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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풍선 - 그녀는 괜찮나요?
    극장에가다 2008. 2. 27. 16:41
    여자아이같이 예쁜 시몽이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묻는다.
    - 뭐가 보여요?
    - 흠. 글쎄. 에펠탑? 파리. 도시. 하늘? 지붕들? 빨간 풍선.
    나는 송처럼 차분하게 말한다.
     

    속눈썹이 긴 시몽이 눈썹을 내리깔며 내게 묻는다.
    - 뭐가 보였어요?
    - 흠. 착한 너. 슬픈 너의 엄마. 책이 많았던 너의 집. 현관 옆 테이블. 작은 부엌. 두 개의 복층 다락방. 아, 마지막에 본 너의 다락방은 정말 예뻤어. 나는 내내 너는 어디서 잠을 잘까 궁금했거든. 정말 아늑해보여서 예쁜 니 옆에 누워서 나도 한 숨 자고 싶었어. 정말이야.
    나는 약간 들뜬 송처럼 말한다.  


       허우샤오시엔의 <빨간 풍선>을 봤다. 언제 보았나 달력을 뒤져보니 벌써 3주 전이다. 오랜만에 종일 극장에서 보낸 날의 마지막 영화였다. 온다고 예정되어있던 감독은 건강상의 이유로 오지 못했다.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작은 극장에 울려퍼졌던 잔을 부딪치는 소리 '친친'의 여운을 안고 극장을 빠져나왔다.

       늘 그렇듯 이번 허우샤오시엔 영화도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평범한 듯 그렇지 않은 일상들이 풍선처럼 잔잔히 흘러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했던 수잔이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발, 제발 가만히 앉아있어주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빨간 풍선>을 떠올리면 그녀만 생각난다. 마지막 노래, 친친의 선율과 함께. 착한 아들에 좋은 베이비 시터 송을 얻은 수잔. 잔뜩 쌓여있던 복층 아파트 맨 꼭대기 층처럼, 자주 헝클어뜨리던 짧은 금발머리처럼 그녀는 영화가 계속되는 내내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한다. 슬픔은 마스카라를 바르다가도 불쑥불쑥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과거는 눈치없이 자꾸만 현재에 끼어든다. 추억을 떠올리는 형식이든, 그 날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주는 형식이든. 현재가 나쁜 건 아니지만 과거가 가끔 많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복층의 작은 아파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영화가 끝나고 3주가 지난 뒤 검색창에 '빨간 풍선'이라고 치고 영화정보로 들어가 스틸사진들을 하나하나 클릭해서 본다. 크게 띄워진 스틸 앞에서 미술관을 견학간 시몽과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그랬듯이 질문해본다. 뭐가 보이죠? 그녀가 뭘 하고 있나요? 그녀는 괜찮나요? 네. 괜찮아요. 너무 슬퍼보이지는 않나요? 아니요, 점점 나아질 거예요. 기쁨도 슬픔도 파란 하늘에 빨간 풍선을 띄운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거니까요. 깊은 슬픔은 곧 지나갈 거예요. 그러다 풍선이 터져버리면 어떡하나요? (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풍선이 터져버리면 어떻게 하지?) 친친. 선생님,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우리 건배해요. 영화에서도 풍선은 내내 터지지 않고 시몽네 가족들을 잘도 지켜봐주었잖아요. 그러니 풍선도 수잔도 시몽도 잘 견뎌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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