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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버보이 - 건강하게 죽음을 인식하는 법
    서재를쌓다 2008. 2. 25. 15:01
    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다산책방


       노무현 전대통령도 퇴임을 앞둔 고별만찬에서 이렇게 말하셨다지. "어떤 강도 좌우로 물길을 바꿔가며 흐른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여정을 강으로 비유한다. 한 줄기로 시작해서 드넓은 바다를 이루는 것. 멀리서 보기에 강은 그저 물길을 따라 흘러갈 뿐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흘러나가기위해 열심히 바위와 모래를 깍아내리고, 강약을 조절하며 힘겹게 전진하고 있는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태생에서부터 그리워한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강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작은 물줄기에 불과했던 강은 그렇게 드넓은 바다를 맞이한다.

       어린 시절에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늦은 밤, 도시와 도시 사이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뒷 좌석에서 볼 수 있는 건 암흑같은 어둠 뿐이었다. 나는 달리면서 어둠의 저편에 자리잡은 수많은 무덤들을 마주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답답한 관 속에 혼자 누워있으면 외롭지 않을까. 답답하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걸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우리는 가장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드는 것 같다. 나는 혼자 묻고 혼자 고민했다. 그래서 그 때 나는 그 답을 얻었던가.

       <리버보이>를 읽으면서 그 암흑의 자동차 뒷 좌석을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 생각한 죽음은 항상 무서운 무덤과 연결이 되었던 것이고, 어둡고 암울했다. 얼마 전 읽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의 어떤 표현처럼 그 때의 나는 수 많은 돌멩이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의 제일 윗 돌을 빼내는 것이 한 사람의 죽음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무한히 슬프고, 서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외롭고 무서웠다. 이제는 알지. 우리는 수 많은 돌멩이들 중의 하나고,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이루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중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며 사라지는 것은 제일 윗 돌이 아니라 제일 아랫돌이 빼어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무너진 피라미드를 사라진 아랫돌을 추억하며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 나가면 된다는 것을.

       제스가 부러웠다. 누군가 어린 시절 나에게 <리버보이>의 제스가 강을 헤엄치는 법으로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면, 짭짤하고 드넓은 바다로 이르는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가르쳐 주었다면 어쩌면 나는 암흑의 뒷좌석에서 혼자 죽음을 읊조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제스처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죽음의 인식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떤 죽음에 관한 책을 읽었나.

       <리버보이>는 건강한 성장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누구든 자라면서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고난들을 제스처럼 건강하고 따스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강물처럼 아름답게 반짝거리지 않을까. 강물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을 닮은 인생의 여정에 우리는 잘 헤엄쳐나가고 있는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다 기진맥진하고 있는 거 아닌가. 누구보다 빠르게 바다에 도착하려고 힘을 빼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그만 힘을 빼어보자고.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고. 흐르는 물의 내음새를 맡아보자고.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고. 누가 함께 헤엄치고 있는지 손 내밀어 둘러보자고.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둥둥 천천히 강물 위를 떠내려가보자고 말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랄까.

       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새벽, 꿈을 꿨다. 짙은 쌍꺼풀을 빛내며 노무현 대통령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물론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떤 말인지 모조리 까먹어버렸지만. 잘한다고 칭찬하는 말도 있었고 못한다고 나무라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 깨어나서 멍하니 생각했다. 뉴스를 반복해서 너무 많이 본 게야. 그래, MBC 스폐셜 방송에서 뒷모습을 보고 마음이 이상했던 것이 꿈에서 나타난 거겠지. 순간 돼지, 똥, 대통령 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시점이 참. 사야하는 것인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그냥 말았다. 복권운이 나를 따라준 적은 한번도 없으니. 아무튼 노무현 대통령은 내 꿈에서 안녕을 고했다. 설마 그 날 국민들 모두 꿈에 나타나 인사를 하신건 아닐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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