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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 모두들 잘 살고 있습니까?
    서재를쌓다 2007. 7. 30. 00:13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작정인거다. 더군다나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였고. 그래서 이번 릴리 프랭키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망설였다. 실제로는 <도쿄타워> 이전에 집필했던 단편들이고 <도쿄타워>에서 너무 눈물을 빼버려서 이번 책에서 왠지 실망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난 후, 반반이였던 것 같다. 괜찮았다에 반, 역시 <도쿄타워>에서 너무 많이 기대했었구나 반.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는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대마농가의 신부'에서는 도쿄의 여자 다에코가 대마를 생산하는 어느 농촌의 대부호 기이치로와 선을 보는 이야기다. 기이치로의 집은 엄청나게 부자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농촌의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두번째 '사형'은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인데, 사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다.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라서 어떻게 죽는냐가 결정된다는.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쉽게 죽을 수 없다. 세번째 '둥근파꽃'은 육제적인 본능에 대한 이야기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아내지만 육체적인 본능의 쾌락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네번째, '오사비시 섬'.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제일 좋았다. 이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오사비시 섬은 남성적인 섬인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결국 누군가를 비난하지만 우리도 다른 바 없지 않냐고 말한다.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그릇되었다는 생각하는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고 반복됨에 따라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 다섯번째, 'Little baby nothing'은 하는 일 없이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던 세 친구에게 좀더 열심히 살아나가야겠다는 활력을 일깨워주는 어떤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너덜너덜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짧은 글이다. 발톱이 너덜너덜해지고, 삶이 너덜너덜해진 사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

       전체적으로 소설들은 현재의 너덜너덜한 우리 사회를 말한다. 하지만 배경은 미래의 어떤 날인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농촌의 모습, 끔찍한 사형제도, 미래의 언젠가 내게 올 것만 같은 지금과는 다른 내 과거를 아는 어떤 남자, 일본 어디에도 지명을 찾을 수 없는 오사비시 섬, 지금은 너덜너덜하지만 언젠가 열심히 살아갈 희망을 찾을 우리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일어날 전쟁 중간에 서 있는 나 자신.

       작가 소개란에 릴리 프랭키는 퇴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점이 걸리더라. 한번 쓰면 두번 다시 자기 글을 돌아보지 않는 작가라니. 어쨌든 이제 릴리 프랭키를 스타일을 알았고 계속해서 어떤 작품들을 써 나갈지 기다릴 거다. 어쩌면 어떤 책은 '릴리 프랭키가 퇴고와 수정을 한 첫번째 작품'이라고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퇴고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릴리 프랭키의 소설은 말 잘하는 친구가 옆에 다정히 앉아 한 시간, 두 시간씩 자신의 이야기나 언젠가 상상해본 이야기라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뭐 나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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