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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의 일
    모퉁이다방 2012. 6. 12. 22:20

     

        6월 12일 화요일. 비가 왔다. 6월이 되고 나는 중랑천을 두 번 걷고, 한 번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세 편의 영화를 보고, 한 편의 뮤지컬을 봤다. 그리고 에피톤과 존 메이어의 새 앨범을 번갈아 듣고 있다.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에서 못 본 영화를 다 보고 싶었는데, 실패. 딱 한 편만 봤다. <원더풀 라이프>. 예전에 이비에스에서 해주는 거 보다가 초반에 잠들어 버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잠들어 버렸다. 좌석과 좌석 사이가 너무 가까워 졸면서도 아, 쪽팔리게 졸면 안 되는데 그랬는데, 나중에 내가 정신 차렸을 때 옆에 앉은 남자가 헤드뱅잉하면서 막 졸고 있어서 안심했다는. 영화는 참 좋은데, 왜 항상 이 영화를 보면서 조는지 모르겠다. 초기작이기 때문에, 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짝수 영화는 다 보았다는 뿌듯함에 극장을 나섰던 유월 유일의 기억.

     

       <블루 발렌타인>도 봤다. 미셸 윌리암스가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조금 우울하게 생긴 얼굴도 좋고, 히스 레저의 부인이었다는 것도 좋고, 히스 레저를 꼭 닮은 딸을 키우고 있다는 것도 좋고.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좋았다. 그런데 영화는 생각보다 좀 별로였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랬던 건지, 우울한 내용이라서 그랬던 건지. 영화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계속 한숨을 쉬게 되더라. 영화를 보고 나니 비가 왔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다 맞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온 유월 팔일의 기억. 

     

       세 편 중 제일 좋았던 영화는 <멜랑콜리아>였다. 제목부터 우울하다고 말하고 있고, 우울증을 앓는 커스틴 던스트가 주인공이지만 내겐 전혀 우울하지 않았던 영화. 현충일날 영화를 두 편 봤는데, <멜랑콜리아>를 먼저 봤다.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고, 친구에게 혹시 이 영화 같이 볼래, 라고 하니 본 영화라고 했다. 우울할 거야, 라고 했다. 계속 보고 싶었던 영화고, 이 날이 아니면 못 볼 거 같아서 혼자서 보자 결심하고 많이 우울하냐고 다시 물어보니, 번쩍할 때 이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번쩍할 때, 울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나무도 사라지고, 꽃도 사라지고, 사랑하는 이도 다시 볼 수 없고, 무섭고 두렵기만 한 번쩍인데 그 장면이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보러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극장을 나서는데 거짓말처럼 친구가 극장 의자에 앉아 젤리를 먹고 있었다. 유월 유일의 기억.

     

     

       그리고 한 편의 뮤지컬 이야기. 조승우의 <닥터 지바고>를 봤다. 러닝 타임도 길고, 다소 지루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조승우여서 좋았어,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여운이 길었다.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장면 장면들을 이야기하는데 아, 그 장면은 정말 다시 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음날 도서관에 <닥터 지바고>를 빌리러 갔다. 이번이 아니면 읽을 수 없을 거라고, 여운이 남아 있을 때 읽어낼 수 있는 고전이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상권의 앞부분을 지금까지 계속 붙잡고 있지만. 어제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그들은 날이 새도록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찌뽀프의 생애에서 그날 밤보다 현저하고 뜻밖의 변화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아침에 그는, 어제까지와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거의 놀랐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일어섰다. p.122

     

        안찌뽀프는 라라의 남편. 첫날 밤, 라라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그건 라라의 잘못이 아니였다.

        뮤지컬에서는 이 부분에서 라라가 노래했다.

     

       흐르는 음악에 난 몸을 맡겼지. 행복한 꿈이야. 모든 것 괜찮아. 

       그래 음악은 날 굴복시켰어. 달콤한 멜로디는 내게 천국같았어.  

        - when the music played.

      

        김지우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거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특히 이 노래 부를 때. '흐-르는 음-악에' 이 부분의 멜로디는 정말 계속 생각나서 음원을 구할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김지우는 무대 위 침대에 앉아 허리를 바짝 꺽고 몸을 낮추면서 이 부분을 불렀는데 그 몸짓이 자꾸만 생각났다. 이제 라라와 또냐가 만나는 장면을 읽어야 하는데 그건 하권에 나올 거 같은데, 그 부분까지 읽을 수 있겠지? 응? 유월 이일의 기억.

     

     

        그리고 한 번의 결혼식. 내가 안녕,이라고 먼저 인사했다. 유월 구일의 기억.

     

     

     

     

    유월의 중랑천과 유월의 만년필 글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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