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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노 - 니가 104% 부러워
    극장에가다 2008. 3. 1. 15:07

    You're a part time lover and a full time friend
    The monkey on your back in the latest trend
    I don't see what anyone can see in anyone else.. but  you


    주노에게.
      
       그래. 나는 니가 열여섯의 나이에 임신을 했으면서 아이를 낳겠다고 담백하게 결심을 해 버린 그때부터 이건 현실이 아니라 영화구나, 생각했어. 니 얘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라, 현실이 아니라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열여섯의 나이에 임신을 했다는 너의 고백에 산부인과 예약 이야기를 꺼내는 너의 부모님을 본 후로부터 그래, 이건 아주 쿨한 영화구나, 생각했지. 그래, 이건 단지 104% 쿨한 영화일 뿐이라고.

       그런데 주노, 영화가 계속될수록 나는 니가 부러웠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계속 외쳤지. 니가 부러워. 너의 부모님이 부러워. 너의 햄버거 전화기 친구가 부러워. 너의 남자친구가 부러워. 너의 기타도 부러워. 너를 둘러싸고 있는 긍정적인 공기까지도 부러워. 니가 현실이었으면. 따뜻하고 활달한 너의 세계가 현실이었으면 내내 바랬어. 정말 나는 니가 부러웠어.

       니가 낳았지만 한번도 보지 못한 너의 아이는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아들이었나? 딸이었나? 바네사 부인이 정한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그 이름들도 생각이 안 나네. 그 아이는 이제 바네사의 아이지만 왠지 너를 쏙 빼다 닮았을 거 같애. 너와 같이 그리스 신화 속 이름이여도 좋을텐데. 헤라 여신, 주노의 아들이나 딸의 이름을 따서 말이야. 바네사 부인이 그런 센스를 마지막에 발휘했을까?

       흠. 그 아이는 너도 나도 보지 못했지만 분명 밝을거야. 쿨하고. 건강할거야. 긍정적이고 따스할거야. 격한 락음악을 좋아할거야.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집 앞에서 튕기는 기타 선율도 좋아할거야. 공포영화는 뭐니뭐니해도 피가 난무하고 뇌나 배 정도는 단번에 쓸어내버리는 끔찍한 것에 환호할거야. 입술이 새파래지는 슬러쉬 음료를 좋아할거고, 뭐든지 잘 먹을거야. 청바지에 캔버스 운동화를 즐겨 신고, 아, 사탕중독일지도 몰라. 달리기도 좋아할 수도 있겠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수줍지만 달콤하게 할 줄 아는 아이일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을 104% 따스하게 느끼는 아이일거야.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너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그런 얘길 들었어. 너를 만난 근처 광화문엔 봄,여름,가을,겨울이란 네 개의 자그마한 술집이 있는데 모두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거래. 아. 그 이야기가 너무 멋진거야. 영화 속의 너처럼. 계절의 이름을 딴 작은 술집이라니. 분명 계절을 닮은 술집 주인들이 있겠지? 광화문을 지나오는 길에 봄, 여름, 겨울을 찾았어. 가을은 찾지 못했지만 다음에 지나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어쩌면 그 날은 가을에 들어가 볼지도 몰라. 네 명의 친구는 어떻게 사 계절을 배분했을까. 봄을 닮은, 여름을 닮은, 가을을 닮은, 겨울을 닮은 친구들일까. 내가 그 친구들 중 한 명이였다면 나는 어떤 계절을 배분 받았을까. 나는 네 계절 다 좋은데. 주노, 너는 어때? 너는 아무래도 여름을 제일 많이 닮은 것 같아. 쿨하잖아.

       응. 그래. 주노, 우리 다음에 또 명랑하게 만나자. 그때쯤이면 나도 53%정도는 쿨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볼께. 그때쯤이면 가끔은 연인이고 보통땐 친구인 너의 귀여운 남자친구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도록도 노력해볼께. 나, 기타도 꼭 배울거야. 그래서 너처럼 함께 연주해볼래.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기타를 잘 치더라. 그게 항상 부러웠어. 그래, 주노. 그때까지 잘 지내. 건강히. 너처럼.


                                                                                      2008년 3월 1일 토요일,
                                                                                      104% 쿨해지고 싶은 너의 팬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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