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아트북스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뒀다. 왠지 이번 책은 사서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편이랑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여행자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하이델베르크 편에 나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책이 생각보다 너무 얇네, 글이 너무 적네, (이건 확실히 좀 실망스러웠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확실히 이번 도쿄편은 이전보다 책이 두꺼워졌다. 묵직하다. 그만큼 가격도 상승. 역시 글은 너무 적다. 하이델베르크 편에 비해 산문이 더 늘긴 했다. 나는 왜 하이델베르크를 담은 책처럼 도쿄를 담은 책을 그럭저럭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이런 결론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앞으로 쭉 나올 여행자 시리즈를 좋아하긴 힘들 것 같다는.

   그게 있었다. 음악 씨디. 작가가 하이델베르크에서 들었다고 했던가, 하이델베르크를 생각하며 골랐다고 했던가. 내가 산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편에는 그 씨디가 보너스처럼 실려 있었다. 물론 이건 내가 부지런해서 얻은 것이다. 당시 예약주문한 사람들에게만 공짜로 끼워 주었으니까. 나중에는 따로 음반을 판매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음악들이 좋았다. 씨디를 리핑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옮겨두고 '김영하'라고 입력한 폴더에 넣어뒀다. 책을 읽을 때 잠깐 듣고는 내내 잊고 있었는데, 어느 저녁 꽉 막히는 도로 위 버스 안에서 심심해 플레이어를 뒤적거리다 찾아내곤 들어볼까하고 재생시켰던 음악들. 그 때 나는 버스 제일 맨 뒷 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버스가 한강 다리 부근에서 거의 정차되어 있었다. 노을이 슬며시 지고 있었고, 버스 안이며 버스 밖이며 옴짝달짝할 수 없어 짜증나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며 차들뿐이었는데 그 음악들을 들으며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만 그 속에서 생기있게 느껴지는 거였다. 나만 달리는 것 같고, 나만 즐거운 것 같았다. 나만 행복한 것 같았다. 3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걸려 왔는데도 내리기가 싫었다. 이 버스를 타고 이 음악들을 계속 들으며 앉아 있고 싶었다. 맨 뒷 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서 나른한 기분으로.

   그러니까 나는 그 때 하이델베르크가 배경인 아주 짧은 소설과 카메라와 도시 이야기가 담긴 짧은 산문과 도시를 담은 사진들, 작가가 직접 고른 14곡의 음악을 9,800원을 주고 샀다. 인터넷으로 산 거니 몇 백원은 더 할인 받았을 거다. 그리고 이번에는 14곡이 음악을 빼고, 도쿄가 배경으로 짧게 등장하는 단편 소설 한 편과 도쿄와 카메라 이야기의 산문, 도시의 사진들을 주고 13,800원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2,420원, 마일리지 1,250원 플러스) 지불해야 된다는 건데. 흠.

    뭐랄까. 여행자 시리즈라는 이름이 있지만 '소설가 김영하의 사진집'이라고 소개하는 편이 더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글은 보너스같다) 소설과 에세이, 사진의 결합이라고는 하지만 글을 쓰는 소설가의 여행책을 기대하는 나같은 독자에겐 여행자 시리즈의 글은 너무 적다. 사진을 좀 더 줄이고 글을 더 늘여도 좋으련만. 산문이든, 소설이든. 사실 도쿄편의 소설은 내겐 좀 별로였다. 풍선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다. 차라리 앞으로 여행할 도시들에서 끌어낼 각각의 도시를 담은 단편소설을 한 책에 묶어내는 편이 독자들에게는 더 알찼을거라는. 아무래도 나는 소설가의 사진보다는 소설가의 글을 기대하는 거였나보다. 그럴려면 이 책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1-2시간이면 후루룩 읽을수 있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건 거품 가득한 일본의 맛있는 생맥주와 캔맥주 이야기. 침이 고였다. 그 옆에 있는 생맥주 사진에 한번 더. 아무튼. 김영하의 하이델베르크를 보고나서는 도쿄가 기다려졌는데, 도쿄를 보고나니 다음 도시는 별로 기다려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러면서 나오면 또 궁금해서 볼 거면서) 그러니까 아무래도 나는 사진 찍는 소설가보다 글 쓰는 소설가가 더 좋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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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봤어요. 너희 20대들, 지금 잘 해나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 그래서 <퀴즈쇼>를 쓰게 되었다는 작가님의 글이요. 그래서 출간하자마자 단번에 주문했습니다. <빛의 제국>을 읽으면서 소설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은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의 이전 소설들은 충분히 좋았으므로 새 소설을 읽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좀 아껴서 뒤에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다른 책들이 밀려있어서 낭독회를 다녀온 뒤에 읽게 됐어요. 낭독회에 같이 간 친구는 20대에게 위로가 되는 책, 이라는 것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읽고 있는 중간에 친구에게 무척 재미있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꽤 두꺼운 분량인데도 책장이 금방 넘어가고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의 파란 화면의 나우누리 통신 시절 생각도 나고, 그 때 만났던 어떤 아이 생각도 났죠. 언급되는 음악과 책은 듣거나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는 대부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 피아노와 반지의 제왕, 번지점프를 하다의 공통점을 대번에 알아맞히고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서 즐거워 하기도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유쾌하게 한 권을 끝내고 났는데, 책을 덮고 나니 왜 이리 허전하던지요. 그래서 인터넷 여기저기 들어가서 남의 리뷰들도 뒤적거리고, 작가님 인터뷰 기사도 찾아서 봤습니다. 김영하 기사때문에 일부러 챙겨두었다던 언니가 건네준 필름 2.0을 받아들고 지하철 문에 기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솔직히 제게도 이 <퀴즈쇼>가 위로가 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너희들, 지금 잘 해 나가고 있어. 다른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진 않아. 이런 위로는 작가님의 인터뷰 기사나 작가 후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낭독회에서도. 사실 저는 책보다 그 낭독회에서 더 많은 위로를 받고 돌아온 것 같아요. 읽어가는 도중에는 이 글귀 좋다, 이 글귀는 지금의 나 같아, 라고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아서 따로 적어두기도 했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 '힘'들이 순식간에 회오리치며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였어요. 민수가 '회사'에 들어가고 난 뒤였던 것 같애요. 밑줄 그어둔 부분이 멈춰진 지점이요. 밑줄 그어 둔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회사'는 민수의 꿈, 무의식이였어요. 들어가는 부분에 작가님이 분명하게 해 두셨더라구요.  


p.310


    꿈이라는 것, 무의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요. 책을 한 권 읽었어요. 아니,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요. 그 책 속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꿈이라는 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자주 꾸고, 그런 사람들이 그 꿈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구요. 그래서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꿈을 다양하게 꾼다구요. 제가 꾸는 꿈의 경우만 봐도 어떤 꿈은 지독하게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꿈은 아련하게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꿈은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절대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해요. 민수의 '회사' 생활이 그러했던거죠. 그 생활 중 어떤 부분은 현실을 지독하게 반영했고, 어떤 부분은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절대 깨고 싶지 않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잖아요. 깨고나면 모든 게 끝나는. 존재한 적도 없게 되는. 곧 내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버리는. 적어두어도 그 꿈의 느낌 그대로는 기록되어지지가 않는. 그 꿈이 너무나 좋아서 다시 잠들면 그대로 그 꿈으로 쏙 들어갈 것만 같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일회적인 꿈이요. 처음 <퀴즈쇼>를 읽을 때 민수를 따라가다 보면 내 불안한 20대의 끝이 보이지 않을까, 라고 기대를 했는데 결국 나는 그를 네비게이션도 없이 따라가다 길을 잃은 거예요. 끊임없이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선택을 해야 하는 20대의 길목에서 나의 네비게이션은 여전히 행방불명인거죠. 민수는 '회사'를 빠져나왔지만 저는 여전히 그 하얗고 복잡한 공간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인 거예요. 그것만 확실하게 다시 한번 또렷하게 깨달은 셈이예요.

p.32


 
  <퀴즈쇼>는 제가 읽었던 김영하 작가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빠르게 읽었어요. 그래서 아쉬움도 많이 남구요. 우리의 20대가 정말 이런가. 빠르고 재미있고 복잡한 것 뿐인가. 뭔가 더 있을텐데 나는 왜 발견하지 못하고 있나. 낭독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도 퀴즈인가. 그런 것 같아요. <퀴즈쇼>를 읽는 독자들은 모두 각자 다른 종류의 퀴즈 문제를 받으실 거예요. 작가가 내는 것 같지만 실은 읽는 자신이 자신에게 내는 퀴즈인거죠. 그리고 그 퀴즈의 정답은 독자 자신만 아는 거죠. 그리고 작가님, 적절한 매너가 뒷받침되었으니 얼마간의 과시는 용인해드릴께요. 너무 많은 종류의 문화적 비유가 있어서 말이죠.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사실 속으로 그래요, 작가님 똑똑해요, 박학다식해요, 라고 삐죽거렸을 때도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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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 작가님 <퀴즈쇼> 하드코어 낭독회에 다녀왔어요. 이번 낭독회에도 깔끔하게 녹음을 해서 정직하게 정리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성능이 좋은 동생의 엠피쓰리를 가져갔습니다. 이번에 샀는데 녹음이 제 것보다 잘 되더라구요. 그런데 왠걸. 동생한테 작동법을 배울 때부터 아리송했던 게 문제였어요. 룰루랄라 녹음버튼을 누르고 편안하게 낭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끝나고 확인해보니 낭독회 시작하기 전 친구와 저의 잡담 소리만 1분여동안 웅웅거리며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허탈하고 아쉬웠는지 몰라요.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역시 김영하 작가님은 예상대로 달변가라. 그리하여 녹음에 실패하고 저의 안 좋은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더 달아나기 전에 잠이 몰려오는데도 불구하고 끄적거립니다.

   장소는 동국대 중앙도서관이였구요. 신청할 때 동국대와 한양대가 있어서 고민했었는데 멀어도 동국대를 선택한 게 결국엔 더 좋았어요. 오늘은 특별손님이 있었거든요. 이적씨요. 김영하 작가님과 절친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양대에서 낭독회하고 만나서 술 한잔 하다가 자기 써 먹을 때 있음 불러달라고 하셨다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오늘 함께 하셨어요. 사회자라고 할까요, 낭독을 하는 틈틈이 담소를 나누면서 낭독회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셨지요.

   하드코어 낭독회냐면요. 배경음악도 없는 상태에서 1시간 내내 책의 여러 부분 낭독을 하는 거라서 그렇게 붙였다고 하시더라구요. 중간중간 내용에 대한 설명과 짧막한 담소의 시간들이 있었지만요. 배경음악 없이 낭독을 하고 다들 책 속 글자들을 따라가고 있으니까 꼭 고등학교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책을 아직 못 읽었는데요. 그래서 친구가 페이지를 찾아서 집어줬어요.

낭독한 부분들은요.

p.82- . . . 민수와 지원이 채팅방에서 귓속말하면서 호감을 느끼는 부분.
   이 낭독이 끝나고 작가님의 예전 하이텔 통신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채팅방의 귓속말이 얼마나 짜릿하고 위험한지를 말씀해주셨어요. 당시 동호회 사람들과 여러 명이 함께 채팅을 하고 있었는데, 조용한 두 명이 있었대요. 물론 남자와 여자. 그런데 갑자기 여자분이 '니가 나랑 한번 잤다고 그런 말할 자격은 없어'라고 귓속말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한 문장의 실수로 채팅방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는. 맞아, 라고 대꾸도 할 수도 없는 그런 침묵의 시간이였다고요. 아무튼 이 이야기 정말 웃겼어요. 저도 통신, 채팅방, 귓속말 다 경험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그 때 생각이 났었어요.

p.109- . . . 민수가 편의점에서 잘리는 부분.
   이 부분 낭독하시는데 많이 웃었던 거 같애요. 민수의 태도 말투와 태도 때문에요. 특히 잘한다, 파수꾼! 부분. 나중에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자신은 소설을 쓰면서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20대때에는 거친(?) 성격이셨다고. 술 마신 다음 날 보면 백미러가 머리맡에 있고 그랬대요. 전날 술에 취해 그런 데 화풀이를 하시고, 다음날은 백미러로 얼굴 보고 막 그러셨다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성격도 온순해지고 사람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셨대요. 소설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니깐 그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하면서 써 나가다 보니까 <퀴즈쇼>의 편의점주도 이해가 되고. 뭐 그런.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으면 순해지니깐 조심하라고요.  

p.168- . . . 민수와 지원이 홍대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걷는 부분.
   이적씨가 나중에 민수가 늦게 이메일을 받게 된건 아무래도 지원이 민수에게 채팅방에서 만난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서 어떠냐는 질문에 아주 잠시 머뭇거린 것 때문인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니까 작가님도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남자 분들에게 절대 이런 식의 질문은 머뭇거리는 시간이 잠시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셨어요. 지금의 니가 더 좋다고 당장, 냉큼 말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흐- 그리고 이런 질문은 지원이 참다참다못해 꺼내게 된 건데 만나자마자 먼저 말해주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결국 사랑이란 뜨거워졌다가 식어가기 마련인데 그걸 얼마나 천천히, 덜 식게 만드느냐인 거 같다고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죠. :)
  
p.210- . . . 지원과 민수가 코엑스에서 만나는 부분.
   <퀴즈쇼>에 두 여자가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연애 초기의 모습이 지원이고, 나중이 빛나로 생각하면 될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연애 초기에는 다들 너는 잘 될거야, 틀림없어, 라고 붕 뜨게 만드는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지만 결국에는 빛나처럼 변하는 거라구요. 책을 못 읽어서 빛나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왠지 대충은 알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적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빛나랑 민수랑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였다고요. 막 궁금해져요. 어떤 장면인지 빨리 읽고 싶어지구요.

p.436- . . . 소설의 제일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일부러 책을 덮고 듣기만 했어요. 그리고 한 문장만 또렷하게 들렸죠. 잘 될거야, 잘 될거야.


    뭐랄까. 제가 읽은 작가님의 책들은 대부분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구석들이 있어서 작가님도 그런 느낌으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 외로 부드럽고(독자들 질문 하나하나에 굉장히 길고 상세하게 대답해주셨어요), 섬세하고(친구는 마이크를 잡은 손이 너무나 섬세했다고 했죠), 달콤했어요(카카오 56% 초콜릿을 계속 드시더라구요). 그리고 정말 많이 위안이 되었어요. 질의 응답 시간에 작가님의 20대 시절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였어요. 자신의 20대도 마찬가지로 복잡했다고. 돈도 없어서 읽고 싶은 책을 못 살 때도 있었고, 김영하매혈기라고 피를 팔아서 책과 맥주를 사 먹었던 때도 있었고, ROTC를 그만두겠다고,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안정적인 삶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던 그 때의 막무가내의 결심이 자신을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2-3년동안 돈도 없고 해서 친구들 만나기도 피하고 집에만 있었다고, 그렇게 소설을 써 나갔다고, 습작 시절에 쓴 어떤 단편소설을 친구에게 정말 기막힌 소설을 썼다며 전화로 40여분동안 읽어준 적도 있었다고, 20대에는 성공하기가 힘들고,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꿈만은 높고 넓은 때인 것 같다구요. 여전히 20대의 실수투성인 제게 이 한마디 한마디는 꼭 끌어안고 싶어졌죠.

    소설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지금의 20대들에게 친척 어른들은 명절 때면 너 뭐가 될거냐, 하면 20대들은 모르겠는데요, 되고 싶은 거 없어요, 그러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모르겠고, 되고 싶은 게 없는 거 같지 않다고요. 지금의 어른들이 생각하는 한심한 20대는 결코 아닌 거 같다고요. 20대들이 가상공간인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현실의 모습과는 반대로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냐고요. 그런 걸 말하고 싶어서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구조를 쓰셨다구요. 오늘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어디선가 작가님이 <퀴즈쇼>를 통해서 20대, 너희 지금 잘 해나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읽었어요. 이 말, 정말 힘나지 않나요?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언젠가 가상공간의 당당하고 치열한 나처럼 현실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구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제 기억력은 여기까지예요. ㅠ 생각보다 질의 응답 시간이 짧았어요. 30여분 정도. 마지막에 앞으로의 계획은 12월은 이렇게 낭독회 행사를 다니느라 바쁠거라고, 그러고나면 또 1년동안 열심히 다음 장편을 쓰실 거라고 하셨어요. 곧 <여행자 도쿄편>도 나온대요. 아, 이적씨도 새 소설이 나온대요. 완전 기대되요. <지문 사냥꾼>도 재밌게 읽었거든요. 그러고나면 이런 작가 아직 잊지 않으셨죠, 라면서 내년 12월에 또 이렇게 독자들과 만날 거라구요. 문학을 한지 12년짼데 이런 순간들이 참 좋으시대요. 아,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이렇게 생기셨구나, 하시면서 이런저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요.

   순전히 제 기억에 의존한거라 틀린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양해하고 읽어주세요. ㅠ 사진은 못 찍고 사인만 받아왔어요. 히히- 그럼 저는 내일부터 <퀴즈쇼>에 빠져볼랍니다. 지금 비 와요. 그래서 지금 제 앞 창가를 타닥타닥 때리는데, 이 소리 너무 좋으네요. 그럼 모두들 굿 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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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지음/아트북스 





   중학교때 좋아하던 만화책이 있었습니다. 이은혜의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말도 안되는 로망들을 제게 안겨주었죠. 여중을 다니고 있던 제게 남녀공학의 로망을, 오빠가 없던 제게 다정하고 자상한 오빠에 대한 로망을, 짝사랑따위도 하고 있지 않았던 제게 두 멋진 남자선배의 동시다발적인 사랑을 받는 로망을. 새 단행본이 나오는 날이면 한걸음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와서는 제 방문을 살포시 잠그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들을 녹음해놓은 테잎을 방 안 가득 틀어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장 한장 아껴 읽으면서 느꼈던 두근거림, 방 안 공기의 흐름, 흘러나오던 음악의 촉감. 무슨 음악이였는지, 무슨 장면때문인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의 제 방 풍경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김영하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받아들고서 약간 실망했습니다. 일단 너무 얇았고, 쭉 넘겨봤을 때 글은 짧고, 반 이상이 사진이였거든요. 일단 한 쪽 구석에 놓아두었어요. 금방 읽어버릴 것만 같아서. 언젠가 읽어야 될 '때'가 올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오늘 읽었습니다. 책 뒤에 부록으로 있던 CD를 꺼내서 컴퓨터 CD롬에 넣고, 플레이를 시켰습니다. 음악이 좋았어요. 잔잔하고 뭉클한 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첫장을 넘겨 여행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처음, 단편소설입니다. 밀회. 주인공의 이름도 없습니다. 그저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나'와 '그녀'가 나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하이델베르크에 머무르는 '내'가 찍은 듯한 그 거리의, 그 도시의 풍경들이 찍혀진 사진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와 '그녀'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소설이 끝이 났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이 좋았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들입니다.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진들이요. 그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뒤의 '내'가 본 하이델베르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쓸쓸하고 적막한 사진들이였어요.

   그리고 사진들이 이어지고, 3편의 간단한 에세이가 이어집니다. 작가의 카메라에 관한, 하이델베르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 이 구절이 너무 멋져서 다이어리에 옮겨 두었습니다.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 있다는 것, 그런 달콤한 쓸쓸함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 p.148

    그리고 책은 끝났습니다. 틀어준 CD속에는 14곡의 음악이 들어있었고, 책을 다 읽었지만 음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끝까지 CD를 들었습니다. 오늘 제 방의 공기의 흐름, 그 위의 음악들, '나'의 슬픈 이야기, 도시의 쓸쓸한 사진들을 다시 한번 봅니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좋았어요. 다음 도쿄편도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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