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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민음사 |
지난 주말에는 많이 아팠다. 목요일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는데, 금요일에는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바로 누웠다. 그 길로 주말내내 끙끙 앓았다. 누가 내가 아픈 걸 알아주지 못할까봐 일부러 소리내서 앓았다.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면서. 쥬스를 마시고 자고, 죽을 먹고 자고, 약을 먹고 잤다. 주말내내 큰소리 내며 잠만 잤다. 그리고 마침내 감기가 나았을 때, 그럼에도 가만히 누워있었을 때 이 소설을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2009년을 이 소설로 시작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섰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생각치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었다. 아주 예쁜 눈이었다. 소리없이 펑펑 쏟아지는 아주 새하얀 눈이었다. 휴대폰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보는 눈의 풍경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아 지워버렸다. 그리고 따뜻한 지하철에 앉아 이 소설을 생각했다. 지하철이 뚝섬을 지나고 있을 때였을 거다. 새하얀 눈밭이 펼쳐졌다. 나는 머릿 속에 새하얀 눈밭을 하나 만들어냈다. 걸으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아주 새하얀 눈밭. 그리고 조명을 낮췄다. 밤이다. 어릴 때 티비에서 자주 봤던 슥슥 뭐든지 순식간에 그려내던 화가 아저씨처럼 나는 조명을 낮춘 밤하늘에 은하수를 그렸다. 그 아래, 저 멀리 낡은 2층 창고도 그렸다. 그 곳에 새빨간 불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작은 점을 두 개 찍어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설국>의 마지막 장면인 셈이다. 눈을 감으니 새하얀 눈밭 위로 은하수가 펼쳐졌다. 저 멀리선 믿기지 않는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 곳에 귀를 기울이니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났다.
p.64
<설국>은 아주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어떤 페이지를 펼치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대부분이 새하얀 눈밭이 펼쳐지는 겨울이었다. 여기저기서 노래소리가 들렸고, 한 겨울의 노천 온천에서 모락모락 솟아나는 물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건 눈의 온기이기도 했다. 그립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가엾고, 처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꽃에 꽃말이 있든, 눈에도 눈말이라는 것이 있다면, <설국>의 눈말은 슬픔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새하얀 눈밭 가득 슬픔의 지지미가 촉촉히 널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