 친구들과 함께 한 제주여행.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함께 길을 걸었던 것. 억새가 만발했던 산굼부리, 떨어진 열매를 으깨 연신 향을 맡으며 걸었던 비자림, 육중한 몸뚱아리도 흔들거린 강력한 바람이 불었던 섭지코지까지. 아침 산책으로 혼자 걸었던 하도리 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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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맥주여행

from 여행을가다 2017. 5. 8. 23:50


   봄이 오기 시작할 때, 부산으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왔다. 2017년, 아직 여름도 제대로 오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기억들이 쌓이고 있다. 좋은 시간들은 좋은대로, 그렇지 않은 시간들은 그렇지 않은대로. 새삼스럽지만 어떤 관계든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게 요즘 나의 결론. 이동진은 좋은 일이 생기면, 지금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곧 다가올 좋지 않은 일을 염려한다고 하는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점점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인생은 쉴새없이 오르고 내리는 뽀족한 그래프의 연속 같으다. 내려갔을 때 너무 좌절하지 않고, 너무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길 위해 매일매일 나름대로 수련하고 있지만, 내려가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든다.

























1916년 :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타히티 섬을 여행한다.


1919년 : 장편 <달과 6펜스>를 출판하여 주목을 받는다. <인간의 굴레에서>도 재평가를 받게 되어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후 1958년 작가 생활을 끝낸다고 선언할 때까지 단편집, 장편, 희곡, 자전적 회상록, 자전, 역사소설, 에세이, 평론집 등 무수한 작품을 남긴다. 1965년 12월 16일, 남프랑스의 니스에서 향년 91세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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