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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4월 15일, 오사카, 마지막
    여행을가다 2013. 5. 1. 15:33

     

        우여곡절이 많았던  마지막 날. 그 날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행기를 놓쳤다. 어이없게도 비행기 시간을 둘다 잘못 알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가 막 떠난 뒤였다.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가 없어서 무지하게 비싼 대한항공 편도 비행기를 현장에서 다시 결제했다. 저렴하게 갈 수 있다고 간 여행이었는데, 비행기 값 때문에 결코 저렴하게 않았던 여행이 된 셈. 남은 시간대에 저가 항공인 피치 항공이 있었는데, 좌석이 다 찼을 것 같았을 뿐더러 버스를 타고 가서 좌석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냥 대한항공 탔다. 그리고 한국 와서 결제금액을 바로 할부로 전환했다. 공항에서 비행기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둘의 표정은 정말 만화 같았다.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띵-한 상태. 심장이 벌렁거렸다. 결제할 때는 어땠고. 마지막 날 공원에서 동생이 내 핸드폰 액정을 깨뜨렸다. 둘이 싸우기도 했다. 게다가 비행기는 떠났고. 이번 여행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자마자,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어떤 여행이든 최악은 없다고, 이번 여행도 참 좋았다고, 다시 오게 되면 싸우지 않을 자신은 없고 (우리는 서울에서도 끊임없이 싸우니까) 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안에서 샌드위치와 맥주를 챙겨 먹으며, 꽤 괜찮았던 영화 <나우 이즈 굿>을 챙겨보면서, 그야말로 나우 이즈 굿이라고 생각했다. 

     

     

     

     

        조식을 또 든든하게 챙겨먹고 역 근처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구로몬 시장. 여기서 해산물 구경도 사고, 공원에서 먹을 초밥 도시락도 사고, 친구들에게 줄 사탕 선물도 샀다. 맛있어 보이고 저렴한 것들이 많아 진작 올걸 후회했다.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는데.

     

     

     

     

     

     

     

     

     

       도시락을 사고 전철을 탔다. 오사카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벚꽃이 피는 곳이 있는데, 바로 조폐공사 안. 조폐공사 안에 벚꽃길을 만들어 둔 모양이다. 나무의 종이 달라서 이 곳의 벚꽃이 제일 마지막에 개화한다고 했다. 전철에서 내려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역무원에게 물어보는데 내일부터 축제 시작이라 오늘 입장이 안될 거라고 했다. 내일부터 벚꽃축제 시작인 거는 알았는데, 가면 입장시켜 줄 거라는 어느 블로거의 말만 믿고 왔다. 어쩌나 고민하다가 일단 걸어가 보기로 했다. 입장을 못하게 돼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역에서 나오니 커다란 강이 있었다. 강변에 벤치도 있고 나무들도 많고 조용하고 풍경도 좋아 일단 도시락을 먹고 걸어가 보기로 했다. 우리 옆 벤치에 아이와 엄마가 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조폐공사 안으로는 못 들어갔다. 축제 전날이라 그런 것보다 그날이 장애인의 날인가 그래서 장애인들만 입장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조폐공사 근처 공원에도 벚꽃나무들이 있었다. 그래서 공원에 있었다. 동생이 꽃사진을 찍는다고 결국 내 핸드폰 액정을 깨뜨린 그 시간, 나는 동생이랑 조금 떨어진 공원 놀이터에 있었다. 맥주를 마셔 알딸딸한 상태로 그네에 앉았다. 옆에 어린 여자 아이 둘과 할머니가 나와 그네를 타고 있었다. 조그만 아이들이 신발과 양말을 따로 벗어두고 맨발로 놀이터 바닥블럭을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오동통한 맨 다리가 너무 귀여웠다. 큰 아이는 내가 자기네를 보니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나를 자꾸 쳐다봤다. 할머니가 그네를 밀어주며 다이죠부? 라고 물으니 경쾌한 소리로 응, 이라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더 세게 밀어주니 캬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할머니가 다이죠부라고 물었고, 아이는 한 톤 높게 응 이라고 대답했다. 햇살은 따스하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분홍색 벚꽃잎이 눈앞에 가득하고.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누군가 내게 다이죠부라고 물으면 높은 톤으로 응, 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다시 일상을 살고 있다. 회사를 다니고 있고, 책을 보고 있고, 음악을 듣고 있다. 뭔가를 써보려 노력 중이고, 맥주도 마시고 있고, 영화도 보고 있다. <교토! 천년의 시간 여행>를 여행 가기 전에 사볼까 생각하다 책값도 비싸고 해서 포기했는데, 다시와서 보니 중고책이 올라와 있었다. <샐러드 기념일>과 함께 구입. 자기 전에 한 챕터씩 읽고 있는데, 가기 전에 보기보다 다녀와서 읽기 괜찮은 책이었다. 동생이랑은 좀 덜 싸우고 있다. 동생이 지난 주말 거래처 사람에게서 들꽃 한 다발을 선물로 받아왔다. 셋이서 함께 공연을 보고 맥주를 마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에게서 와송이라는 식물을 선물받았는데 잘 크고 있다. 액정은 시간이 맞지 않아 아직 고치지 않았는데, 핸드폰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라 별 불편함은 없다. 오월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오월에는 핸드폰 데이터를 사용하기 보다 바깥을 더 많이 보고, 책을 더 많이 읽고, 영화를 더 많이 볼 생각이다. 아직 전해주지 못한 선물들이 있는데, 오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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