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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모퉁이다방 2019. 7. 9. 22:53
지난주에는 같이 살 집엘 갔다. 사전점검 기간이었는데, 처음 내부로 들어가 보는 거였다. 여기서 회사를 다니려면 멀고 또 멀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잘 다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거실에서 나무들이 잔뜩 보였거든. 가까이에 낮은 산이 있었다. 숲이 보이는 집이었다. 단번에 방의 용도를 정했다. 나머지 숲이 보이는 방에는 책상과 책을 두기로 했다. 나즈막한 편안한 의자도 하나 사야지. 주문진에서 딱 한번 함께 펴본 캠핑의자를 가져와 숲이 보이는 창문 앞에 나란히 뒀다. 창문을 열어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아, 좋다. 동시에 말했다. 여기에 소파를 두고, 여기에 식탁을 두고, 여기에 책상을 두고, 여기에 침대를 두고. 최대한 심플하게 살자고 말했다. 친구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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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구원모퉁이다방 2019. 7. 3. 23:16
요즘은 평일 저녁에 꼬박꼬박 헬스장엘 간다. 약속 있는 날과 의욕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 후자의 날들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살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간다. 가서 핸드폰을 보면서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걷더라도 가긴 간다. 요일별로 헬스장에 오는 사람들 수가 차이 나는데, 확실한 건 금요일에는 좀 절박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갈 때 꼭 이어폰을 챙긴다. 8시 즈음에 시작하는 뉴스를 보고 나오면 딱 좋다. 어떤 우울한 날에는 너무나 괴로운 뉴스들이 많아 이 세상은 왜 이모양인가 하며 절망하지만, 대부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빨리 40분이 지나길 바라면서. 이번주에 가지고 다니는 이어폰이 고장이 났다. 헬스장에는 동그란 단자로 된 이어폰만 연결이 가능한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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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뒤모퉁이다방 2019. 6. 25. 21:56
작년 팔월에는 울릉도를 여행했었다. 아침 일찍 강릉에서 출발해 세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멀미는 없었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비현실적인 쨍-한 느낌이 있었다. 하늘은 새파랬고, 나무들은 짙은 녹색 그대로, 해도 짱짱했다. 무더웠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 땀이 한순간 훅-하고 식었다. 바다색깔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섬 자체가 원시적인 느낌이었다. 울릉도에서 하룻밤만 잘 계획이었다. 첫째 날은 해안도로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섬을 완전히 연결해 줄 마지막 구간의 도로가 공사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끝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해물이 잔뜩 나오는 짬뽕을 먹고 나와 커다란 지도를 보고 있는데, 주차비를 정산해주던 아저씨가 어떤 코스로 돌거냐고 물어봤다. 그냥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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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서재를쌓다 2019. 6. 17. 22:30
에피소드로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나홀로 놀이동산 체험기를 페이퍼로 써갈 생각이었다. 제목이 인 줄 알면서도 나는 이 책에 김영하의 여행체험담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을 했더랬다. '추방과 멀미'에는 기대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중국비자가 필요한 줄 모르고 출국을 한 뒤 바로 추방당한 작가의 생생한 경험담. 이런 에피소드가 그득하면 를 절로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튼 여행담이 적어 아쉬웠다. 오월의 시옷의 책은 내가 선정했는데, 제일 큰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오기. 독서모임이면서 그동안 안 읽은 책들이 많았다. 얇고 잘 읽힐 것 같아서 선정했는데, 잘 읽히지 않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이가 과반수 이상. 일단의 성공. 김영하 작가가 에 나와 여행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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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집모퉁이다방 2019. 6. 15. 08:26
요즘 동생은 집 계약 문제로 고민이 많다. 세상 일이라는 건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퇴근길에 합정역에서 6호선을 타려는데, 상암에서 축구 하는 날이라 사람이 정말 미어터지게 많았다. 그 와중에 누가 잘못 건드린 건지 화재경보기도 울렸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타고 갈 것 같아 역을 빠져나왔다. 하늘과 바람이 무척 좋은 날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초여름 날씨. 고민 많은 동생(답답할 땐 수다와 걷는 것이 최고다)과 6호선을 타지 못한 나(그 날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는)는 마포구청역에서 만나 함께 걷기로 했다. 불광천 길은 올곧아서 옆에서 냄새로 유혹을 하는 고깃집도 없고, 자주 멈춰야 하는 횡단보도도 없다. 그냥 쭉 걷기만 하면 된다. 그 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동생이 집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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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모퉁이다방 2019. 6. 5. 23:32
유월의 첫째주 토요일에 망원동의 너랑나랑호프에 있었다. 예약은 안된다고 했는데, 8시 즈음에 손님이 나가게 되면 그 테이블을 받지 않고 있을테니 잽싸게 오라고 했다. 그렇게 8시에 테이블에 안착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갓김치와 파김치가 있는 육전과 국물떡볶이와 오백 다섯 잔을 시켰다. 맛난 맥스 생맥주였고, 김치들은 먹기 좋게 가지런히 잘라 주셨다. 육전은 따끈할 때 먹을 수 있도록 조금씩 나왔다. 길다란 떡이 들어간 떡볶이가 무척 맛있었다. 호프집은 손님들로 꽉 찼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나, 마시려고 하고 있었나 하는데 늦게 도착한다고 했던 소윤이가 가게 바깥에서부터 케잌에 불을 붙이고 환한 얼굴을 하고서 들어왔다. 마치 짠 것처럼 호프집 사장님이 생일축하음악을 틀어주셨고, 진짜 짠 것이 맞는 맞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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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서재를쌓다 2019. 5. 24. 17:28
예전에 어떤 책을 읽고 그 작가의 책을 한 권 빼고 연이어 구입해 읽은 적이 있다. 처음 읽은 책이 무척 좋아서 푹 빠졌었다. 나머지 책들도 나쁘지 않았고, 더 출간되는 책이 없나 기다리게 됐다. S와 이야기를 하다 둘 다 그 첫번째 책을 읽었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S는 그 작가의 블로그를 알고 있었는데, 오래전에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 친구목록에서 지웠다고 했다. 내가 블로그가 궁금하다고 하니 추적에 추적을 거듭해서 찾아줬다. 나는 몇달정도 블로그를 구독하다가 친구목록에서 지웠다. 내가 상상했던 작가와 거리가 있었다. 물질적인 것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분 같았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너무 달랐다. 나는 그런 밥을 그렇게 자주 사먹을 수 없다. 왠지 조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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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서재를쌓다 2019. 5. 16. 17:55
동생이 이 책을 무척 좋아해 호텔에서 하는 북토크 신청을 했다. 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로 시작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었다고 한다. 동생이 먼저 읽고, 다음에 내가 읽고, 그렇게 둘다 읽고 북토크에 갔다. 북토크에 가서 좋았던 점은 책과 인스타로만 보았던 두 작가님의 실물을 직접 보았다는 것. (김하나 작가님은 정말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그 날의 북토크는 책에 있던 에피소드를 한번 더 이야기하는 거여서 좀 아쉬웠다. 어쨌든 북토크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독자의 질문은 "그 아파트는 어디에 있나요?"였다. 동생은 창밖으로 플라타너스 잎이 물결 치는 두 작가님의 망원동 집을 무척 궁금해해 인터넷으로 망원동 아파트를 검색해 볼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분이 또 계셨다! 김하나 작가님이 "그냥 아파트예요.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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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기모퉁이다방 2019. 5. 14. 22:53
요즘은 늘 스마트폰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그 짧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어쩌다 이렇게 중독이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에 셔틀이 파주에 거의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고 밖을 내다 보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 웅덩이들이 생겼더라. 논에 물을 대는 시기구나 생각했다. 물이 가득 채워진 논이 참 예뻤다. 물에 하늘이 비치고, 옆의 산도 비치고, 나무도 비치고. 이렇게 멋진 풍경이 많은 계절에 나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구나. 한심하지만 퇴근길에 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고. 의식적으로 줄여 나가야 겠다. 이렇게 바보가 될 순 없다! 요즘 내게는 여러 소소한 고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너무 많은 말이다.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나와 뭐든 너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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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 쉬게 하는 것들서재를쌓다 2019. 5. 10. 23:47
밖이 보이는 1호선 안이었다. 한창 책에 빠져 있었다. 신도림까지 가야 하는데, 구로까지만 운행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니 다음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내리시라고. 벚꽃이 한창 피어나던 계절이었는데, 날이 흐렸다. 가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역사 밖으로 벚꽃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셨다. 좋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좋은 풍경이 나타나니 마구 설레였다. 이 책은 다들 요가가 좋다는데 한번 해볼까 하고 산 책이다. 샀지만 제목이며 표지가 영 끌리지 않아 책장에 그냥 두었는데 어느날 마음이 가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유정 작가와 히말라야에도 함께 갔던 김혜나 작가의 책인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20대 때에 요가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