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퀴즈쇼 -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내는 퀴즈쇼
    서재를쌓다 2007. 12. 20. 14:00
    퀴즈쇼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봤어요. 너희 20대들, 지금 잘 해나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 그래서 <퀴즈쇼>를 쓰게 되었다는 작가님의 글이요. 그래서 출간하자마자 단번에 주문했습니다. <빛의 제국>을 읽으면서 소설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은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의 이전 소설들은 충분히 좋았으므로 새 소설을 읽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좀 아껴서 뒤에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다른 책들이 밀려있어서 낭독회를 다녀온 뒤에 읽게 됐어요. 낭독회에 같이 간 친구는 20대에게 위로가 되는 책, 이라는 것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읽고 있는 중간에 친구에게 무척 재미있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꽤 두꺼운 분량인데도 책장이 금방 넘어가고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의 파란 화면의 나우누리 통신 시절 생각도 나고, 그 때 만났던 어떤 아이 생각도 났죠. 언급되는 음악과 책은 듣거나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는 대부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 피아노와 반지의 제왕, 번지점프를 하다의 공통점을 대번에 알아맞히고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서 즐거워 하기도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유쾌하게 한 권을 끝내고 났는데, 책을 덮고 나니 왜 이리 허전하던지요. 그래서 인터넷 여기저기 들어가서 남의 리뷰들도 뒤적거리고, 작가님 인터뷰 기사도 찾아서 봤습니다. 김영하 기사때문에 일부러 챙겨두었다던 언니가 건네준 필름 2.0을 받아들고 지하철 문에 기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솔직히 제게도 이 <퀴즈쇼>가 위로가 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너희들, 지금 잘 해 나가고 있어. 다른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진 않아. 이런 위로는 작가님의 인터뷰 기사나 작가 후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낭독회에서도. 사실 저는 책보다 그 낭독회에서 더 많은 위로를 받고 돌아온 것 같아요. 읽어가는 도중에는 이 글귀 좋다, 이 글귀는 지금의 나 같아, 라고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아서 따로 적어두기도 했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 '힘'들이 순식간에 회오리치며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였어요. 민수가 '회사'에 들어가고 난 뒤였던 것 같애요. 밑줄 그어둔 부분이 멈춰진 지점이요. 밑줄 그어 둔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회사'는 민수의 꿈, 무의식이였어요. 들어가는 부분에 작가님이 분명하게 해 두셨더라구요.  


    p.310


        꿈이라는 것, 무의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요. 책을 한 권 읽었어요. 아니,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요. 그 책 속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꿈이라는 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자주 꾸고, 그런 사람들이 그 꿈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구요. 그래서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꿈을 다양하게 꾼다구요. 제가 꾸는 꿈의 경우만 봐도 어떤 꿈은 지독하게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꿈은 아련하게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꿈은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절대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해요. 민수의 '회사' 생활이 그러했던거죠. 그 생활 중 어떤 부분은 현실을 지독하게 반영했고, 어떤 부분은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절대 깨고 싶지 않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잖아요. 깨고나면 모든 게 끝나는. 존재한 적도 없게 되는. 곧 내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버리는. 적어두어도 그 꿈의 느낌 그대로는 기록되어지지가 않는. 그 꿈이 너무나 좋아서 다시 잠들면 그대로 그 꿈으로 쏙 들어갈 것만 같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일회적인 꿈이요. 처음 <퀴즈쇼>를 읽을 때 민수를 따라가다 보면 내 불안한 20대의 끝이 보이지 않을까, 라고 기대를 했는데 결국 나는 그를 네비게이션도 없이 따라가다 길을 잃은 거예요. 끊임없이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선택을 해야 하는 20대의 길목에서 나의 네비게이션은 여전히 행방불명인거죠. 민수는 '회사'를 빠져나왔지만 저는 여전히 그 하얗고 복잡한 공간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인 거예요. 그것만 확실하게 다시 한번 또렷하게 깨달은 셈이예요.

    p.32


     
      <퀴즈쇼>는 제가 읽었던 김영하 작가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빠르게 읽었어요. 그래서 아쉬움도 많이 남구요. 우리의 20대가 정말 이런가. 빠르고 재미있고 복잡한 것 뿐인가. 뭔가 더 있을텐데 나는 왜 발견하지 못하고 있나. 낭독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도 퀴즈인가. 그런 것 같아요. <퀴즈쇼>를 읽는 독자들은 모두 각자 다른 종류의 퀴즈 문제를 받으실 거예요. 작가가 내는 것 같지만 실은 읽는 자신이 자신에게 내는 퀴즈인거죠. 그리고 그 퀴즈의 정답은 독자 자신만 아는 거죠. 그리고 작가님, 적절한 매너가 뒷받침되었으니 얼마간의 과시는 용인해드릴께요. 너무 많은 종류의 문화적 비유가 있어서 말이죠.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사실 속으로 그래요, 작가님 똑똑해요, 박학다식해요, 라고 삐죽거렸을 때도 있었거든요.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