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하얗게 뒤덮은 히말라야 정상을 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중 두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입니다. '생애 최고의 약속'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재목의 특집 오프닝을 보고 심드렁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이 금방 미안해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게으르고 나약한지 한 시간여의 다큐멘터리 앞에서 나는 또 작아져 버립니다. 짝짝짝. 고맙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어서. 그리고 그 속에 강한 당신들이 있어주어서.

   '생애 최고의 약속'에는 세 사람의 시각 장애인이 히말라야 6476m의 메라피크 등반에 도전합니다. 등반에 앞서 여러 건강 검진과 고산증을 대비한 합숙 훈련까지 마친 세 사람의 각오는 대단했습니다.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다, 무엇보다 그 곳에 다녀오면 뭐든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들에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을 향해서 그 높은 곳을 올라가겠노라고 결심합니다. 


    40살의 안마사 유성씨. 특수 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 나영씨. 두 눈을 잃은 후 여러 번 자살 시도 후 처음으로 세상에 맞선 도영씨. 다큐가 시작되고 산을 오르는 세 사람의 모습이 비춰질 때 살며시 눈을 감아봤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암흑인 세상. 성우의 나레이션 소리와 산을 오르느라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헉헉대는 숨소리만 들려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앞 사람의 몸과 발이 맞닿는 땅의 느낌만으로 보통 사람도 오르기 힘들다는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는 겁니다. 왠지 숙연해집니다.

   각자 사연이 있었지요. 유성씨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자신이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영씨의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하셨지만 넓은 세상을 더 알고 싶다는 나영씨가 보낸 간절한 스물 세 통의 문자 메세지를 받은 후 결국 허락하셨습니다. 아쉽게도 무릎 통증이 너무 심해 도중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도영씨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꼭 성공하고 싶었다면서요. 자기 몫까지 열심히 정상에 올라가달라고. 유성씨도 나영씨도 모두 같은 마음이였기에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방에서 감기 조금 걸렸다고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던 저는 냉큼 일어났습니다. 앞도 보이지 않고 몸도 힘든 그들이 이렇게 힘겹게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는데, 앞도 잘 보이고 몸도 튼튼한 제가 너무나 게으르게 비스듬히 누워서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져 벌떡 일어나 허리에 힘을 주고 곧은 자세로 앉았습니다. 


   유성씨의 아들 동진이는 판사가 꿈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질 수 있기 때문에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어린 녀석이 어찌나 말도 잘 하는던지요. 예쁘게 말하는 법을 아는 아이였습니다. 음성도 아주 맑은 아이였습니다. 꼭 정상에 오를 때 들으라고 했던 동진이의 녹음 선물을 유성씨가 들을 때 저도 함께 울어버렸습니다. 얼마나 기특하고 착한지. 신은 유성씨에게 두 눈을 앗아간 대신 그렇게 어여쁜 아이를 주셨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곱고 맑은 아이였어요. 동진이가 좋은 세상에서 불편없이 살 수 있게 우리가 애써야 할텐데 말이예요. 유성씨는 가슴팍에 동진이 사진을 달고 메라피크 정상에 오른 후 동진이에게 선물로 준다며 히말라야의 바람소리를 녹음합니다. 쉬이쉬이. 바람 소리뿐이지만 동진이는 알겠지요. 그 소리에 아빠의 땀과 그만두고 싶었던 지친 마음과 그래도 너로 인해 포기할 수 없었던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걸요. 그래서 끝내 오르고만 벅차 오르는 지금 이 순간의 마음두요.

   동진이는 '아마도 히말라야는 하얀 세상이겠지'라고 말했습니다. 유성씨는 정말 동진이 말대로 하얀 세상인 히말라야에 마침내 올랐구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었겠죠. 하얀 세상을요. 유성씨의 아내가 한 말이요. 우리는 가보지 못한 곳들도 인터넷이며 티비를 통해서 볼 수 있지만 유성씨와 동진이는 그렇지 못하니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꼭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말이요.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또 그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동진이와 유성씨, 나영씨와 도영씨는 많은 것을 볼 수 없지만 우리보다 더 많은 걸 보고 있을 수도 있을테구요.

   저도 유성씨가 녹음한 히말라야의 바람소리를 듣고 싶어요. 눈을 감고 조용한 곳에서 녹음기에서 흘러 나오는 쉬이쉬이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뭐든지 잘 될 거 같은 믿음이 생길 것만 같아요. 마치 제가 그 하얀 세상, 히말라야의 정상에 오른 것처럼요. 유성씨가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에 의지하는 것보다 오히려 로프를 잡고 오르니깐 더 믿을 수 있었다고. 로프가 더 좋았다고. 얼음 절벽 길에 로프를 잡고 오른 것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이 말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남네요.
 
    고맙습니다. 비 내리는 주말, 덕분에 제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뭔가 힘들어질 때면 유성씨의 녹음기에 녹음된 히말라야의 바람소리를 눈을 감고 상상해볼께요. 쉬이쉬이. 귀 기울이면 금새 들려올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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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뉴스에서 '나'를 발견합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 88만원세대 등등. 뉴스에서 발견되는 저의 모습은 얼마나 생소한지 몰라요. 분명 기사 속에서 지칭하는 이들 중에 제가 분명히 속해져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 모습뿐만이 아니거든요. 그 짧고 객관적인 몇 줄의 기사에는 제가 없고, 그렇고 그런 젊은 사람들의 모습뿐이예요. 그건 수치를 근거로 한 객관적인 나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 거죠.

   어제 MBC 스페셜 <1분 후의 삶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를 봤습니다. 뉴스에서 보아왔던 끔찍했던 사건들을 겪은 이들이 그 후로 여전히, 혹은 새롭게 힘찬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였어요. 객관적이고 짧은 뉴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뉴스 속 주인공이였던 이들이 그 전에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그 사건을 겪게 되었으며, 지금은 또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였어요.

   우선 프로복서 김택민씨. 김택민씨는 열 여섯살에 친구들과 그저 치기어린 마음에 성수대교에서 뛰어내려 죽다 살아났습니다. 본인은 다행스럽게 살았지만, 그 뒤로 뛰어내린 친구는 결국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김택민씨를 링 위로 올려놓았고, 그는 그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며 열심히 군복무와 권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학실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선장을 꿈꿨습니다. 항해 실습으로 첫 배를 타게 된 기쁨도 잠시, 항해의 한 달을 남겨두고 배가 폭발해서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40분을 버텼습니다. 수영을 하지 못했던 그녀를 위해 튜브를 던져 두었던 부선장님도, 함께 튜브를 잡고 버텼던 선장님도 모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현재 그녀는 선장의 꿈은 버렸지만, 정박해 있는 선박의 안전을 점검하며 못다한 동료들의 삶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60이 넘은 나이에 에너지 진단사로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조성철씨도 맨홀에 떨어져 9일을 버텼으며, 태권도 사범이였던 간은태씨는 전돗대에 걸린 연을 빼내려다가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2002년 중국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에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김보현씨는 아직도 사고가 나던 순간에 아내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손목 시계는 11시 21분으로 멈춰져 있었고, 그는 그 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시간은 지옥과 같은 추락의 시간이였지만, 동시에 몇 개월 뒤에 다행스럽게도 약한 모습이였지만 딸 하늘이가 태어난 시간과 비슷했다고. 그래서 그는 더이상 그 시간을 불행이라 말하지 않는다고요.

   김학실씨는 여전히 고요한 바다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삼키고도 이렇게 잔잔하게 태연한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바다가 원망스럽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순간을 겪었기에, 나에게 삶을 내어 준 동료들을 생각해서, 그들의 못다한 삶을 더욱더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조성철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시냐고. 1분 전의 저는 지금의 자신이 아니라고, 1분 전의 PD님도 지금의 PD님이 아니라고요. 우리는 순간순간 살아나가고 있다고요. 그러니 이 순간순간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느냐구요.

   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몇 번을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말이긴 했지만, 늘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나가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말 하나하나를 그냥 흘러 보낼 수가 없었어요. 마음 속에 넣어서는 한번 더 곱씹었어요. 뉴스 속에서 단지 사건으로만 존재했던 그들이, 내가 겪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뉴스를 보았던 제게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자구요. 1분 1분, 이 순간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냐구요. 네네. 또 곧 잊어버리겠지만 잘 살아나가자는 다짐을 새해에 해 봅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보자구요. 그들처럼. 1분 후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가는 기분으로 2008년은 살아가보자구요. 네. 그러니까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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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봉천군 시중호의 모습이 보이면서 <자라의 생존법칙>은 시작됩니다. 우선 이 곳이 남한이 아니라 북한의 땅이며, 촬영은 조선기록 과학영화촬영소팀 촬영하고 MBC가 구성, 편집을 담당한 '남북공동제작 자연다큐멘터리'라고 말해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땅을 디디고, 단군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던 홍익인간 정신으로 나라를 개국하던 날, 남한의 티비에서는 북한에서 생존하고 있는 자라의 모습이 방영됩니다. 이 다큐는 지난 2월에 방영되었던 거라고 해요. 여러 의미들을 기념하고 내포한 채 재방영되는 <자라의 생존법칙>을 봅니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기보다는 <주주클럽>을 더 챙겨보는 저로써는 자연다큐는 실로 오랜만입니다. 북한 땅을 담은 자연다큐는 처음이구요. <자라의 생존법칙>은 자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이 땅을 밟아왔는지, 그리고 그 세월을 견뎌오는 동안 살아남기 힘든 생태계에서 생존 노하우를 쌓아오며 얼마나 힘겹게 지내왔는지에 대해서요. 물론 자라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 다큐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어요. 일단 북한의 시중호의 모습이 있습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의 풍경, 왠지 티비를 보고 있는 방 안에까지 풍겨져 나오는 것만 같았던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시중호는 북한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해요. 그리고 자라 외에도 그 땅의 많은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자라와 한판 싸움을 벌였던 뱀이며 두꺼비며 참게, 자라를 무척이나 신기해하다 호되게 당했던 귀여운 소나 강아지까지요. 잠깐씩이지만 이 수중호에 사는 푸른바다거북같이 귀이한 생물체들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이 다큐를 촬영했던 조선기록 과학영화촬영소의 모습이예요. 다큐를 보는 내내 이렇게 미세한 클로즈업을 어떻게 잡아내는지 궁금했었는데 때마침 그들이 등장하더라구요. 보기에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셨고, 촬영하는 모습이 잠깐 지나가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라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잡혔는데, 이 다큐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이였습니다.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거든요. 조금만 더 힘내서 촬영하자. 오줌 마려운 것도 담배 피고 싶은 것도 조금씩 참자, 그러자 어떤 분이 그런데 식사시간 건너뛰자는 말은 제일 섭섭하다고 말합니다.

   두리뭉실하게 알고만 있었던 자라에 대해서 세세하게 학습할 수 있는 좋은 다큐였습니다. 자라코가 수중에서 숨 쉬기 좋게 길게 뻗은 돼지코라는 거, 순해보이는 자라지만 쇠젓가락도 부러뜨릴 이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녀 왠만한 싸움에서 지지 않는 다는 거 (다큐에서 뱀, 두꺼비, 참게와 생존을 위해 싸움을 하는데 자라가 다 이겼습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고 밤눈이 밝고 밤에 식욕이 왕성해 야간사냥을 자주 한다는 거 (왠지 스파이와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산란기에 알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피가 터지는 자리싸움을 벌인다는 거 (동물세계에서는 싸울 때는 죽을 힘을 다해 힘껏 싸우고, 패배했을 때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떠난다고 하더군요.) 산란기에 수컷은 5마리 정도의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는 거, 자라는 자신의 알을 품거나 도와주지 않고 다만 멀리서 알자리를 지켜보기만 한다는 거, 그래서 새끼자라는 혼자서 알을 깨고 태어나 어미도 없이 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생대때부터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온 자라. 태초의 자라도 다큐 속의 부화를 막 시작한 새끼자라들처럼 혼자였겠지요. 그렇게 물을 향해 살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갔고 처음으로 물갈퀴가 있는 발을 휘저으며 헤엄치기 시작했겠지요. 이따금씩 물밖의 공기를 돼지코를 내밀어 들이 마시면서요. 자라는 공격을 먼저 잘 하지 않는다고 해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공격을 한대요. 거의 대부분은 등껍질 안으로 목을 집어 넣고 죽은척하면서 귀찮은 상황이 끝나길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땅 위에서는 1분에 4M를 갈 정도로 느리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헤엄친다고 해요.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약하게만 알고 있었지만 실은 누구보다 강한 자라를 담은 이 다큐를 보면서 그 땅과 그 땅을 디디고 있는 우리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이 자라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악한 마음으로 먼저 공격하지는 않으되 누군가 부당한 공격을 해 오면 절대 지지 않는, 그것이 어떤 강한 상대일지라도요. 때로는 멀리서 소중한 것을 지켜주고 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줄 알고 강하고 용맹하게 이 땅에 오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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