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from 극장에가다 2019.04.17 21:36



   엄마아빠와 한바탕 하고 올라온 날, 더 울고 싶어 극장에 갔더랬다. 아이스 라떼 큰 사이즈를 사고 왼쪽 복도자리에 앉았다.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아이를 잃은 전도연의 마음이 되었다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설경구의 마음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순간에는 오빠를 잃은 동생의 마음이 되었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옆집에 사는 이웃의 마음이 되었다가 했다. 영화를 본 다음날 저녁에는 운동을 하러 갔는데, 켜놓은 티비에 전도연이 나왔다. JTBC 뉴스였다. 손석희가 그랬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전도연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다양한 모습이 현실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았다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의 몸에서 어쩌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가 생각했다. 옆동까지 다 들릴 정도로 커다란 울음. 모든 몸의 창문들이 다 열린 채 울부짖는 그런 울음. 전도연은 잘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기미가, 그녀의 주름이 거기 있어줘서 참 다행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좋았던 건 수호 엄마와 수호 동생이 살던 오래된 아파트였다. 돈이 없어 이사를 했다는 설정이었지만, 나는 이 오래된 아파트가 참 좋았다. 창문 바깥으로 나무가 보이고, 짐들이 많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걸레가 많이 닿았을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힘으로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가장 잘 살아가고 있는 건, 가장 힘을 내고 있는 건 이 집인 것 같았다. 이 집이 있어 설경구가 돌아올 수 있었고, 이 집이 있어 더딘 화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 집이 있어 수호가 곁에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이 집이 있어 이웃에게 안길 수 있었고, 이 집이 있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집의 카드키에 숫자를 누르고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안방에서 이불을 꺼내고, 창문을 열어둔 채 오후의 아파트 소리를 듣다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극장을 나와 전철을 탈 수 없는 심경이 되었기에 걸었다. 불광천의 벚꽃은 지고 있었지만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덕분이었다. 그래, 나는 항상 영화에 위안을 받았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고, 전화하려 했는데 먼저 잘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는데, 그 말은 다음날 지켰다. 가족은 어떤 때는 참 힘겹고, 어떤 때는 엄청난 힘이 되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