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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모퉁이다방 2019. 1. 14. 22:23
물이 끓는다. 똥과 머리를 떼어두고 냉동실에 보관해 온 국물용 멸치와 지난해 주문진에서 잘못 사온 황태껍질을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완도산 미역을 잠시 불린 뒤 잘게 잘랐다. 미역국의 미역은 잘게 씹히는 게 좋더라. 냉동실을 뒤져보니 대구포가 있어 잘라뒀다. 멸치황태껍질물이 누우렇게 우려났다. 참기름도 들기름도 없어 잘게 썬 미역을 그냥 냄비에 넣고 다진마늘과 함께 볶았다. 길게 썰어둔 대구포도 넣었다. 쏴아-하고 냄비가 들뜨는 소리가 나자 멸치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누우렇게 우려난 미역황태껍질국물을 아낌없이 부었다. 이제 맛이 우려날 때까지 끓이면 된다. 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나니까. 이번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겨우내 참 많이도 쳐먹고 참 적게도 움직였다.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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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서재를쌓다 2019. 1. 13. 21:29
12월 15일 토요일이었다. 일찍 일어났고 상암 메가박스 상영시간표를 검색해봤다. 조조 가 있었다. 망설이다 일어났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상암 메가박스에는 맛난 라떼를 파는 커피집이 있는데 조조 시간대에는 문을 열지 않더라. 겉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영화 시작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극장 한 켠에 앉았다. 12월 어느 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다정한 추천 메일을 받았더랬다. 작고 단단한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야근중인 사무실 책상에서, 극장 안에서, 밤거리에서, 새벽녘의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발표할 기약 없는 이 글들을 십 년간 조금씩 써나갔다. 그러면서 차츰 투명한 응시가 과거를 미래로부터 발견해내는 일임을, 다가올 이미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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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영극장에가다 2019. 1. 9. 21:23
올해 첫 영화. 일찍 일어난 주말, 해가 뜨기 전에 틀었다. 주말, 제일 좋아하는 시간과 행위. 얼마 전에 동생이 보았는데, 너무나 좋았다는 후기를 전해 개봉 즈음 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다시 봤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첫 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고개도 끄덕이고, 친구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을 다시 보고 나니 저 말은 거짓같다. 우리가 쓴 글과 영화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청년들과 어울리는 중년부부가 유치하고 철없이 느껴졌었는데, 다시 보니 이해가 됐다. 공감이 되다 막 서글퍼지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을 이렇게 설명하면 무리일까.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아이를 막 가진 절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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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생활서재를쌓다 2019. 1. 5. 06:39
작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마치긴 했지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소설가가 고심해서 쓴 문장을 어순 정도만 달리해서 카피로 써도 되는 걸까. 그걸 이렇게 이용했다고 책으로까지 만들어 놓아도 되는걸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카피라기보다 소설을 그대로 가져다 쓴 카피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나갔고, 어제 가격 때문에 고심했던 국어사전을 주문했다. 종이 국어사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후 최대의 성과이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인터넷으로 빨리 찾을 수 있는 검색사전이 아닌 종이사전을 권한다. 검색을 하면 내가 찾고자 하는 것밖에 알 수 없지만, 종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못 보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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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모퉁이다방 2018. 12. 23. 21:41
데이트를 하고, 병원에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금요일과 주말을 보냈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읽고 있던 책 한 권을 끝냈다. 친구는 최근에 J.D. 샐린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더이상 책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했는데, 죽을 때까지 평생 글을 썼대, 라고 친구가 말했다. 내가 전철에서 마친 책의 작가도 십년동안 발표할 기약이 없는 글을 꾸준히 썼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 엘프리데 옐리네크 소설 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 영화 을 보아야지 생각했다. 친구가 추천해 준 도 꼭 봐야지. 친구는 자신의 깊이가 이 정도면, 그것보다 훨씬 못한 글이 쓰여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만큼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자신의 깊이를 늘이는 수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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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모퉁이다방 2018. 12. 20. 22:03
지금까지 열한 줄을 썼다가 모두 지웠다. 모두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동생은 요즘 수영에 빠졌는데, 잠수함이라고 놀림을 받다가 결국 배영에 성공했다. 오늘부터 평영을 시작했단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역시 성공하나 보다. 이 쉬운 진리를 나는 왜 늘 잊어버리는 걸까. 나는 포기가 쉬운 아이다. 수많은 포기가 있었다. 방금 동생이 크리스마스 때 강습은 없고 자유수영을 하는데, 수영장에 캐롤을 틀어준다고 했단다. 갈 거야, 크리스마스 날에, 라고 방긋 웃는다. 오늘은 혼자 남아 야근을 했다. 칼퇴를 하지 못한 날은 뭔가 깊은 감정이 드는데, 그건 업무시간에 쉴 틈이 정말 1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계속되어도 괜찮을까, 가끔 생각한다. 내년에는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나 이상 꼭 만들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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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모퉁이다방 2018. 12. 19. 21:12
미세먼지가 많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히 일회용 마스크가 없어서. 사기 귀찮고. 미세먼지가 많다는 뉴스를 매일매일 들으면서 마스크 회사가 대박나고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어제 동생이 주문한 원두가 왔다. 경주에 있는 커피집에서 넉넉하게 주문해서 먹는데, 다른집 원두를 먹다가 이 커피집 원두를 내려 먹으면 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또 계속 먹으면 심드렁해지고. 그런 면에서 원두도, 일도, 사람도 비슷비슷한 것 같다. 늘 곁에 있음을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고 다짐해본다. 드라마를 통 보지 않았는데, 요즘 하나씩 보기 시작하고 있다. 제일 빠져 있는 건 . 최근에 두 회 정도 연속으로 보고 푹 빠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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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음악을듣다 2018. 12. 10. 21:38
동생이 닭가슴살을 한봉지 사가지고 와서 내일 닭곰탕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갈까 한다. 냄비 가득 물을 담고 닭가슴살 세 덩이를 넣었다. 자그마한 마늘도 꼭지를 따고 열 개 남짓 넣었다. 팔팔 끓다가 탁한 거품이 보글보글 생기길래 숟가락으로 걷어줬다. 가슴살 만으로 국물맛이 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치킨파우더를 크게 퍼서 한 숟가락 넣어줬다. 마침 쪽파 사놓은 게 있다. 내일 아침에 끓일 때 넣으려고 송송 썰어두었다. 닭가슴살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고 잠시 건져뒀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적당히 식은 살을 먹기 좋게 찢고, 조금 더 국물을 졸여야지. 밥솥이 고장이 나서 고민 중이다. 아주 작은 밥솥을 살지 냄비밥이나 햇반으로 연명해볼지. 곽진언의 노래를 듣다보면 가슴이 철렁하고 해제되는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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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모퉁이다방 2018. 12. 9. 20:00
휴가가 끝났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다. 영화를 세 편 보았고, 계획했던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질 못했다. 병원을 두 번 갔고, 담당 선생님이 병원을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허기가 자주 밀려와 이것저것 먹었고, 예능을 많이 보았네. 초대를 받고 딸기와 포도, 아가 그림책을 사들고 친구의 친구집에 가기도 했다. 즐겨보는 예능인 짠내투어의 부다페스트 편을 보다가 그래, 헝가리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갈 수 있었을텐데, 생각하다 나 돈이 없지,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이것저것 먹으면서 돈을 꽤 많이 썼다는 것이 눈물겨운 현실. 신서유기가 없는 일요일을 보내야 한다. 화이팅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