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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량도, 봄의 시작
    여행을가다 2013. 3. 7. 21:53

     

        새집에서 거의 한 달이 되었다. 이사 하기 전에 걱정이 많았는데, 옮기고 나니 참 좋다. 우리는 이 집에 와서 커다란 책장도 사고, 하얀색 탁자도 사고, 조립식 소파도 샀다. 어느 날은 동생이랑 길을 걷다 핸드드립 무료 강습을 한다는 안내판을 보고, 커피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곳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조금씩 사다 먹고 있는데, 드립커피가 이렇게 신선하구나 매일 아침 감동하고 있다. 멀리 출근하는 동생이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덕분에 나도 매일 거르지 않고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고 있다는 믿지 못할 사실도. 몇몇 친구들이 다녀갔고, 주말에 한 번의 커다란 집들이가 있다. 뭘 해야 하나 아침 출근길마다 메뉴를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머릿 속의 메뉴는 매일매일 바뀌고. 집이랑 정 붙이느라 영화도, 책도 보지 못한 2월이 가고, 3월 봄날이 왔다. 이제 열심히 움직여 보자, 고 생각하고 있다.

     

       3월에 아빠 생신이 있어 집에 다녀왔다. 마침 연휴라 이틀밤을 자고 왔는데, 아빠 생신날 다섯 식구가 바람 쐬러 나왔다. 소매물도에 가고 싶었는데, 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전화해보니 배가 다 매진되었단다. 통영에 가기로 하고 나섰다. 그러다 통영에 가기 전에 사량도 배를 탔다. 엄마아빠가 사랑도, 사랑도라고 발음해서 사랑도인 줄 알았더니 사량도였다.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매섭긴 했지만 봄날씨 같았다. 커다란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서 갈치찜과 멍게비빔밥과 도다리쑥국을 나눠 먹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무서웠는데, 음식들이 맛있었다. 엄마랑 나는 도다리쑥국을 시켰는데, 얼마나 시원하고 향긋하던지. 봄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운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를 타고 창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버스가 사량도 한바퀴를 드라이브 시켜준다. 버스 안에는 등산 가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처럼 한바퀴 그냥 도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량도에 지리산이 있는데 험하기로 유명하단다. 버스가 얼마나 높이까지 올라가던지 따로 등산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엄마는 아찔해서 중간중간 앞 좌석 손잡이를 꽉 움켜 쥐었다. 아찔한데, 정말 아찔할 정도로 높이 올라가는데, 그 풍경이 말도 못하게 아름다웠다. 남해바다가 햇살에 비춰 일렁이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량도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드라이브하려면 꼭 오른쪽 좌석에 앉길. 내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다시 배를 타고 나와 통영에 갔다. 막내동생이 그리 가보고 싶어했던 동피랑 마을도 가고, 아빠가 그렇게 먹고 싶어했던 가자미찜도 먹고, 복작대는 바닷가를 걷다가 돌아왔다. 집에 가는 길에 명절에 인사드리지 못해서 동생이랑 외할머니집에 들렀는데, 할머니가 잘 왔다, 느그 아버지가 좋아했겠다, 하시며 참기름도 싸 주시고, 할머니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건빵도 싸 주셨다. 서울에 와서 먹어보니 과연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될 만한 건빵이었다. 동생이 전활 했더니 아빠는 동피랑 마을을 함께 걸었던 이야기를 자꾸 하더란다. 연휴라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복잡대며 딸들과 함께 걸었던 그 알록달록하고 시원한 길이 생각이 난다고. 늙어가는 아빠는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추억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게 가끔 서럽다. 다음 여행은 엄마와 내가 가고 싶어했던 청산도로 가기로 했다. 그 날도, 좋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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