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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4월 13일, 오사카, 첫번째
    여행을가다 2013. 4. 21. 15:26

     

        어쩌다 이번 여행을 가게 되었을까. 우리는 돈도 없었는데. 3월의 어느 날, 동생이 컴퓨터를 하다가 티몬에 오사카 여행 상품이 저렴하게 나왔는데 갈까 했다. 언젠가 동생이 전해들은, 사실 동생만 전해들은 건 아니지. 젊어서 여행은 빚을 내어서라도 가야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우리는 그럼 가볼까 했다. 티몬의 여행상품은 말만 2박3일이지, 온전한 2박3일 상품이 아니었다. 일단 결제해두고 다시 검색을 해보다 결국 하나투어 상품으로 결정. 자매가 둘다 게을러 중간에 가네 마네, 포기할까 말까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오사카, 교토로 2박3일 봄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 진작에 가이드북을 사뒀지만, 몇번 들춰보지도 못했다. 다급해져서야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대신 테이크 웨더라는 어플을 받아두고 매일 오사카에서 올라오는 사진과 교토에서 올라오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곳의 풍경을 상상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었다. 이번 여행에서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리무진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고 분위기 바로 냉랭. 4시 58분 버스를 놓쳤고, 5시 25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콜밴 택시가 한 사람의 손님을 더해 만원에 공항까지 가준다고 한다. 리무진 버스 가격이 만원이니, 망설임 없이 탔다. 공항에 오는 동안 해가 떴고, 기분이 좋아졌다. 던킨에서 커피랑 샌드위치를 먹고, 동생은 아무래도 돈을 적게 환전한 것 같다고 5만원을 더 환전했다. 출국심사하는데 사람들이 많아, 겨우 탑승시간에 맞췄다. 이스타항공. 오사카행. 8시 45분 비행기. 친구 덕분인지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비행기를 타다 죽게 되면, 내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비행기가 구름 위에 떠 있다. 패스를 뭘 사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금새 도착한 간사이 국제공항. 처음 계획은 둘째날도, 셋째날도 교토에 가는 거여서 그냥 간사이 스루 패스를 샀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돈지랄했다고 뭐라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다니면서 무척 편했다.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아, 나 오늘 머리 안 감았구나. 이번 여행에서는 가을방학 노래를 자주 들었다. 4월 13일 토요일의 오사카. 새로 산 분홍색 셔츠와 자주 입는 남색 치마, 오래된 운동화를 신었다.

     

     

     

     

     

     

       서울보다 훨씬 남쪽인데도 바람이 차다. 전철을 타고 난바역까지 이동했다. 전철 안에서 보는 창밖의 일본 풍경은 정갈하고 평화롭다. 떠나는 날, 일본에 지진이 났다는데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여행 내내 모르고 있었을 거다. 난바역으로 가는 길. 최근에 새 책을 냈다는 작가의 이름과 같은 역을 지났다. 난카이역. 린쿠다운역. 이즈미사노역. 가이즈카역. 하루키역.

     

        난바역에서 걸어서 도톤보리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숙소가 도톤보리에서 무척 가까웠는데, 그걸 모르고 난바역 물품 보관함에 짐을 넣어두고 도톤보리까지 왔다. 점심을 먹으려고 미리 알아둔 돈까스집을 찾는데, 무척 헤맸다. 헤매다 도저히 모르겠어서 지나가는 모녀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말은 통하지 않는데 너무 친절하고 오래 이야기를 해줘서 우리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결국 여기서 가까운 곳인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은 돈까스 집은 무척 비쌌다. 그래서 찜해둔 카레집에 갔는데, 옛날 경양식풍의 오래된 카레집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아늑하고 오래된 분위기에 친절한 직원들. 가이드북에 소고기맛이 장난이 아니라고 되어 있었는데, 정말 소고기가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둘다 배고파서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했다.

     

     

     

     

     

        카레집을 나와서는 돈까스집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찜해둔 커피집에 갔다. 50년도 넘은 커피집이라 했다. 일부러 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브랜드 커피를, 동생은 드립커피를 시켰다. 융드립을 하는 곳이었다. 아주 커다란 융에 따뜻한 물을 가득 따라서 향이 좋은 브랜드 커피를 내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조그마한 잔에 액상크림이 함께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액상크림에 반해버렸다. 숙소에서 조식을 먹을 때도 액상크림을 타서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 마지막 날엔 편의점에서 유씨씨 액상크림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왠지 액상크림을 넣으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달해지는 느낌이다. 외국영화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동생과 나는 바 자리에 앉아, 50년도 더 된 커피집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야구광인 듯한 마스터, 직원이 커다란 융으로 브랜드 커피를 내리는 모습, 직접 반죽해서 두껍고 먹음직스런 핫케잌을 만들어내는 모습까지. (우리가 '방금' 카레를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오지 않았다면 분명 시켰을 정말 맛있어 보였던 핫케잌!) 모든 행동에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출입문 쪽에 머리카락이 얼마 안 남은 아저씨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동생이 시켜서 가이드북의 문장들을 조합해 한 문장을 완성했다. 샤신오 톳데 모이데스까. 직원이 하이, 라고 대답했다. 아, 맞는 문장이구나. 안심했고, 긴장해서 여러 번 연습해본 탓에, 이 문장을 완전히 외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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