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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중혁, 바질 2012.12.13
  2. 김중혁의 두 권의 소설집 6 2008.07.12

김중혁, 바질

from 서재를쌓다 2012. 12. 13. 22:55

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문학동네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일곱 편의 단편을 모두 다 읽고도 계속 생각이 났다. 소설은 이별 이야기로 시작한다. 박상훈과 지윤서가 헤어졌다. 첫 문단은 이렇다.

 

    "이별은 육체적인 단어다. 헤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별이라는 단어의 물리적인 실체가, 거리에 대한 실감이, 박상훈을 괴롭게 했다. 사흘이 지나자 어딘가 아파왔다. 아프긴 했지만 상처를 집어낼 수는 없었다. 살을 파고 뼈를 헤집어 상처를 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처는 계속 이동했다. 때로는 무릎이 아팠고, 때로는 등이 아팠고, 때로는 발뒤꿈치가 아팠다. 모든 고통은 이별로부터 왔다. 닷새가 지나자 모든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걷고 있다는 게 기적 같았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고통은 산발적이지만 끊임없었다."

 

    제목은 '바질'. 박상훈은 지윤서와 헤어지고 아팠다. 아프고 아팠다. 아팠지만, 늘 다니던 길로 퇴근을 하고 지윤서 생각을 했다. 박상훈의 퇴근길에 지윤서의 집이 있었다. 박상훈의 이별은 그랬다. 지윤서는 아픈 줄도 몰랐다. 박상훈과 헤어진 지 사흘만에 네덜란드로 세계단추박람회 출장을 갔다. 바빴다. 바쁜 게 다행이었다. 지윤서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일을 했다. 성공적으로 일을 끝내고 남은 시간동안 네덜란드 이곳저곳을 구경 하고 있던 중, 한 할머니로부터 바질 씨앗을 사게 된다. 아무 때나 심어도, 아무 곳에나 심어도 우리 바질은 잘 자란다는 할머니의 말에 지윤서는 생각한다.

 

    "지윤서는 할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바질이 얼마나 키우기 힘든 허브인지 알고 있었다. 따뜻해야 했고, 환기가 중요하며, 물조절을 잘 해야 했다. 지윤서는 바질을 키워본 적이 있었다. 매번 이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시들해져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윤서는 바질을 화분에 심는다. 할머니의 말대로 바질은 금새 싹을 틔웠다. 진한 향을 풍겼다. 지윤서는 바빴다. 회사일로 바빴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바로 쓰러져 잤다. 바질을 돌볼 틈이 없었다. 물을 줄 시간도 없었다. 그러자 바질은 금새 시들었다. 금새 싹을 틔우고, 금새 진한 향을 풍겼지만, 금새 시들었다. 그게 바질이었다. 지윤서는 시든 바질을 창 밖으로 던져 버린다. 박상훈은 어느 날 퇴근길에 지윤서의 집을 보다가 점점 커지는 어느 덤불을 발견한다. 아무래도 이상해 덤불을 없애려고 하다, 지윤서가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고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지윤서는 커다란 미로 같은 덤불 속에 있었다. 덤불은 거대한 생명체였다. 지윤서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덤불 생명체는 박상훈에게도 접근한다. 박상훈은, 박상훈은 칼을 집어든다.

 

    "박상훈은 칼을 꼭 쥐었다. 덤불을 자세히 살폈다. 덤불의 뿌리는 많지 않았다. 뿌리를 공격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뿌리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덤불의 뿌리가 두꺼워 칼로 잘라내기도 힘들 것 같았다. 박상훈은 어떻게든 나가고 싶었다. 박상훈은 덤불 가까이에 앉아서 빈틈을 찾고 있었다. 덤불 뒤에 숨어 있던 덩굴이 박상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박상훈은 일어서면서 덩굴을 향해 정확히 칼을 휘둘렀다. 줄기가 두 동강 나고 이파리가 흔들리면서 박상훈의 코로 바질 향이 훅 풍겼다."

 

    김중혁은 자신의 작품에서 숨겨진 의미 따위는 없다며, 그냥 그대로 읽어주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계속 이 '바질'이 생각났다. 쓸쓸하게 시작했다가, SF로 끝나는, 이 미묘한 소설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한 번 더 읽었다. 술을 마시고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 생각했다. 바질이 사랑인 가봐. 그래, 바질이 사랑이었어. 덤불도 사랑이었어. 사랑이었어. 그때 지하철에서 조제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쿠루리의 '別れ'. 이별. 박상훈이 바질 덤불에 칼을 휘둘렀을 때, 줄기는 두 동강 나고 이파리가 흔들렸다. 그리고 바질 향이 훅 풍겼다. 그렇게 사랑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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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검색창에 '김연수'라고 치면 오른쪽 연관검색어에 김중혁, 박민규, 김현수, 미스코리아(미스코리아 김연수가 있는 모양이지?)가 뜬다. '김중혁'이라고 치면 간단하게 딱 한 사람과 연관된다. 김연수. (문태준 시인은 연관검색이 아예 없구나) 그러니까 김연수와 김중혁은 연관검색의 관계. 김중혁 작가의 <악기들의 도서관>과 <펭귄뉴스>를 읽었다. 역시 김천. 1970년의(1971년까지, 김중혁 작가는 71년생이니깐) 김천에는 어떤 문학적 태동의 기운이 넘실거렸던 게 틀림없다. 얼마 전,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져 검색창에 문태준만 다섯 번 쳐대며 그의 인터뷰 기사들을 읽었다.

   '자동피아노'를 시작으로 '펭귄뉴스'까지 김중혁 작가를 만난 동안에 느낀 점이란 이런 거다. 한 문장만 쓸 수 있는 작가의 말이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나는 쓰는동안 굉장히 재밌었으니, 당신도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랄뿐. 땡.' <펭귄뉴스>의 뒷부분에 수록된 작품은 (특히 '펭귄뉴스') 지루했으나, 대부분의 소설들을 나는 신나게,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재미나게 야금야금 읽었다. <펭귄뉴스>가 발표된 역순으로 수록된 것이라니 그는 '점점 잘 쓰고 있는 작가'라는 것. 그러니 지금 쓰고 있다는 장편도, 발표되어질 다른 소설들도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것.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고 이런 메모를 했다. '만약 메뉴얼 잡지가 있다면? 만약 악기소리 대여점이라는 게 있다면? 재밌게 면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10년을 같은 노선을 다닌 버스가 어느 날 노선을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그런 생각을 한 거다. 만약 무엇무엇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더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는 작가의 상상력이 이렇게 신나는 소설들을 만들어낸 거라고. 같은 방법으로 <펭귄뉴스>를 읽고는 이런 메모를 할 수 있겠다. '시각장애인에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세상의 물건들을 묘사해주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면? 개념발명가가 있다면? 나무로 만든 에스키모 지도가 있대매? 자전거 바퀴 회전수로 표시된 지도가 있다면?' 이런 식. 작가의 상상력에 이야기의 살이 붙여져 발명되어진 소설들.

   두 권의 책 중에서 마지막 장이 끝난 뒤에도 다음 장에 쉽게 침을 묻히지 못했던 소설은 '무용지물 박물관'이었다. 나는 정말 이런 라디오 방송이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밤 잠들기 전, 10분쯤은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듣는 거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물의 기억따위는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DJ가 들려주는 잠수함과 에펠탑, 암스테르담의 쉬폴 공항을 머릿 속에서 선을 하나씩 그어가며 쓱삭쓱삭 그려내는 거다. 어떤 날은 정말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가보지 못한, 사진으로조차 본 적도 없는 사물이 방송되어질수도 있겠지. 그러면 정말 이건 시각장애인용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언제나 눈을 감고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방송이 되는 거다. 세상엔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것보다 눈을 감아야지 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일러주는 방송.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어 노랗고 노란 잠수함이 깊고 깊은 바닷속을 매끄럽게 유영하는 꿈을 기분 좋게 꿀 수도 있는 일. 물론 DJ는 목소리 좋은 김중혁 작가였음 좋겠다. '오늘도 돌아온 이 시간,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입니다'로 시작하는. 아, 언젠가 내 사진을 신청사연으로 보내 무용지물 박물관에서 소개시켜달라고 해 보는 상상을 해 봤다. 그는 어떻게 나를 표현해줄까. 뚜렷하고 아름다운 말들이면 좋겠는데. '면목동에 사는 골드소울님은 돌고래의 매끈한 피부를 가지셨군요. 눈은 고등어 눈알처럼 빛나고...' 이런 식이랄까.  

   흠. 결론이란 건 없지만, 굳이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결론을 써 보자면, 뭐 그거다. 당신은 계속 신나게 쓰시길, 다음 작품도 나는 신나게 읽어주는 독자가 기꺼이 되어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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