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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 쉬게 하는 것들서재를쌓다 2019. 5. 10. 23:47
밖이 보이는 1호선 안이었다. 한창 책에 빠져 있었다. 신도림까지 가야 하는데, 구로까지만 운행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니 다음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내리시라고. 벚꽃이 한창 피어나던 계절이었는데, 날이 흐렸다. 가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역사 밖으로 벚꽃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셨다. 좋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좋은 풍경이 나타나니 마구 설레였다. 이 책은 다들 요가가 좋다는데 한번 해볼까 하고 산 책이다. 샀지만 제목이며 표지가 영 끌리지 않아 책장에 그냥 두었는데 어느날 마음이 가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유정 작가와 히말라야에도 함께 갔던 김혜나 작가의 책인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20대 때에 요가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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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야채스프모퉁이다방 2019. 5. 10. 17:01
4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 곡예사 언니의 집에 갔다. 우리는 라자냐를 먹고, 통닭을 먹고, 맥주와 까바를 마시면서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게 어떤 글을 보내줬는데, 자신이 몇년 전에 이 방법을 알았더라면 이것대로 했을 거라고 했다. 언니는 몇년 전에 수영으로 시작해 개인 피티로 끝나는 몇달을 보냈는데, 그때 10키로를 뺐다고 했다. 그 글에는 운동없이 한 달에 10키로를 뺄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하얀 것을 먹지 말 것! 하얗게 생긴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 안에 들어가서 하얗게 변하는 것들도. 잡곡도 먹지 말라고 했다. 단 과일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먹느냐면 토마토와 아보카도. (-_-) 토마토는 맛이 없어서 싫어했는데, 최근 짭잘이 토마토를 맛보고 어쩌면 토마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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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모퉁이다방 2019. 5. 8. 22:58
아직 추웠고, 잠실이었다. 간만에 셋이 모였다. 가격이 꽤 해서 뭔가 더 시킬 때마다 부담스러웠던 수제맥주집에 있다 근처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집으로 이동을 했다. 동네의 저렴한 술집을 찾는 거였는데, 거기도 잠실인지라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안주를 시키고, 맥주를 추가해서 마셨다. 술잔을 기울이며 더듬어 보니 우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고, 그게 새삼스러웠다. 셋이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주로 함께 여행을 간 일. 그 여행길에서 한 헛짓들. 엄청나게 짠 대게를 길 위에서 사고, 맥주가 모잘라 긴긴 밤길을 걷고, 나간 두 사람을 한 사람이 기다렸던 일. 맥주가게 무제한 맥주축제를 기다렸다가 셋이 가서 엄청나게 큰 잔으로 엄청나게 마셔댔던 밤. 내 오랜 친구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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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과 전주여행을가다 2019. 4. 23. 23:40
남을 쓰고 그리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는 나만 아니까. 남은 모르니까. 타인에 관해서 쓰는 건 자주 실패로 끝났다. 다른 사람이 되어 보려 시도하고 썼던 대사와 문장들은 늘 어설폈다. 어설프지 않으려면 아주 주의싶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했으나 나는 남에 대해 쓰는 일에 성급하고 게을렀다. 내가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사람인지 독자들에게 뽀록나며 창피를 당했다. 매 문장에서 밑천을 들켜버린다니 글쓰기란 두려운 일 같았다. - 181-182쪽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183쪽 별수없이 각자의 돈벌이는 계속되었다. 대학생과 잡지사 막내기자와 누드모델을 병행하는 동안 나는 틈틈이 글을 썼다. 주로 누드모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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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극장에가다 2019. 4. 17. 21:36
엄마아빠와 한바탕 하고 올라온 날, 더 울고 싶어 극장에 갔더랬다. 아이스 라떼 큰 사이즈를 사고 왼쪽 복도자리에 앉았다.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아이를 잃은 전도연의 마음이 되었다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설경구의 마음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순간에는 오빠를 잃은 동생의 마음이 되었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옆집에 사는 이웃의 마음이 되었다가 했다. 영화를 본 다음날 저녁에는 운동을 하러 갔는데, 켜놓은 티비에 전도연이 나왔다. JTBC 뉴스였다. 손석희가 그랬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전도연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다양한 모습이 현실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았다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의 몸에서 어쩌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가 생각했다.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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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카미노를 걷는다서재를쌓다 2019. 4. 3. 22:30
스페인 순례길에 침대와 식사를 제공하는 이 시작되었다. 재미나게 보기 시작했는데, 마침 S가 이 책을 주고 갔다. 순례길을 걸은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순례길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읽었는데 또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똑같은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을 걷는 사람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번에는 십년 전에 걸은 길을 십년이 지난 뒤에야 정리한 이새보미야 씨의 여정이다. 대학교 3학년 때 2학기 등록금 낼 돈으로 무작정 비행기표를 예매한 젊은 순례자는 잘도 걷는다. 그 긴 길을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잘 걷는다. 부상만 없었다면 더 잘 걸었을 거다. 의 첫번째 하숙생이 유해진에게 그랬다. 힘든 현실을 뒤로 하고 이곳에 왔는데 매일매일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고민이 해결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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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극장에가다 2019. 3. 27. 20:27
나이가 많이 들면,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뚜렷해지는 거겠지. 기다리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가 개봉되었고, 혹여나 빨리 내릴까봐 개봉주에 가서 보았다. 는 정말 좋았다. 그 뒤 십년이 지났고, 이스트우드는 좀더 크게 그리고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일 그렇게 많이 하지마. 그거 다 소용없어. 지금에 집중해. 나중에 말고, 지금의 가정에, 지금의 사랑에, 지금의 행복에 집중해. 핸드폰도 좀 그만하고! 미처 알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하게 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안 다음에도 그 일을 계속한다. 돈을 벌어서 빚에 넘어간 농장도 되찾고 싶었고, 자신을 줄곧 믿어준 손녀 결혼식 비용도 보태고 싶었고, 학비도 대주고 싶었고, 전쟁용사들의 쉼터도 다시 살리고 싶었으니까. 결국 붙잡힌 그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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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극장에가다 2019. 3. 26. 21:05
요즘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읽는 일도, 보는 일도 예전 같지가 않다. 끙. 써놓고 보면 부족하고,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많은 말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지. 그렇지만 그때는 그래도 쓰려고, 남기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 짧은 글이라도 부지런히 남겨보자는 다짐이다. 아자아자. 삼월의 어느 목요일, 퇴근을 하고 상암으로 가 을 봤다. 시간이 딱딱 잘 맞았다. 자유로도 막히지 않았고, 7시 즈음 시작하는 영화가 있었고, 여유가 있어 좋아하는 커피집의 라떼도 샀다. 그런데 영화가 계속될수록 그냥 집에 갈 걸, 가서 책이나 티비를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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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서재를쌓다 2019. 3. 24. 21:09
(...)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34~35쪽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삶의 원칙, 즉 우리의 불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고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첫 번째 고백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연인들이다. 근무지 밖에서 만날 때, 처음엔 사이공 거리에서, 다음에는 정기 여객선에서, 기차에서, 그 후에는 아무 곳에서나, 우리는 속내 이야기를 무한정 풀어 놓는다. - 75쪽 스무 살 때 내게 하루키 소설 읽는 순서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생애 첫 하루키 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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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통영여행을가다 2019. 3. 20. 21:03
다시, 통영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둘이었다가, 넷이 되고, 여섯이 되었다가, 다시 넷, 그리고 둘이 되었다. 넷이서는 근사한 해안도로를 따라 지는 해를 보러 갔다. 연휴라 사람들이 많았다. 미세먼지가 제일 덜한 지역이었는데도 날씨가 좋지 않아 일몰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다찌집에 가서 해산물도 잔뜩 먹었다. 그 날의 다찌집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복작복작했다. 우리 중에는 취한 사람도 있었고, 맥주만 마신 사람도 있었다. 건배는 여러 번 했다. 숙소까지 간다고 대리를 불렀는데, 숙소가 가까웠고, 기사님은 걱정하지 말라더니 엉뚱한 집 앞에 주차를 하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숙소는 해저터널 근처의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옛날 집이었는데, 방이 두 개, 화장실이 두 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