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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우의 집
    서재를쌓다 2015. 1. 2. 23:44

     

     

       그들은 통성명을 하고 서로가 일곱 살 동갑내기임을 확인했다. 원은 얼마 전에 언니가 보는 만화책을 몰래 훔쳐보고 '스파이'라는 말을 새로 배웠던 터라 그 말이 써먹고 싶어 좀이 쑤셨다.
      ˝그럼 이제 우리 목숨을 바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하자.˝
      ˝스파이?˝
      ˝스파이가 뭔지 알아?˝
      ˝몰라.˝
      은철이 시무룩하게 발로 땅을 찼다.
      ˝스파이는 비밀을 알아내는 간첩이야.˝
      은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27~28쪽

     

     

       권여선의 새 소설을 읽었다. 27쪽에서 28쪽을 읽을 때, 저 이야기를 하는 원과 은철이 귀여워서 아이고, 귀여운 것들, 했다. 203쪽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은철과 원은 더이상 동네 사람들 이름을 캐묻고 다니며 우물가 돌을 갈아 주문을 외우며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저주하던 신나는 스파이가 아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권여선의 전작 <레가토> 생각이 났다. 권여선은 자신이 겪어온 잔인한 현대사의 아픔과 진실을 소설로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레가토>에 이어 <토우의 집>까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현실은 너무나 잔인해서, 가슴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다. 소설에서 원의 어머니는 점심 때면 계란볶음밥을 주로 원에게 해줬다. 간단하고, 찬밥으로도 만들 수 있어 네 식구 중 두 사람만 먹는 점심으로 딱이었다. 어머니는 계란을 풀어 한 번에 다 넣지 않았다. 반은 처음에 넣고, 반은 볶음밥이 반쯤 익었을 때 넣었다. 그래야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게 된다. 그래야 볶음밥이 더 맛있다. 원이는 엄마가 해줬던 이 계란볶음밥을 기억한다. 이 가엾은 아이는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던 계란볶음밥의 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엄마 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맛. 권여선의 새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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