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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의 바다 -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짜라는 이야기
    서재를쌓다 2008. 9. 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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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주 오래 이 책을 기다려왔다. 1년도 더 된 것 같은데. <달의 바다>라는 소설이 있는데 아주 따뜻하다더라, 는 말을 듣고 도서관에서 기다리기를 몇 달. 인기 있는 이 소설은 늘 대출중이었고, 심지어 예약까지 되어있어서 그저 반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집에서 검색해봤을 때 '대출가능'으로 되어 있어서 룰루랄라 뛰어갔는데, 서가에 없어 한참을 찾다가 다시 검색을 해 보면 '대출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그러니까 <달의 바다>는 우리우리 도서관에서 아주아주 인기 있는 책. 그리고 돌고돌아 드디어 내게도 도착해주었다는 말씀. 나는 몇일을 품에 안고 다니며 이 푸른책을 아껴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친구가 쌀국수를 사준다고 오라고 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내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바로 서쪽 하늘이 주황빛으로 환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 빛깔이 너무 예뻐서 나는 그 자리에서 1분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노을이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는데, 말할 필요도 없이 형편 없었다. 저 빛깔을 내 형편없는 핸드폰 카메라가 담을리가 없지. 우리는 쌀국수를 먹고, 커피도 마시고, 빨대를 꽂은 캔맥주를 또 두 캔 마시고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씩 들고 버스를 탔다. 행복한 밤이었다.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친구와 헤어졌다. 나는 7호선, 친구는 2호선. 7호선 안에서 푸른책을 꺼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읽었다. 이건 고무줄에 관한 얘기다.

     (p.41)

       아. 나는 그 날 지하철 7호선 안에서 나도 모르게 또 한번 탄성을 내뿜었다. 세상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도 같았다. 어느 시의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그러니까 7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 때 당시 내 곁에 나를 떠나려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잡고 싶었다. 나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 있었다. 그 책에서는 남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두 가지 이론이 나온다. 고무줄 이론과 동굴 이론. 남자는 가끔 동굴 속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 끄집어 내려 하지마라. 끄집어 낼수록 남자는 더 깊숙히 들어간다. 내버려두면 아무렇지도 않게 저절로 나온다. 이게 동굴 이론이다. 고무줄 이론도 비슷한데, 남자는 때론 끝까지 잡아당겨진 고무줄처럼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동굴 이론과 마찬가지로 평생 고무줄에 힘주고 있을 순 없으니깐 언제고 놓을 거고 그러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그 책을 맹신했었다.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는 동굴 이론과 고무줄 이론을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 대입시켰다. 나는 동굴로 이 책을 보냈다. 몇 페이지를 읽어봐, 라는 메모도 남겼다. 뭐 결과는, 흠, 이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책 따위 읽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고무줄 이론. 나는 착각했었다. 그 때 나는 고무줄도 있는 힘껏 잡아당기면 다시 원상태 그대로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돌아오겠지만 처음보다 훨씬 헐거워질 것을. 그건 처음의 고무줄이 아닌 것을. 1.5배쯤 늘어난 고무줄이 되어 있을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밤, 7호선 안에서 저 문장들을 읽고는 더는 저 명랑한 푸른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책을 덮고 아주 오래 전 그 고무줄에 대해 생각했다.

       
        흠. 다시. 그러니까 <달의 바다>를 다 읽었다. 1년치를 기대한 탓에 조금 싱거운 기운도 있었다. 모두가 얘기한 것처럼 고모의 편지가 좋더라. 따듯한 편지들이었다. <달의 바다>를 읽기 전에 올해의 좋은 소설에서 정한아의 '마떼의 맛'을 읽었는데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소설을 읽는동안 따스한 기운이 온 몸에 돌았다. 다 읽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꼭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달의 바다>를 읽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잽싸게 낚아챈 거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 우주를 생각했다. 과학적인 우주가 아니라 감성적인 우주를 생각했다. 짙은남색의 우주. 헤엄치듯 유영하는 우주비행사. 저기 멀리 보이는 알사탕같은 지구. 무채색의 달. 그 곳에서 무거운 우주복 없이, 우주선을 빠져나와 헤엄치듯 유유히 우주를 떠다니는 나를 생각했다. 외롭지만 고독하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주에 있다! 로 힘껏 소리쳐도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을 것같은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물개처럼 손을 휘젓고, 돌고래처럼 다리를 흐느적거리는 상상을 했다. 아, 우주는 따스한 곳이었다.

       나는 다시 지하철 7호선 안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 때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선 존 마크의 'Signal Hill'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듣곤 좋아서 저장해두었던 노래다. 사람이 많은 퇴근길의 지하철 안이었는데 이 노래와 소설의 마지막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그래서 나는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노래를 다시 들었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한번 더 읽었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p.160)

       우리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짜라는 걸. 조경란의 말처럼 순정만화에 나올 뻔한 인물들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힘이 없지만, 이 소설은 충분히 따뜻한 소설이다. 우주를 꿈꾸게 만들고, 사랑을 꿈꾸게 만들고, 오해를 꿈꾸게 만드는. 그녀의 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번 소설이 기대된다. 그러니까 난 그녀의 조그만 팬이 될테다. 다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 남자에게 고무줄과 동굴 이론이 있다면, 여자에겐 파도 이론이 있다. 결국 같은 얘기다. 살아가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 그건 여자, 남자 구분이 따로 필요 없다는 이야기.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짜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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