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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톤먼트 - 속죄하기 위한 허구
    극장에가다 2008. 2. 26. 22:30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어. 서재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사랑을 나눴던 그 남자로 돌아가서, 너를 찾고, 너를 사랑하고, 너와 결혼하고, 치욕없이 살거야.    


       극장 안에서 유일하게 위로받았던 때도 있었는데,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장을 안 가도 너무 안 갔다. 그 곳까지 가는 걸음이 천근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가서 보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주노>, <어톤먼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꼭 극장에서 보리라, 결심했다. 오늘 <어톤먼트>를 봤다. 나는 너무 좋아서 엉덩이를 들썩거렸고, 너무 좋아서 여러번 울었다. 아, 영화란 이런 존재였지.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일이였지. 나는 이제 극장까지 날아서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어톤먼트>를 보면서 내내 원작, 이언 맥큐언의 <속죄>를 생각했다. 영화도 이렇게 좋은데, 원작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암스테르담>을 읽고 이언 맥큐언에 첫눈에 반해버렸으니까. 도서관에 잔뜩 신청해놓은 이언 맥큐언의 책들은 아직도 처리중이다. 신년이라 여러 선정 과정이 있어 3월에야 신청한 책이 도착한다는데, 더는 기다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당장 일어나서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어톤먼트>는 수십장의 잘 그려진 풍경화같다. 하나, 연꽃이 둥둥 떠있는 고풍스런 분수대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속옷을 흠뻑 젖은 채 분수대 위에 올라가 있고 남자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여자와 남자의 눈빛만 봐도 우리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먼 곳의 시선 하나. 또 하나, 늦은 밤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문 앞에 서 있다. 옆에는 가족들이 있다. 남자가 그들을 향해 온다. 여자의 표정에서 우리는 이제 비극이 시작되리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하나, 여자와 남자가 바닷가에 있다. 웃고 있다. 아주 행복해보인다. 지금 죽어도 좋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너무나 행복한 꿈이라는 걸 알아버린다.
       
       나는 타자기 소리나 키보드의 타닥타닥 소리에 약하다. 그 소리만 들으면 아득해져 버린다. 조니 뎁의 이름값이 아까웠던 영화 <시크릿 윈도우>조차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순전히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에, 작가인 주인공 때문에. 어떤 영화든 이 소리가 들어가면 나는 이 영화가 무조건 좋아져버린다. <어톤먼트>는 타자기 소리로 시작한다. 타자기를 두드리는, 이 모든 '속죄'를 이끌어가는 브라이오니는 결국 작가가 된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맞이한 것이다. 영화 전체를 이어가는 타자기 소리. 타자기 소리가 멈추는 시점, 브라이오니는 이 모든 이야기를 '어톤먼트'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한다. 이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거라고, 아니 아니면 첫번째 소설인지도 모른다면서.
     
       <어톤먼트>는 반복의 연속이다. 똑같은 상황들이 반복되지만, 이를 극과 극으로 몰아넣는다.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지는 행복은 이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질투와 오해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반복된다. 남자가 여자 생각에 설레여하며 욕실 천장 밖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를 즐겁게 흉내내지만, 그 날 이후 비극으로 이어진 전쟁터의 남자 곁으로 웅덩이 너머 전투기가 날아가지만 남자는 더 이상 흉내내지 않는다. 빗나간 사랑은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질투는 오해를 진실되게 만들었고, 거짓은 두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다.


        이 모든 건 여자의 여동생, 브라이오니 때문이지만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왠지 제일 가여운 건 그녀다. 그녀는 일생을 자신으로 인해 비극이 된 두 사람에게 속죄하며 살아간다. 진실이라 믿었던 순간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스스로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고,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속죄한다. 제발 과거를 되돌릴 수 있기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하지만 언니의 말처럼 과거는 과거일 뿐, 돌이킬 수가 없다. 브라이오니는 속죄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속죄하기 위해 허구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언 맥큐언도 무언가를 속죄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고, 조 라이트 감독도 어떤 것을 속죄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보는 관객들도, 읽는 독자들도 무언가를 속죄하게 될지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잘못들을 저지르며 살아가니까.

       영화를 보고 당장 읽고 싶은 마음에 동네 서점들을 찾아다녔는데, 출간된 지 오래 된 거라 그런지 책이 다 없더라.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주문했지만 배송되려면 내일은 넘겨야 될 것 같다. 배송되는동안 활자로 그려질 <어톤먼트>를 상상해본다. 여자는 어떤 문장으로 그려졌을까. 남자는 어떤 표정으로 그려졌을까. 브라이오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까. 가여운 그 아이. 어쩌면 <어톤먼트>를 보는 내내 <속죄>를 떠올렸듯이 <속죄>를 읽는 내내 <어톤먼트>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극장으로 달려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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