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장 잔인한 달
    서재를쌓다 2014. 9. 27. 16:12

     

     

        여름의 시작 즈음, 내게 초대장이 도착했다. 그 곳은 캐나다 퀘벡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곳. 이름하야 스리 파인스. 조용하고 평화롭고 화목해보이던 이 작은 마을에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사연이 있어 폐가가 되어버린 저택 안이었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교령회 모임을 하던 중이었다. 교령회 도중 갑자기 죽어버렸다. 공포에 질린 채. 모두가 심장마비일 거라 추측했지만, 마을에 나타난 그는 그녀가 살인을 당한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수사를 진행한다. 그는 바로 가마슈 경감.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 옆에 있으면 어리석고 서투른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가마슈 옆에 있으니 온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 365

     

        나를 스리 파인스로 초대해 준 사람은 이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예쁘고 착하고 사랑스럽고 따듯한 추리소설.' 두꺼운 책이라 자주 들고 다니지를 못했다. 조금씩 천천히 읽었다. 그렇게 읽혔다. 흠. 살인사건을 하나의 조그만 점이라고 생각하자. 점은 짙은 녹색이다. 그 점이 하얀 종이 중간에 찍혀 있다. 그 위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조그만 양의 잉크가 천천히 종이의 가장자리까지 퍼져간다. 마침내 진녹색 점은 커다랗고 옅은 민트색의 무늬가 되어 종이를 꽉 채운다. 그게 이 이야기이다. 그 무늬 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감정은 소설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던 '슬픔'. 자극적인 사건보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감정들, 그 감정을 갖기까지 살아온 각자의 시간들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생각보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지막 반전에 흥분되어 뒷부분은 후다닥 읽었지만.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마침내 머나에게 다시 눈을 맞추며 가마슈가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과 연민이 제일 이해하기 쉬워요. 연민은 교감을 필요로 하죠. 고통받는 사람과 동등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요. 하지만 동정은 달라요.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 우월감을 갖는 거라고 할 수 있죠."

       "두 감정은 서로 잘 구별이 잘 안 되는데요."

       "정확한 지적이에요. 감정을 느끼는 당사자에게도 구별이 어렵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연민을 느낀다고 주장해요. 연민은 숭고한 감정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건 동정이에요."

    - p. 336-337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머릿 속에서 종이 울렸다. 아, 맞지. 그렇지. 늘 느꼈던 어떤 미묘한 감정이 몇 줄의 문장들로 논리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동정과 연민. 이 두 감정에 대한 정의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범인이 평생 느껴왔던 감정이기도 했고,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느낌을 당해왔던 것이기도 했다. 이 문장들을 읽고 나자 나는 이 작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스리 파인스라는 마을의 광장에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는 거요." 

       "아닙니다. 이 마을은 미국독립전쟁 당시 미국에서 국경을 넘어 도망온 연합제국 왕당파들이 세웠습니다. 그땐 다 숲이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가마슈가 그녀 옆에 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마을과, 마을 너머의 울창한 수풀을 바라보았다.

       "왕당파들은 언제 안전해질지 확실히 알지 못했죠. 그래서 암호를 만들었습니다. 빈터에 세 그루 소나무가 있으면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안전하다는 뜻이군요." 잔이 말했다. 그녀는 나른해 보였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녀가 속삭였다.

       가마슈는 부드러운 황금빛 태양 아래 서서 잔이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 p. 236-237

     

        작가 소개에 따르면 가마슈 경감이 등장하는 가마슈 시리즈는 벌써 10편이 출간되었단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캐나다에서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단다. 이 소설은 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데, 물론 이 책만 읽어도 별 무리는 없지만 시리즈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장부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과 안면을 익히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1, 2편의 배경도 스리 파인스이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고. 내게 스리 파인스 초대장을 친절하게 보내준 고마운 사람은 이 책을 옮긴 이. 다 읽고 정중하게 하려고 감사 인사를 아직도 하지 못했는데.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보내준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달만이 가득하길요.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