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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모퉁이다방 2022. 1. 7. 13:41
지난주에는 몸과 마음이 피폐했다. 결국 남편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밤에는 그 모습을 보인 걸 후회하지 않았으나 다음 날 바로 후회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아무튼 그렇게 한 번 대대적으로 폭발을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 뒤로 내가 한 건 열심히 요리를 한 것. 이상하게 그렇게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와 고수를 꺼내 굴소스를 넣고 볶아봤다. 상암 양꼬치집의 좋아하는 메뉴를 최대한 간소화한 것. 밑반찬 하나에 김치 하나를 내어놓고 밥 한 그릇씩 뚝딱했다.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던 남편도 맛있다고 했다. 다음날 점심에는 베이컨을 꺼내 잘게 썰고 계란을 추가해 볶음밥을 만들었다. 지난주에 만들어둔 유자향 피클을 곁들여 먹었다. 간단한 요리였는데 맛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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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가는 길극장에가다 2022. 1. 5. 01:16
(스포일러가 있어요) 이라는 책을 식탁에 두고 야금야금 읽고 있다. 영화 속 와인을 마시는 장면들, 그 와인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한 책인데 짤막한 글들이라 조금씩 읽기 좋다. 읽고 있으면 별로일 것 같아 보지 않았던 몇몇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은 그 중 한 편.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의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 앤이 유명 영화감독인 남편 마이클의 칸느 출장에 동행했다가 컨디션 난조로 먼저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시작한다. 이때 마이클의 사업 동료인 중년의 프랑스 남자 자크가 앤을 파리에 데려다 주겠다고 자처한다. 칸느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로 7시간. 하루 종일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될 거라고 짐작했지만, 여행은 그 이상으로 길어진다. 자크는 파리에 가려는 마음이 있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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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모퉁이다방 2021. 12. 27. 01:01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평일에 혼자 점심을 먹을 때 배추와 냉동삼겹살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냄비에서 익혔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조금 더 풍성하게 먹어볼 생각으로 이유식에 넣을 소고기를 사러 갔을 때 옆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팽이버섯과 느타리버섯, 콩나물을 사왔더랬다. 크기는 작지만 깊이가 있는 후라이팬을 꺼내 물을 약간 붓고 야채와 고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쁘게도 아니고 그냥 조금씩 적당히 쌓았다. 배추도 잘라 넣고 냉동삼겹살도 넣고 팽이 버섯과 느타리 버섯도 뜯어 넣었다. 콩나물도 넣고. 중간중간 소금과 후추도 적당히 뿌리고. 뚜껑이 안 닫힐 정도로 높게 쌓아놓고 뚜껑을 얹였다. 마지막에 맛술을 약간 두르고 가스불을 켰다. 약불에 천천히 익혔다. 익는 동안 남편의 소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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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티비를보다 2021. 12. 12. 00:52
아이는 이제 하루에 네번 혹은 다섯번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 트림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깨어난지 두 시간 즈음이 되면 칭얼대기 시작한다. 잠이 오는 것이다. 안방의 범퍼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엉덩이를 토닥여주면 잠에 든다. 눈을 자꾸 비비는데도 자지않고 계속 칭얼거리면 안고 등을 두드려준다. 좀 진정이 되면 소파에 앉아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그러면 얼마 안 가 잠이 든다. 그때부터 한시간 길게는 두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다. 피곤할 때는 같이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자버리면 하루 중 내 시간이 없어 아쉽고 아쉬워서 깨어있는 상태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 주로 밥을 먹는다. (시간이 아까워 간단히, 아주 빨리 먹는다 ㅠ) 달달한 것과 커피를 동시에 섭취하기도 한다. 책을 몇 자 읽기도 하고, SNS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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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초모퉁이다방 2021. 12. 9. 17:26
아이는 이제 안다. 힙시트 꺼내는 걸 보면 자기를 안아줄 거라는 걸. 그래서 울다가도 울음을 멈춘다. 그리고 가만히 올려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오늘 그렇게 아이를 안아주려고 힙시트의 허리 부분을 매는데 갑자기 정인이 생각이 났다. 이제 6개월인 아이도 힙시트를 꺼내면 자기를 안아줄 거라는 걸 아는데, 그 아이도 알았겠지. 자기에게 또 나쁜 짓을 할 거라는 걸. 자기를 또 아프게 할 거라는 걸. 그리고 뉴스의 아이들 생각을 하다 눈물이 날 뻔 했다. 대신 아이를 꼬옥 안아줬다. 남편은 며칠 전 티비에서 시작 부분을 보더니 못 보겠다고 했다. 전에 본 안길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영상이 생각나 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아이는 이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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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모퉁이다방 2021. 12. 6. 18:19
내일부터 이유식에 소고기를 넣어야 해서 정육점에 갔다. 가까운 정육점과 마트에는 한우를 팔지 않아서 (처음이라 비싼 한우를) 한 블럭 떨어져 있는 정육점까지 갔다. 날씨가 그리 쌀쌀하지 않아 유모차 방풍 커버 지퍼를 잠그지 않고 걸었다. 아이도 간만의 산책이라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유모차에 가만히 있었다. 주말에는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갔다. 정말 간만의 외출이었고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허했다. 이어폰을 가져가지 않아 음악을 듣지 못했고 책은 가지고 나갔는데 읽을 기분이 들지 않아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만 봤다. 아이 동영상을 찾아 가만히 보고 있다 내려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싱긋 웃어주는 걸 보고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엄마 얼른 갈게, 라고 말하고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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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음악을듣다 2021. 12. 3. 15:01
화요일 아홉시. 남편은 아이를 목욕시키고 동네에 사는 후배와 술 한 잔 하겠다고 나갔다. 아이를 재우고 동생이 알려준 공연 시간에 맞춰 티비를 켰다. 배철수와 오프라 윈프리의 소개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해 완전히 밤이 찾아온 뒤까지 이어진 공연이었다. 그리피스 천문대를 배경으로 한 일몰 풍경은 아름다웠고 아델의 목소리는 깊었다. 제일 좋았던 곡은 I drink wine. 번역된 가사를 보며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일하고 희생 속에 균형을 찾으라 하지. 하지만 진정 만족하며 사는 사람 못 봤어." "날 이겨 내는 법을 배우고 싶어. 다른 누구인 척 그만두고. 서로 대가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모두 내게 뭔가를 원하지만 당신은 나만을 원해." "왜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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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서재를쌓다 2021. 12. 2. 16:05
어느 후기 때문에 샴푸를 샀다. 로즈마리 샴푸인데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숲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재활용할 수 있는 투명한 용기에 연두빛 샴푸액이 담겨 있었다. 사실 향 만으로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샴푸를 쓸 때마다 그 후기글이 떠오른다. 매일 아침 혹은 저녁 머리를 감으면서 숲에 가 있다는 분. 그 후기를 생각하며 머리를 감으면 나도 슬쩍 숲에 한 발 내딛는 것 같다. 김남희 작가님의 새 산문을 읽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대의 여행작가 글이다. 여행을 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걱정,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겪게 된 경제적인 어려움, 십 년 넘게 산 부암동 집을 떠나는 이야기, 새로 이사한 집에서 시작하는 에어비앤비 이야기, 새집에서는 숲이 무척 가깝다는 이야기, 매일매일 숲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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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서재를쌓다 2021. 11. 18. 16:48
예전에 어떤 마음으로 외국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정기후원을 했었다. 후원을 하면 그 아이의 사진과 좋아하는 것 등이 적힌 간략한 프로필, 후원자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도착했는데 어느 날 후원하던 아이가 갑자기 바뀌었다. 단체에 이유를 물어보니 현지에서 연락이 끊긴 거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때 후원을 중단하고 싶었는데 어찌어찌 이어나갔다. 남편과 연애 중일 때 남편이 내가 하는 후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비슷한 성격의 다른 단체에서 후원받은 돈을 아이들을 위해 쓰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다른 형식의 후원을 알려주며 이건 사연을 보고 직접 후원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망설이다 정기후원을 중단했다. 그런데 소파에서 나란히 티비를 보다 남편이 갑자기 그러는 거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