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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격자 -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극장에가다 2008. 3. 6. 16:37

       <추격자>를 봤다. 내 주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봤더라. 워낙 잘 만들었다고, 잔인하다고, 밤길이 무서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견딜만 했다. 방금 유영철에 관한 기사들을 모은 글을 봤는데, 그것 때문에 뒷골이 설 정도로 오싹해져버렸다.

       <추격자>는 보여주는 건 현재다. 지영민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도,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도 현재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나 그들의 행동에서 짐작할 뿐. 감독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관객이 생각하는 게 모두 다 정답입니다, 라는 입장이더라. 단지 잡을려고, 잡히지 않으려고 죽도록 뛰는 좁은 골목땅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을 죽였고,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야 하고, 추격 당하는 이 길을 벗어나야 하고, 추격해야 하는 지금 현재, 이 상황만이 존재한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잔인한 연쇄살인 이야기를 하면서 무책임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다른 한국의 스릴러 영화처럼 뻔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지만 뭔가 부족한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떠나지가 않는다. 결국 나는 그들의 암울한 미래조차 그려낼 수가 없다.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 구태연연한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버린걸까.    

       처음부터 범인은 밝혀졌고, 범인은 스스로 어떻게 누구를 죽였는지 실실 쪼개면서 자백하는데, 12시간 안에 증거를 못 찾으면 범인은 풀려나고, 죽어가는 사람은 그의 손에 '다시' 죽임을 당할 것이고. 영화를 보면서 제발 엄중호가 증거를 잡아 지영민을 다시는 그 좁은 골목땅을 디디지 못하게 해주었다면, 이라고 바랬지만 결국 그렇게 끝나버릴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부터 예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 마지막 병원씬. 엄중호는 미진의 딸 은지의 작은 손을 잡는다. 어찌나 작고 보송보송한지 스크린 너머 앉아 있는 내게도 그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끙끙대는 소리들 너머로 창 밖의 밤이 펼쳐지고 쓸쓸한 크레딧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 영화가 끝났음에 안도했지만, 어쩐지 영화 속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원초적인 질문에 빠져버렸다.
         
       김윤석과 하정우에게 박수를. <완벽한 도미요리>를 어디선가 보고 감탄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나홍진 감독에게도 박수를. 아, 유영철 기사들은 읽지 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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