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보이는 1호선 안이었다. 한창 책에 빠져 있었다. 신도림까지 가야 하는데, 구로까지만 운행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니 다음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내리시라고. 벚꽃이 한창 피어나던 계절이었는데, 날이 흐렸다. 가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역사 밖으로 벚꽃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셨다. 좋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좋은 풍경이 나타나니 마구 설레였다.


   이 책은 다들 요가가 좋다는데 한번 해볼까 하고 산 책이다. 샀지만 제목이며 표지가 영 끌리지 않아 책장에 그냥 두었는데 어느날 마음이 가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유정 작가와 히말라야에도 함께 갔던 김혜나 작가의 책인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20대 때에 요가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심취하게 된 이야기이다. 그렇게 소원했던 소설가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잘 다스리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면서 다짐하다. 최대한 있었던 일만 쓰자. 과장하지 말자. 그런 그녀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인상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녀는 당시에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종일 일을 하는 터라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을 아끼고자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한다. 그런데 이 지도자 과정이라는 게 그 전에 수련만 할 때랑은 많이 달랐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무척 힘이 들고 고되었다. 어느 날, 포기하고 싶어졌다. 특강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그대로 요가매트를 접고 도망쳐버렸다.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버렸다. 학원에 이제 다시는 가지 말자 결심했다. 그러다 마음을 바꾼다. 지금까지 포기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고.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두 눈을 꾹 감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다음 수업에 참석하고, 계속계속 수련해나간다. 그러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지옥 같았던 마음이 괜찮아지게 된다. 지도자 과정도 무사히 이수하고, 요가 선생님이 된다. 그것으로 해피엔딩, 끝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포기를 넘어선 순간을 맛본다. 그것은 내게 부족한 것. 그동안 나의 많은 포기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갔고, 나도 김혜나 작가처럼 그런 순간을 맛보자고 결심했다. 언젠가 기필코.


   책의 마지막, 그녀는 계속해서 수련을 한다. 처음에는 괴상한 줄 알았지만 실은 내공이 무척 깊은 원장님이 있는 수련원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새벽요가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현미로 죽을 만든다. 서두르지 않고. 밥을 하면서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반찬은 하나. 그 전보다 적게 먹고, 오래 움직인다. 자신의 몸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이런 결말이 정말 좋았다. 







   너무 많은 것을 쓰지 말자. 공연히 멋을 부리며 내가 경험하지도 않은 것들을 쓰지 말자. 화려한 문장이나 상상력에 의존해 쓰지 말자. 내가 모르는 것 또한 절대로 쓰지 말자. 내 가슴으로 느낀 것, 내 눈으로 본 것, 내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담담하게 쓰자, 라고 결심한 채 한 편, 두 편 이야기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내 존재의 비루함과 나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요가와 글쓰기를 끝내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7쪽


   그날, 마쓰야아사나(물고기자세)를 할 때에 보았던 세계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느낀 어렴풋한 관념이 아니라 실재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갔다. 소설에 기대어 소설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소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였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등단이라는 것은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마음 상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좋은 글을 쓰기보다 정말 좋은 인간이 먼저 되고 싶었다. 글이 아닌, 소설이 아닌, 나 자신을, 존재 그 자체를 잘 써 나가고 싶은 것이었다. 

- 82쪽


   그러자 곧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작가가 되겠다거나 책을 내겠다는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자꾸만 글을 쓰게 됐다. 이렇게 쓰는 글들을 더 이상 공모전에 응모핮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니 어쩐 일인지 글쓰기가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가왔다.

- 84쪽


   글쓰기는... 이런 거구나. 이렇게 자유롭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마치 꽃과 같이 피어오르는 것, 새와 같이 날아오르는 것, 축포와도 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했다. 등단을 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글쓰기가 정말 좋아서 쓰는 것이어야 했다. 그동안 나는 작가로서의 화려한 명성, 그에 따른 부상 등에 눈이 멀어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며 나 자신을 속인 채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테두리에 갇혀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해 항상 숨 막혀 했다. 그 거짓된 욕망과 집착, 좌절과 절망의 세계를 넘어 나에게로 돌아온 글쓰기는 이토록이나 기꺼운 것이었다. 

- 85~86쪽


   사바아사나, 송장자세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나니 매일 밤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일어나는 행위가 즐거워졌다. 어제의 힘들고 고단했던 '나', 일에 치여 아프고 괴로웠던 '나',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던 '나'는 모두 죽어 없어지고, 지금 이렇게 다시 태어나 새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매일 저녁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가도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떠올라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나는 매일매일 태어나고 있었다. 못나고 비루한 '나'는 매일 밤 죽어 없어지고, 새롭게 태어난 '나'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것. 소멸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새 생명을 받은 나의 오늘이 반짝 빛났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는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드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나아가기로 한다. 

- 124~124쪽


   요가 학원에서 홀로 짐을 싸서 나왔다가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이후 내 사고는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힘들기만 하던 수련도 차차 적응이 되어 가고, 근력 중심의 힘겨운 요가 아사나도 척척 해내게 되자 자신감도 한층 업그레이드. 강도 높은 수련을 통해 지구력도 보다 크게 늘어나 있었다. 아직 체중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지만 몸의 라인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허리 통증과 두통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역시 하면 되는구나... 이대로 계속 꾸준히만 하면 나는 정말 건강해지겠구나, 라는 확신이 내 안에 가득 차올랐다. 

- 125쪽


   요가를 하면서부터 나는 신기하리만치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고, 많은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세상이 나를 전혀 받아 주지 않으며 멀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좌절하고 절망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들이 다 나를 향해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는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비로소 문이 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소설에 대한 열망으로 오로지 소설만을 바라보는 동안 세상에 대해서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살아왔던 것. 소설에 대한 과도한 열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 보니 세상은 결코 나를 미워하거나 멀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향해 열려 있었다. 다만 내가 먼저 세상에 문을 열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것 뿐이었다.

- 135~136쪽


   죄송합니다. 그동안 이토록이나 큰 미래를 미처 알지 못하고 자꾸만 현실을 원망하고 절망하기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직도 많이 어리고 부족하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 저에게 삶을 주셔서, 꿈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 뒤에야 자리에 누워 잠들 수 있었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은은한 꽃 향기가 퍼져 들어와 내 안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 138쪽


   '선생'이란, 이런 직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자기가 아는 바를 드러내고 내세우며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밑에서 그들을 섬기고 보살피는 직업이었다. 자기 자신을 한껏 낮춘 자세로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이가 바로 '선생'이었다. 

- 241쪽


   오 년 전 다시 요가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변화되어 갔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경력을 쌓아도 쉽게 얻기 힘든 일자리 들이 저절로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새로운 요가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일 년 사이에 여러 기업체 및 학교, 문화센터, 공공 기관 등으로 강의를 하러 나가는 요가 강사가 되어 있었다. 칠 년 전 처음 요가 지도자 과정에 등록해 수련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결코 상상할 수 없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노상 걱정하던 생계와 창작, 집필, 건강의 문제들이 어느 순간 다 해결되어 있음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것들은 그 문제에 매달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기를 쓰고 애를 태워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금이 물에 녹듯... 자연히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것들이 해결되던 순간에는 해결되어 진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뒤돌아보니 이미 다 해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247~248쪽



1호선 안에서 책을 읽으며 들은 모과의 추천 명상 음악. 그 순간, 글과 음악이 딱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EKSJ4Lu6M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