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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바다
    여행을가다 2012. 12. 21. 09:36

     

        그렇게 많이 마실 생각은 아니였는데. 낙산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거기서 산 염주 팔찌가 마음에 쏙 들어서, 친구에게 이사선물로 줄 풍경소리가 너무 좋아서, 낙산사 아래 해수욕장에서 마신 캔맥주가 너무 시원하고 달아서, 파도소리가 너무 고와서, 시내로 돌아와 어렵게 찾아간 맛집의 물회랑 멍게비빔밥이 너무 맛있어서, 두 달만에 다시 맛 본 옥수수 동동주가 맛나서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그래서 거기서 나와 숙소 체크인을 하고, 걷다가 바닷가에서 도로묵과 양미리를 먹고, 맥주를 조금 더 마셔주고, 숙소로 돌아와 깨끗하게 씻고 일기를 쓰고 룰루랄라 좋은 꿈을 꾸며 잠이 들 생각이었는데. 개표 방송 때문에 모든 게 다 어긋났다. 우리는 어렵게 찾아간 맛집에서 오징어 순대를 하나 더 시키고, 옥수수 동동주를 세 병 더 마셨다. 체크인을 하고 다시 나가 두 달 전에 먹었던 도로묵 양미리 집을 찾았는데, 겨울이라 추워서 밤에는 문을 닫는단다. 맞은 편 가게에 들어가서 맥주를 시키고 도로묵을 먹는데 티비가 켜져 있어서 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여행을 가는 좋은 이유가, 떠난 사람과 막차 걱정 없이 택시비 걱정 없이 헤어지는 아쉬움 없이 그대로 함께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집, 같은 방에 들어가 함께 잠이 들 수 있다는 건데. 그럴 기분 느낄 틈도 없이 취해버렸다. 맥주를 더 사왔는데, 많이 취해서 바로 잠들어 버렸다. 낭만적인 일기 따위는 없었다.

     

        낙산사가 정말 좋았는데. 낙산사 홍련암에 가면 바닥에 작은 구멍이 있다. 그 구멍 아래를 들여다 보면 커다란 파도를 볼 수 있다. 바닷물이 이리 들어왔다 저리 나갔다 커다랗게 일렁인다. 그 모습을 최대한 몸을 낮춰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모양만큼 커다란 파도소리가 들리고 뭔가 모르게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 구멍 아래를 생각하기로 했다. 바닷물이 절벽에 부딪치며 커다랗게 들어왔다 나갔다 일렁이는 모습. 그 새하얀 소리. 의상대사가 만났다던 푸른 빛의 새. 해수관음상의 얼굴을 유리 너머 올려다 볼 수 있었던 법당. 그 미소. 그 날의 합장. 그 날의 소원. 그 날의 두꺼비 다리. 그 곳에 해가 지면 펼쳐질 풍경들. 다음에는 해가 질 때까지 좀더 오래 머물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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