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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서재를쌓다 2015. 2. 8. 19:39

     

     

       

       오늘 학원을 마치고, 지난주에 인터넷에서 봐두었던 네팔인도요리전문점엘 갔다. 1월에 정유정의 히말라야 여행기를 읽었는데, 이 책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어찌나 재미나게 여행기를 썼던지. 읽으면서 엄청 웃었다. 특히 화장실 이야기가 압권이다. 정유정 작가에게 히말라야는 첫 해외여행지였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고, 그 뒤로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작가의 꿈을 이룬 뒤에는 또 열심히 썼다. 그러다 <28>을 끝내고 글이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단다. 그렇게 찾아온 슬럼프 앞에서 작가는 혹시나 영영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어쩌나 좌절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히말라야로 가기로. 히말라야는 작가의 등단작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이 마지막 발을 디딘 곳. 정유정은 그 곳에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혼자라도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쉽지 않은 곳이라 동행을 찾았다. 김혜나 작가. 두 사람은 한달동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내린다. 고통스러운 변비도 찾아왔고, 죽을 것 같았던 고산병도 찾아왔다. 잘 씻지도 못하고 매일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가이드 검부와 포터 버럼과 함께. 가이드 검부는 뷰를 중요시해 숙소나 밥집, 찻집을 고를 때 맛보다는 풍경이 좋은 곳으로 안내했다. 포터 버럼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작가의 한국말 '까자', '까꽁', '뭐라꼬'의 뜻을 듣고 완벽하게 적재적소에 활용한 영특한 아이였다. 이국의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김혜나 작가와는 달리, 정유정 작가는 한국에서도 잘 자고, 잘 먹는 스타일인데 안나푸르나의 음식만은 맞지 않았다. 마살라 향을 못 견뎌했다. 그래서 거의 한 달 내내 야채볶음밥만 먹었다. 지난주에 검색을 하다 보니, 광화문에 있는 한 네팔인도음식점에서 네팔 트레킹을 할 때 여행자들이 먹는 음식을 팔고 있었다. 정유정 작가는 끝내 못 먹고, 김혜나 작가가 맛있게 먹었던 그것. 책을 읽으면서 그 맛이 궁금했는데, 잘 됐다 싶어 오늘 갔다. 그런데 그 요리는 사전 예약을 할 때만 먹을 수 있단다. 그것도 4인 이상일 때. 나는 혼자갔고 사전 예약 따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어보긴 했는데, 친절하게 안된다는 대답만 들었다. 재료를 따로 구입해서 만드는 요리라 그렇단다. 아쉽지만 다음에 친구들과 함께 와서 먹기로 하고, 추천해주는 매콤한 치킨카레를 시켜 먹었다. 맛있었다.

     

       친구의 남편, 그러니까 내 친구이기도 한 친구가 15년 동안 내가 딱 네 번 본 자신의 친구와 네팔로 트레킹을 갔다. 작년 12월에. 결국 내가 지금까지 딱 네 번 본 친구가 고산병에 걸리는 바람에 일정보다 일찍 돌아왔지만. 고산병 때문에 두 사람은 네팔의 커피집만 전전했다고 한다. 친구는 네팔을 가기 전에 이 책을 한 번 읽고, 갔다 와서 한 번 더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 그러니까 친구에게 말했단다. 2년 안에 같이 네팔을 가자고. 다시 가서 꼭 트레킹에 성공하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의 그 결심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영화 <와일드>와 같이 이 책도 트레킹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마지막에 트레킹 완주 후에 찍은 것 같은 사진 한 장이 있는데 책을 다 읽고 이 사진을 마주하니 괜히 내가 뭉클해졌다. 그 사진에는 트레킹 후 다시 힘을 얻은 정유정 작가가 있고, 그녀의 든든한 동행자 김혜나 작가가 있고, 두 사람을 이끌어 준 고마운 가이드 검부와 포터 버럼이 있다.

     

     

        이틀 전 스스로 던졌던 질문을 되풀이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됐니?

        선뜻 답할 수가 없었다. 겁이 났다. 돌아가 맞닥뜨릴 내가 두려웠다. 떠나온 나와 돌아간 내가 똑같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 봐. 나는 쏘롱라패스 돌탑 밑에 타임캡슐을 밀어 넣던 순간을 돌이켰다. 돌탑에 귀를 대고 안나푸르나를 향해 묻던 내 목소리를 생각했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그때 답해왔던 목소리가 똑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죽는 날까지.

     

        비레탄티는 안나푸르나의 출구였다. 철교를 건너가면 우리는 그녀의 품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철교 앞에서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식으로 안나푸르나와 작별했다. 고마워. 그 말 오래오래 기억할게.

    -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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