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가는 기차표는 여행상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캄파냐 역까지만 오픈 티켓으로 예약을 할 수 있었는데, 여행상품에는 상벤투 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어서 여행사에서 2등석1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해줬다. 가보니 캄파냐 역에서 상벤투 역은 무척 짧아서 따로 표 검사도 안 하더라. 아무튼 덕분에 더욱 쾌적하게 이동했다. 공짜 커피도 마시고, 느려 터지긴 했지만 와이파이도 됐다. 12시 즈음의 기차를 타면 좋겠다 싶었다. 그 전에 어제 충전한 비바 카드에 남은 금액이 아까워 빠르게 조식을 먹고 숙소 앞에서 출발하는 28번 트램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탔다. 소매치기 언니들 때문에 가지 못한 대성당도 트램 안에서 구경하고, 테주강이랑도 작별인사를 하고, 그렇게 리스본과 작별을 고했다. 정거장 정도 전에 내려서 리스본 트램이 그려진 냉장고 자석도 사고, 우표도 좀더 샀다. 상점 아저씨에게 인터내셔널 스탬프를 달라고 하니 (한번 사 봤다고 나름 노련해졌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하니 반가워 해줬다. 오브리가다. 그리고, 차우, 리스보아. 아떼 마이스-

 

 

 

안녕, 아름다웠던 숙소.

 

 

안녕, 아침의 풍경.

 

 

안녕, 나를 포르투갈로 이끌었던 오래된 트램.

 

 

안녕, 내 발에 슬리퍼 자국을 선명하게 남긴 리스본의 태양.

 

 

안녕, 사랑스러웠던 조식.

 

 

안녕, 그 날 아침.

 

 

안녕,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소매치기 언니들.

 

 

안녕,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언덕들.

 

 

안녕, 오래된 돌길.

 

 

안녕, 오래된 벽들.

 

 

안녕, 바다를 닮은 테주강.

 

 

안녕, 리스본의 맥주들.

 

 

안녕, 리스본의 바람.

 

 

안녕, 나타. 바삭촉촉 니가 무척 그리울 거야.

 

 

안녕, 9시의 노을.

 

 

안녕, 불면의 밤.

 

 

안녕, 헤맴.

 

 

안녕, 외로움.

 

 

진짜 차우, 리스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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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의 소매치기 언니들을 만난 뒤, 간이 콩알만 해진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맛있는 걸 먹으면서 기운을 내보자고 결정했다. 여행 전, 점심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블로거들의 이런저런 추천 맛집을 찾아보고 수첩에 적어두고 구글지도에도 저장해뒀는데, 이 곳은 그 중 하나였다. 뭐라고 써뒀냐면,

 

Cervejaria da Trindade 세르베자리아 다 트린다트

레스토랑 겸 맥주홀 -> 흑맥주 (엄지 척!) 1.80

사그레스 맥주회사에서 옛 수도원을 개조해서 운영

Rua Nova Trindade 20C

매일 10시-1시 30분

새우, 삶은 조개요리 15-

포스 궁전 옆에서 전차형 엘리베이터 글로리아선 이용

하차 후 도보 5분

 

   흠. 이 때 리스보아 카드는 만료되었으니, 내일 오전까지 쓸 비아젱 카드를 사서 소액 충전했어야 했는데, 리스본은 작은 도시야.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오후내내 걸어다녔다. 덕분에 일사병 걸리는 줄 알았다. 결국엔 밤에 파두 가게를 가려고 샀는데, 여차여차해서 그 곳도 못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뒤에. 그러니까, 저 곳을 찾아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골목길을 몇 번 헤매다 찾았다. 와! 메뉴판을 보고 새우 요리와 흑맥주를 시키고 바 자리에 앉으려는데, 뭔가 그럴 듯하게 생긴 해물샐러드가 보였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메뉴판을 보여 주면서 해물 샐러드인데 세 종류가 모두 포함된 메뉴가 있다며, 작은 종지 그릇을 보여줬다. 하나는 문어, 하나는 병아리콩, 하나는 생선의 알인 듯 했다. 포르투갈에서 문어를 꼭 맛봐야 한다고 했고, 나는 생선알을 아주아주 좋아하니 금상첨화 메뉴. 새우를 취소시키고 샐러드로 달라고 했다. 커다란 잔에 흑맥주가 가득 따라졌다. 먹음직스런 안주가 세 종류나 나오고, 약하긴 하지만 에어컨이 나와 시원하기까지 하니 지금 이 곳이 내겐 천국. 매니저로 보이는 아저씨는 무척이나 친철해서 내게 몇번이나 맛있냐고 물어봐줬다.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 어디로 갈까 가이드북을 꺼내 보고 있었다. 아직 이른 오후였다. 방금 막 출근한 아저씨가 내가 혼자 가이드북을 보고 있자 매니저 아저씨에게 커다란 지도를 가져다 주라고 했다. 매니저 아저씨는 내게 두꺼운 지도를 가져다주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오르리가다! 내 계획은 이랬다. 가이드북 73페이지에 소개된 카르무 수도원의 소개가 흑맥주를 진하게 마신 내 눈에 들어왔다. '카르무 수도원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명소이다. 대지진으로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으나 뼈대만 보더라도 당시 웅장함과 세련됨을 상상할 수 있어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그래, 이 곳에 가자. 가서 지금은 없어진 부분을 상상하며 거닐자. 그런데 지도를 보니 거리가 좀 있어 보였다.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원하는데. 그래서 매니저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여기 가고 싶어요. 걸어서 갈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오케이, 라고 했다. 멀지 않다고, 니가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직접 나와서 어떻게 가는지 알려줬다. 이상했다. 지도 상의 거리와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거리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나는 리스본에서 계속 지도 거리를 착각했으니 아저씨 말이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저씨가 알려 준대로 걸었다.

 

    다시, 기분 최고. 하지만 기분 최고이면 꼭 문제가 뒤따르니.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리스본에는 카르무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이 두 군데 있다. 아저씨는 가까운 곳의 카르무를 알려줬고, 내가 가려던 곳은 멀리 있는 카르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다가 그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이어폰을 끼었다. 가보자, 땡볕에 한번 걸어보자. 그렇게 한참을 걸은 뒤에 근처까지 왔는데, 잠시 가이드북을 꺼내 보니 거기에 적혀 있었다. Close 일요일. 헉! 뷁@#!@$%#$%*^%$$#@!! 아, 아까 비아젱 카드를 샀었어야 했는데. 그럼 트램을 타고 돌아가는 건데. 중간에 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워서 동네 구경을 조금 하고 걸었다. '리스본은 덥다', '오늘 정말 많이 걷는구나', '나는 익어가고 있어', 라는 생각을 하며 줄곧 걸었다. 다른 생각 따위는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 앞으로 브라질스러운 남자여자 아이들이 떼지어 나타났다. 뭔가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앞지르기도 그렇고 해서 뒤따르며 걸었다. 드디어 나타난 카이스 두 소드레 역. 이 곳에 도착한 거면 조금만 더 걸으면 코메르시우 광장이라는 거고, 그 말은 숙소가 가까이 있다는 거다.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사려고 가판 앞에 줄을 섰는데, 생맥주 파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뜨거운 강가에 앉아 맥주 한 컵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행위 예술을 하는 아저씨 구경도 했다. 아저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모자에 동전을 넣었더니 아저씨가 사진도 같이 찍어줬다. 오브리가다.

 

   숙소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궁리했다. 어떻게 해야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잘 보낼까. 일단 죽이는 일몰을 봐야지. 조그마한 가게에서 파두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먹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근처 지하철 역에 가서 비바 카드를 사고 최소한의 금액을 충전하자. 트램을 타고 성 조르제 성으로 가자. 거기서 보는 일몰은 황홀할 지경이라니까. 그리고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자. 가족 단위의 자그만 레스토랑을 알아봤다. 평이 장난 아니다. 저렴하고, 가족들이 직접 하는 파두 공연도 좋고, 음식도 맛있단다. 좋아. 출발.

 

    하지만, 결론은 비바 카드 사고 충전까지만. 12번 트램을 30분 넘게 기다렸다. 잠깐 멍 때리고 있는데 트램이 왔고 정류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내 앞을 유유히 떠났다. 그렇다면 또 30분 넘게 트램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몰라. 그냥 포기하자. 해가 진 어두운 알파마 지구를 혼자 빠져나오는 것도 걱정이 됐었다. 다시 숙소 로비로 들어가 인터넷 검색을 해서 누군가 추천해 놓은 맛집을 찾았다. 그 전에 다시 코르메시우 광장에 가서 테주 강 일몰을 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사이에 해가 스물스물 지기 시작했다. 강가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리고 금새 쌀쌀해졌다. 강가에 앉아 해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이것도 좋으네. 한 여자아이는 물이 차 오르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테주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서.

 

    여기선 해가 10시 즈음에 지니까,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벌써 8시가 넘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검색해온 맛집을 찾아 나섰다.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아가면 근사한 노을을 앞에 두고 저녁을 먹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오늘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지. 하하. 그러니 단번에 가게를 찾지도 못했다. 헤매고, 헤매고, 헤맸다. 쉽게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진도 캡쳐해 왔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명했던 머릿속 리스본 지도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설마 이 쪽은 아니겠지, 싶으면 정말 그 쪽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이 쪽? 하면 아니아니, 아니였다. 맙소사! 오늘 밤도 저녁을 먹지 못하는 것인가. 오기가 났다. 어떻게든 찾아내리라. 다시 설마 이 쪽은 아니겠지, 싶은 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은 저렴한 식당이 보였다. 여길 들어갈까. 오늘 밤도 굶을 순 없으니. 흠. 저 위로 뭔가 느낌이 와. 한번만 올라가 봤다가 저기에도 없으면 내려와서 여기서 먹자. 그렇게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간판. 맙소사! 내가 찾던 그곳이었다. 너무너무 기뻤으나 함께 그 기쁨을 누릴 사람이 없었으므로, 골목길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웨이터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냉큼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화이트 와인 한 잔과 브라질식 대구요리를 시켰다.

 

   해는 이미 져서 깜깜하고 바람이 미친듯이 불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역시 기분이 최고면, 문제가. 대구요리가 나왔다. 계란과 대구, 올리브를 볶은 요리였는데, 읔. 어쩌지. 너무 짰다. 포르투갈 요리가 짜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금을 그대로 씹는 느낌이었다. 아. 이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안다. 이럴 경우란 분위기는 좋은데, 음식이 맛없는 경우. 술 마시고 취하면 된다. 부산에서 Y언니랑도 그랬었더랬다. 그래서 맥주를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짠 맛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반 이상이나 음식을 남겼다. 여기가 맛집이 맞는 걸까.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모두 이 가게 바로 위에 있는 집으로 갔다. 윗집은 북적북적했다. 그래도 내겐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갔으므로. 괜찮았다.

 

    내가 맥주 잔을 비워갈 즈음, 계단을 오르던 한 외국인이 맥주도 파냐고 물어보더니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혼자 맥주를 마셨다. 나도 맥주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포기. 담요를 덮고 있었지만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춥다. 낮의 더위가 무색할 만큼. 포르투갈에는 팁문화가 없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계산을 하고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계속 친절했던 아저씨가 마지막에 조금 험상궃은 얼굴로 '사요나라'라고 말했다. 그 표정이 영 마음에 걸려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인터넷 검색을 한 뒤 물어봤다. 혹시 노천에서 먹었어? 어. 포르투갈이 팁 문화가 거의 없는 편이긴 한데, 노천에서 먹었을 경우에는 팁을 줘야 한대. 아;; 우여곡절이 많았던 하루였다. 바람이 쌩쌩 부는 리스본의 밤을 가로지르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조용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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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5일 일요일. 리스본에서 맞는 세 번째 새벽. 새벽 네시에 깼다.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잘' 잔 탓에, 일찍 잠이 깼다. 몸은 피곤한데, 잠을 길게 자질 못하고 자꾸 중간에 깬다. 잠깐씩 숙면하는 건가. 꿈을 꿨는데 사람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며 밤새 노는 꿈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주문할 때랑 길 물어볼 때만 빼면 거의 얘기를 못했네. 숙소에 욕조가 있어서 피로도 풀 겸 아침 반신욕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 <환상의 빛> 딱 한 권만 읽었다. 욕조에 들어가 몇 페이지를 읽었다. 슬픈 내용인데,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거야, 토닥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7시 땡 하자마자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숙소 앞에 트램 출발하는 정류장이 있어 트램이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한 두명의 사람이 트램에 오르는 걸 내려다 보면서 아침을 먹었다. 어제 산 리스보아 카드가 10시에 종료되어서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알파마 지구에 가 보기로 했다. 알파마 지구는 리스본 대지진에도 견고한 암반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리스본 달동네'라고 불리는 지역인데, 한때는 낡은 이 지역을 허물고 개발을 하려고 했단다. 다행스럽게도 개발하지 않고, 낡은 곳을 보수해가면서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고 한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거닐면서 리스본의 알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리스본은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도시. 어제 돌아다니며 느낀 바, 리스본은 크지 않아 충분히 걸어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는 도시지만, 언덕이 문제다. 오르막길이 많으니 거리는 짧지만 힘이 많이 든다. 그래서 트램이 유용하다.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조금 힘들다 싶을 때 트램을 타면 금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알파마 지구는 관광지도 많고, 트램이 좁은 골목길을 건물과 닿을 것 같이 가깝게 지나가서, 여러모로 인기가 많다. 때문에 소매치기도 많다고 했다.

   

    카드 종료 시간도 있고 해서 일찍 28번 트램에 탔다. 아침의 트램은 선선하고 한산했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않았다. 트램이 움직일 때마다 오래된 나무 소리, 오래된 기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오래된 풍경들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아, 좋았다. 웃음이 절로 났다. 그라샤 성당 뒤로 조금 한산한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정류장에 앉아 계시는 아주머니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콩리쎈-샤. (가이드북을 내밀며) 엥 끼 후아 에스따무-스? 사실 못 알아 들으실 줄 알았는데, 우아, 알아 들으시고 가이드북을 자세히 들여다보신다. 그리고 저쪽이라고, 저쪽으로 쭉 가라고 알려주신다. 아, 오브리가-다! 아침부터 신이 났다. 지금 나는 알파마 지구를 걷고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설레여 하며 찾아본 여행 프로그램 영상에 나왔던 그 알파마 거리. 좁은 골목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이 보이고, 선명한데도 세월에 바래버린 색깔들이 보이는 이 곳. 아침의 그라샤 전망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개와 함께 아침 산책을 나온 여자,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는 북치는 예술가들, 가판 주위를 청소하고 계시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리고 주황색 지붕들. 와, 태양의 빛깔을 닮은 유럽의 지붕들이 보였다. 전망대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두어 곡 듣고, 바로 옆에 있는 그라샤 성당에도 들렀다. 그리고 더 위쪽에 있는 솔전망대까지 느릿느릿 걸어 올라갔다. 중간에 성당이 보이면 들어갔다.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 그들의 일상을 잠시 함께 했다.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인상적인 성당의 벽면 조각상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고, 또 걷고, 또 들리고, 또 걷고. 그렇게 솔전망대에 도착했다.

 

    솔 전망대에서는 그라샤 전망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테주강이 보였다. 테주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바다와 같은 풍광을 내뿜고 있었다. 해가 얼마나 강렬한지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바람이 불어 그리 덥지는 않았다. 전망대에 서서 풍경을 한참 내려다 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왔던 숙소가 이 근처일 것 같은데. 누군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그 곳을 아느냐고. 그 영화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다고. 전망대 한 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아저씨가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을 연주했다. 내 옆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외국인은 바람을 만끽하며 웃고 있었다. 아, 여기도 좋다. 좋구나. 연주를 마친 아저씨의 기타 케이스에 동전을 넣었다. 솔 전망대에서 수퍼복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저걸 마셔야겠어! 그런데 마시면 마시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야 될 것 같았다. 화장실을 먼저 해결해야 해서, 할 수 없이 유료 화장실에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유료 화장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아주머니 바로 옆에 있는 칸으로 들어갔다. 깨끗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들어왔을 때 라디오 주파수를 손 보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보고 있을 때 제임스 므라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화장실을 나와 생맥주 큰 걸로 하나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늘 자리는 사람이 꽉 차 있어, 뭐 어때 싶어 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자리에 앉았다. 더웠지만, 시원했고, 그만큼 맥주맛도 최고였다. 이어폰을 꺼내 음악도 듣고, 일기도 쓰고, 엽서도 썼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맥주도 한 잔 했겠다. 기분도 좋겠다. 경계심을 풀고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이어폰에서 투개월의 로맨틱이 흘러나왔다. 아이 신나. 기분 최고. 그래, 가보자. 대성당으로. 신나서 걷고 있는데, 중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엇, 저긴 어디지? 좋은 덴가 보다, 대성당 가기 전에 저길 가볼까, 생각하며 가이드북을 꺼내 어디인지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 곳은 상 조르제 성이었다. 결국엔 가지 못한 곳. 가이드북에 의하면 '세월을 지켜보고 있는 신의 존재처럼 리스본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가보고 있는 곳'. 일출도 일몰도 최고란다.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외국인 언니 두명이 나에게 왔다. 나는 술도 먹었고, 기분도 좋았고, 외로웠는데, 그 언니들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줬다.

 

  언니들이 물었다.

- 너 영어 할 줄 아니?

   내가 말했다.

- 아니. 잘 못해.

- 그럼 너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니?

   이때 알았어야 했다. 영어 못하는 애를 굳이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 화려한 차림의 언니들이었다.

- 잘 모르겠어.

   언니들이 자기들 지도를 보여줬다. 낡았는데, 아주 커다랬다. 접혀져 있던 지도를 언니들이 펼쳐줬다.

- 한번 봐봐. 혹시 너도 지도 있니?

- 응 있어. 근데 내껀 작은 지도야.

- 꺼내봐. (한 언니가 옆의 언니에게) 작은 지도래.

 

   그렇게 그들은 내 가방을 열게 했다. 그리고 내가 자기네 큰 지도를 들여다 보는 동안 한 언니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이때도 나는 몰랐다. 이 언니들이 진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 열 명 정도 되는 경찰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다가왔다. 나한테 물었다. 

- 너 괜찮아? 없어진 거 없어? 너 지금 얘들한테 당하고 있는 거야. 가방 봐봐. 없어진 거 없는지. 

   맙소사! 정말? 다행히 없어진 건 없었다. 나는 굉장히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인터넷 카페에서 이런 소매치기 사건들을 열심히 읽은 탓에 오늘 쓸 돈만 가지고 나왔고, 그것도 가방 여기 저기에 나눠서 넣어뒀었다. 그 언니들이 나도 모르게 슬쩍 가져갔어도 푼돈이었을 거다. 그런데, 맙소사.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친절한 리스본의 경찰 청년은 나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없어진 게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물었다나는 괜찮다고, 없어진 것도 없다, 조심하겠다고, 고맙다고 했다. 경찰 한 명이 언니들의 신분증을 뺐었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도둑들이 확실하다고 뭐라뭐라 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엔 이 언니들이 자기네는 외국인이라고 했는데, 신분증을 보니 리스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한 언니가 소리쳤다. 

- 얘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아, 빡 도네. 니가 먼저 말 걸었잖아! 아, 이럴 때는 영어가 잘도 나왔다.

 

   결국 모든 여행이 끝나고 여행을 되돌아 봤을 때, 이 사건이 여행의 초반에 일어났던 이유, 결국 없어진 게 하나도 없었던 이유, 등을 나 나름대로 합리화했다. 이건 너무 마음을 놓지 말라고, 조금 더 조심하고 다니라는 포르투갈의 배려였다고. 그래서 리스본의 마지막 밤이 좀 아쉽게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나름의 추억이 하나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 전날 소매치기의 각종 유형에 대한 글을 몇 페이지 넘게 읽다 갔는데도 당할 뻔 했다. 그러니, 소매치기의 수법이 뻔한데 그걸 당했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다. 아무튼 아무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원래 트램에서 봤던 작은 가게에 들러 맥주 한잔을 더 하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서둘러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 다른 길로 내려왔던 탓에 시내까지 걸어가는 길이 생소했다. 대낮인데도, 무서웠다. 아, 조심하자, 조심하자, 생각했다. 

 

 

 

어찌되었건 좋았던 알파마 지구의 28번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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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미온느가 있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도, 발견기념비에서도 헤르미온느가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아빠랑 엄마랑 오빠랑 여행 중이었다. 중학생 즈음 되어 보였는데 이쁘고 발랄했다. 아빠가 카메라를 내밀면 자동으로 귀여운 포즈를 착착- 취하면서 상큼하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헤르미온느에게 눈이 갔다. 아, 어리구나, 이쁘다. 너의 젊음이 진정 부럽다! 그 헤르미온느가 15E 트램에서 폭발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정류장에서 출발한 트램이 중간에 한번 멈췄다.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에어컨 바람은 솜털같이 가벼웠다. 기사가 트램을 점검하는 듯 했다. 곧 다시 출발했다. 그러더니 또 멈췄다. 그렇게 총 세 번을 멈췄다. 그동안 트램은 찜통 같이 달아 올랐고, 에어컨은 아예 나오질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소리 내서 항의하기도 했다. 당장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아, 여행기에서 본 장면은 이게 아니었는데. 리스본의 트램은 오래 되어서 자주 멈춘다 했고, 그러면 사람들이 항의할 것도 같은데, 아무도 항의하지 않고, 고쳐질 때까지 평온하게 기다린다고 했다. 그게 놀라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트램 안이 너무 더웠다. 7월의 리스본은 정말이지 너무 더웠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까지는 바람이 선선한데, 일단 해가 뜨면 내가 서서히 타들어 가고 있구나,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더위에, 꽉 막힌 트램 안에서 헤르미온느가 격한 목소리로 창가 사람에게 제발 부탁인데 창문 좀 열어 달라고 했다. 창가 사람이 창문을 열어주니 귀엽고 과도한 리액션으로 이제야 살 것 같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저러는 것도 귀엽네. 트램이 두 번째 멈췄을 때, 빨갛게 달아익은 얼굴로 내렸다. 안녕, 헤르미온느.

 

    나도 버티고 버티다 결국 트램이 세번째 멈췄을 때 내렸다. 트램에서 내린 사람들이 가까운 정류장으로 줄지어 걸어 갔다. 버스가 오면 우르르 탔다. 나도 버스의 노선을 확인하고 탔는데, 멍하게 있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흑. 버스에도 안내 방송이 안 나오더라. 원래 도둑시장을 가려고 했는데. 15E 트램을 탔으면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있었는데. 그냥 결심해 버렸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고, 도둑시장은 가지 말자고. 이 더위에 또 어딘가를 궁리하며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이드북이나 지도를 펼쳐 볼 기운도 없었다. 나에게 남는 건 시간 뿐이니, 그냥 발길이 가는 대로 걸어보자. 걷다보니 조각상이 보였다. 광장도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말도 안 된다, 아침에 산책한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왔다. 이제야 리스본의 지도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아, 이제 확실히 알겠다. 

 

   너무 목이 말랐다. 코메르시우 광장에 맥주박물관이 있었다. 아침 산책길에 발견하고 가봐야지 생각했었다. 들어가 보니 생맥주 종류가 라이트, 블랙, 레드 세 가지가 있었다. 고민하고 있으니, 조금씩 시음을 시켜줬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레드로 결정. 350ml 맥주를 바 자리에 앉아 아껴 마셨다. 맥주잔 모양이 특이했는데, 거꾸로 된 맥주병 모양이었다. 박물관 앞에서 맥주잔도 판매하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엽서를 썼다. 그래, 도둑시장 따위.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숙소는 가까웠으므로, 그리고 나는 더위에 너무 지쳤으므로, 숙소에 들어가서 잠시 쉬고 나오자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와이파이로 친구와 수다를 좀 떨다가 잠시 누웠다. 6시인데도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대낮같이 밝았다. 조금만 잤다가 검색해 둔 식당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먹으면 되겠다 생각했다. 역시 해물이 좋겠지. 정어리나 해물밥을 먹자. 와인도 마시자. 아니다, 맥주를 마실까. 일단 지금은 너무 피곤하니까, 조금만 쉬자. 조금만 자다 나가자, 했다. 중간중간 깼는데 하늘이 계속 파랬다. 아직도 해가 안 졌네, 확인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해가 져 있었다. 그리고 11시가 되어 있었다. (다음날 안 사실인데 7월의 포르투갈은 10시 즈음에 해가 졌다) 헉. 어쩌지. 11시라니. 망했다. 혼자 오니 깨어줄 사람도 없구나. 알람이라도 맞추고 잘 걸.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이라도 나가볼까. 그런데 여긴 낯선 곳이고, 곧 있으면 자정이고, 테라스에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뭔가 노는 듯 보이는 동생들이 떼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아, 배는 고픈데, 잠도 완전히 깼는데. 시차, 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테라스에 나가 밤 풍경을 계속 내다보다가 조식을 생각하며 잠을 자보려 했는데 방금 숙면을 취한 탓에 잠이 잘 오질 않았다. 둘째 밤, 내가 몇 시간을 잤더라. 책도 조금 보고, 동생들이랑 얘기도 좀 하고, 일기도 쓰고, 다시 테라스로 나가 밤 풍경을 내다보고 그러다 잠이 설핏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조식 시간이 되기 전에 깨끗히 씻고 꽃단장을 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아, 너무 배고팠기도 했지만, 정말 빵맛이 꿀맛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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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천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시켜놓고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중국인을 봤다. 중국인은 아이 러브 리스본이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신이 나서 양 손 가득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다. 리스보아 카드를 사러 인포메이션 부스에 갔는데, 2일권을 사려고 하니 2일권 사지 말라고 한다. 내일이 일요일이고, 일요일은 대부분의 입장료가 무료란다. 착한 청년이다! 그래서 1일권을 샀다. 카드 뒷면에 이름을 쓰고, 사용 시작 시간을 적었다. 야호, 앞으로 24시간 동안 나는 이 카드 하나로 리스본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하여 처음 트램 탑승. 벨렝 지구로 가는 15E 트램은 신식이다. 길고 깨끗하다. 출발하는 정류장에서 타서 자리에 앉았다. 솔솔 새어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낮의 리스본 풍경을 구경했다. 당연하게도 건물들이 있었고, 나무들이 있었고, 도로가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고, 하늘도 있었고, 구름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신기했다. 트램에서 당연히 안내방송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내 방송이 없었다. 처음엔 이 사실을 알고 당황했는데, 보니 대충 보고 내리면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내리는 곳에. 나의 첫번째 목적지는 제로니모스 수도원. 벨렝 지구는 대항해 시절 영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때 바다를 헤치고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떠났던, 부강했던 나라, 포르투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왕의 무덤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끝없는 시도 끝에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쿠 다 가마의 성공적인 귀환을 위해 증축한 건물이란다. ㅁ자로 되어 있는데, 들어가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웅장하고 화려하고 섬세하다. 수도원 안은 시원했다. 나는 한바퀴 둘러보고 출구를 찾지 못해 계속 걸었다. 분명 아까 걸었는데, 처음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미로같은 수도원이었다. 천장도 보고, 한복판의 푸릇푸릇한 정원도 보고, 아줄레주가 있는 벽도 봤다. 엽서도 몇 장 샀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다, 겨우 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어갔다. 성당에는 결혼식이 준비 중인 것 같았다. 수도원을 걷는 동안 화음을 맞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두어번 들려왔는데, 그건 모두 성당에서 울려 퍼진 거였다. 성당의 입구에 두 개의 석관이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하나는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의 무덤, 또 하나는 시인 카몽이스의 무덤이란다. 이 무덤들을 뒤로 하고 준비 중인 결혼식.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고요한 공간. 그 곳에 잠시 서 있다 나왔다.

 

   그러니까, 지도를 다시 보게 됐다. 수도원을 나와서 테주 강 쪽으로 조금 걸어가 볼까, 싶었는데 걷다 보니 발견기념비가 보였다. 기념비에서 오른쪽으로 뭐가 보이네, 조금만 걸어가 볼까, 하니 벨렝탑이었다. 지도 상에서는 거리가 있다 싶었는데, 왠걸 아주 가까웠다. 리스본은 작은 도시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발견 기념비에는 대항해 시대의 대표 인물들이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다. 사실 가이드북에서 봤을 때는 재미 없을 것 같았는데, 꽤 재밌었다. 조각들의 표정이며 동작들이 흥미로웠다. 그 중 유일한 여자가 있어, 책을 뒤적거려 봤는데 필리파 렝카스트 여왕으로 유일한 여자 승선원이이었단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 있었던 무덤의 주인공 루이스 카몽이스도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전투에서 한 쪽 눈을 잃은 시인이다. 조각되어 있는 사람들, 이들이 바다를 헤치며 막 떠났을 때,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절망을 느꼈을 때, 그리고 그 바다의 끝에서 자신들이 떠나온 것과 다른 지평선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발견 기념비 광장에는 '바람의 장미'라는 나침반이 있다. 커다란 나침반 안에는 세계지도와 대항해 시절 항해 항로가 표시되어 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라에 발을 디디고 사진을 찍는 곳. 나도 우리나라 근처에 발을 디디고 사진을 찍었다.

   

   벨렝 탑은 테주 강 하구에 위치한 요새였던 곳. 이 곳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처럼 보인다 해서 '테주 강의 귀부인'이라 불리는 곳이다. 탑 위까지 올라가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계단이 딱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너비다. 올라갈 수만 있는 시간, 다 못 올라가서 근처의 층으로 재빨리 피신해야 되는 시간, 내려갈 수만 있는 시간, 다 못 내려가서 근처 층에서 대기해야 되는 시간. 계단에는 이렇게 네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그래서 삐삐삐삐-(서두르라구)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막 조급해진다. 그렇게 올라간 탑. 곧 바다를 마주할 하구라 그런지 강은 더 바다 같았다. 바닷바람 같은 강바람이 마구마구 불었다. 저 아래 사람들이 콩알 같이 조그마했다. 벨렝 탑은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자 본래 요새였던 용도를 잃고 세관, 우체국, 등대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단다.

 

   그리고 이제 가까운 걸 아니까, 다시 제로니모스 수도원 쪽으로 가서 리스본에서 제일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으로 걸어갔다. 사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문제는 햇볕이다. 더위다. 7월의 포르투갈은, 정말이지, 생전 처음 쬐어보는 햇볕을 내게 선사해줬다. 습기 따윈 1프로도 없다. 갓 한 빨래를 탈탈 털어 널어 놓으면 1시간 안에 비스킷처럼 바삭 잘 마를 것 같은 햇볕. 하루 만에 내 발은 슬리퍼의 무늬 그대로 탔다. 때문에 무척 지쳤지만, 신나기도 했다. 처음 겪는 포르투갈은 내게 처음 겪어보는 더위도 선사해 주는 구나 싶어서.

 

   에그타르트 가게 이름은 파스테이스 지 벨렝. 제로니모스 수도원 바로 옆에 있다. 포장해가는 사람들로 입구가 북적거렸다. 듣던대로 인기가 많구나, 생각하며 쭈빗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고 갔는데, 간단할 것 같았던 메뉴판이 어마어마했다. 왜 원래 맛집에 가면 잘하는 딱 그 음식만 팔지 않나. 그래서 이 집 메뉴판이 단출할 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많은 걸 팔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에그 타르트' 라는 단어를 찾고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없다. 다음 페이지에도 없다. 그 다음 페이지에도 없네. 여기가 빵 코너인 것 같은데, 에그 타르트는 없네. 결국 직원을 불러 말했다. 에그 타르트? 직원이 한심하다는 듯 매니? 라고 물었다. 나는 쓰리, 라고 말하고 콩 비카, 라고 말했다. 비카는 내가 아는 유일한 포르투갈어 커피 메뉴. 아메리카노가 포르투갈어로 뭔지 모른다. 사실 아메리카노는 없는 것 같아. 포르투갈에는. 나중에 가이드북을 보고 알았지. 에그 타르트가 포르투갈어로 '나타'라는 걸. 아무튼 비카 한 잔과 나타 세 조각이 왔다. 더위에 지치고, 외로움에 지친 나는 나타 하나를 들고 빠른 속도로 해치웠다. 아, 맛있다. 정말 맛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아까 직원이 설탕도 뿌려 먹고, 계피가루도 뿌려 먹으라고 했지. 뿌려 먹었다. 아, 이것도 맛있다. 비카에 같이 나온 설탕 봉지의 설탕을 다 털어 넣어 놓고 휘휘 저었다. 한 모금 마셨다. 맙소사. 에스프레소가 이런 맛이었어? 그 뒤로 어디를 가든 비카만 시켜 마셨다. 공항에서도 마지막으로 시킨 게 비카 한 잔이었다. 원래 단 거 좋아하지 않는데, 단 게 몸에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혼자여서 외로웠던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이제 토요일만 연다는, 그러니까 오늘이 아니면 갈 수 없는, 도둑 시장으로 가보자, 고 가게 문을 나서며 결심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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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리스본에 도착했다.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동안 공항에서 기다리고 또 3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나는 두 번 시간을 고쳐야 했던 거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번, 리스본에서 한 번. 손목시계의 오른쪽 버튼은 건전지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는 한 뽑아 들 이유가 없었는데. 무려 하루에 두 번이나 오른쪽 버튼을 들어올려 시간을 고쳤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긴장했다. 원래 리스본 공항에 떨어지기로 한 시간은 22시 50분. 이 시간에 정확하게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더랬다. 버스는 없고, 지하철이 있는데, 내가 과연 시간 지체없이 갓 도착한 도시에서 지하철을 제대로 갈아 탈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이건 환승 다음으로 내게 커다란 걸림돌이었는데, 인천공항 근처에 살아서 나를 배웅해 준 (나중에 마중까지 나와줬다) B가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해줬다.

 

- 언니 그냥 택시 타. 유럽 지하철이 좀 무서워. 그 시간은 포르투갈도 아마 무서울 거야.

 

   B는 유럽의 여러 도시를 혼자 여행한 나의 선배.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나의 선배. B의 말을 듣고 바로 택시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더군다나 비행기가 지연되었으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B는 출국 전날 악명높은 유럽의 소매치기 무용담을 인터넷 카페에서 폭풍 검색해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에게 더욱 심한 공포심을 안겨 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언니 소매치기보다 집시를 조심해, 가 그 대화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에 힘을 실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B는 시간만 맞았으면, 부산에 가듯 포르투갈에 나와 같이 갈 뻔 했으며, S는 저렴하고도 셀카가 아주 잘 나오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고심에 고심에 고심 끝에 골라 주었다. Y는 많이 걸어다니라며 생일 맞이 여행 맞이 하얀색 예쁜 운동화를 선물해주었다. 포르투갈어 수업을 같이 들었던 루씨 언니는 (나는 무려, 쏘피였다!) 바뀐 내 카톡 사진을 보고 오랜만에 연락해와 할 수 있다고, 걱정할 것 없다며 격려해 주었고, 여행 직전에 간 단골 미용실의 주인 언니는 한껏 들떠서 포르투갈 물을 보고 오라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클럽에 가 미친듯이 놀다 오라며, 물이 좋으면 자기도 뒤따라 가겠다며 신나하며 내 머리를 아주 천천히 정성들여 잘라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설레여 했다. 마치 자기가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같은 말을 해줬다. 힘이 됐다. 정말, 힘이 됐다. 유럽을 혼자 두 번 다녀온 막내는 디테일한 조언들을 건네주었고, 함께 계획한 여행이었으나 함께 하지 못한 둘째는 여행 찬조금을 두 배로 했다. 우리 세 자매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찬조를 하는데, 금액은 5만원이다. 그런데 둘째가 말도 없이 10만원을 입금해줬다. 흑흑-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나홀로 포르투갈 여행을 도와줬다.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가자. 리스본의 공항에서 나는 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의 디테일한 조언에 따르면, 한국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말을 걸어야 했다. 특히 혼자 있는 사람은 무조건. 그런데 막내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 나라로만 여행을 갔던 것이다. 여기는 한밤의 리스본. 동양인은 서너 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옆옆에 앉았던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비상구 좌석. 그러니 완벽한 좌석이었지만, 나의 상태는 비몽사몽했다.) 빨간바지의 멋쟁이 외국인도 짐을 찾아 떠나갔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나와 함께 인천에서부터 날아 온 형광색 캐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빙빙 도는 짐들 사이에서 그 녀석을 발견한 기쁨이란.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유일한 나의 친구였구나. 친구 형광이를 발견하고, 벨트에서 끄집어 내고, 손잡이를 꺼내 끌고, 사이다(Saida 출구)로 나가는 동안 되뇌였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별 것 아니야, 이 야밤에 낯선 도시에서 혼자, 충분히 숙소까지 갈 수 있어.' 

 

   밤이 늦은 지라 모두들 택시를 탔다. 택시 승강장은 붐볐고, 줄 사이에 서 있는 내내 긴장했다. 내내 별 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내 차례가 왔고, 승강장에서 택시를 안내하던 아저씨가 내 택시를 가르켰다. 나는 재빨리 캐리어를 끌고 갔다. 좀 나이든 분이었음 했는데, 젊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내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숙소 이름을 말하며 그 호텔을 아냐고 영어로 물었다. 앵앵- 내 목소리는 모기소리 같았다. 작디 작았다. 이 낯선 도시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근육청년은 과묵했다. 나는 숙소 주소가 인쇄된 종이를 보여줬고, 청년은 주소와 숙소 이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종이를 조용히 내게 넘겼다. 바가지는 분명 쓸 거야. 그냥 두 배를 낸다고 생각하자, 고 마음 먹었다. 택시에는 포르투갈 라디오 심야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인사말 밖에 모르는 주제에 포르투갈어 선생님이 라디오를 많이 들으라는 말을 잊지 않고 (문법 공부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말도 했었지만) 일을 하면서 이어폰으로 열심히 들었던 포르투갈 라디오. 내가 낮에 들었으니, 포르투갈에서는 밤의 라디오였을 거다. 그러니, 바로 '그' 방송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내 눈 앞에 리스본의 야경이 펼쳐졌다. 오래된 유럽의 건물들, 그 건물을 이루고 있는 돌틈 사이를 비추는 주황색 조명들, 중간중간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 그 속의 사람들, 'Ola'라고 인사하는 간판들, 뜻 모를 표지판들. 그러는 사이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 도시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아는 곳도 하나 없다. 내가 이런 생소한 곳에 와 있다. 영화에서 보았던 곳. 책에서만 보았던 곳. 그래, 될대로 되라. 생소한 감격에 차 있는 사이 익숙한 지하철 역 표지판이 지나갔다. Martim Moniz 역. 어라, 그럼 숙소에 다 온건데.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는 사이 또 한번의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Mundial 호텔. 내가 리스본에서 3일 밤을 묵을 숙소. 과묵근육청년은 도착을 해도 말이 없었다. 청년이 호텔 간판을 보고 손짓을 했다. 나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미터기를 한 번 눌렀고,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바가지라고. 왜 미터기를 누르겠는가. 이미 숫자는 나와 있었는데. 그런데 미터기를 누르고 내게 보여준 숫자는 무척 적었다. 나중에 나는 국제우표를 10장 샀는데 그것보다 택시비가 더 쌌다. 리스본이 공항과 시내 사이의 거리가 짧다고는 했지만, 포르투갈이 물가가 저렴하다고는 했지만, 나는 순간 알았다. '이건 바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준비한 멘트는 했다. 리시트, 플리즈. 포르투갈에서는 택시에서 영수증을 달라고 해야 바가지를 씌울 수 없단다. 리시트? 근육청년은 수줍게 종이를 꺼내더니 직접 볼펜으로 숫자를 적어 내게 건넸다. 나는 그 순간, 이 종이가 바가지 요금이든, 아니든 내게 엄청난 기념이 될 거란 걸 알았다. 내가 유럽에 왔다. 그렇게 바라던 리스본에 왔다. 그것도 무사히. 근육청년은 트렁크 문을 열고 캐리어를 꺼내 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오브리가다. 

 

   내가 두 달동안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가장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말. 근육청년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오브리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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