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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 한 번의 이브나
    무대를보다 2012. 3. 15. 22:06


       구두를 꺼내신고 새 귀걸이를 한 3월의 수요일. (남들은 이 날을 화이트 데이라 했다.) 저녁 7시에 혼자 대흥역 근처에 있는 한 백반집에서 생선구이 백반을 먹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또 지진이 났다 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버스 사고가 크게 나 아이들이 죽었다고 했다. 이런 저런 뉴스를 보는 동안 고등어 살을 발라먹고, 두부 반찬도 다 먹고, 다시마도 초장에 찍어 먹고, 목이 버섯 반찬도 다 먹었다. 백반집을 나와, 나와 같은 장소로 가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과 발을 맞춰 걸었다.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고, 화장실로 가 양치를 했다. 8시에 나는 마포에 있는 한 공연장에 앉아 있었다. 가을방학, 클래식에 빠지다.

        공연은 1부, 2부, 3부로 진행됐다. 1부는 가을방학이 밴드 음악을 들려주고, 2부에서는 바이올린리스트 김주현 씨가 나와 클래식 선율을 들려줬다. 그녀도 혼자는 아니었다. 몇 곡은 피아노와 함께 했고, 몇 곡은 첼로와 피아노와 함께 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순전히 가을방학을 보러 간 거였는데, 프로그램을 사보니 2부에 이런 순서가 준비되어 있어 놀랐다. 계피가 계속 노래하는 거 아니였어? 우리 둘 다 그랬는데, 동생은 모르겠지만 나는 1부보다 2부가 더 좋았다. 2부에서 그야말로 내 가슴이 잔잔하게 요동쳤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선율이 흘러나올 때, 에디트 삐아르의 <사랑의 찬가> 선율을 들을 때, 나는 3월은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선율을 듣는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설레면서 마음이 아픈 게 3월이라고. 김주현 씨는 뒤에까지 잘 안 들릴 지도 모르니 마이크를 쓰자는 공연장 측의 권유를 거절했다고 했다. 본연의 음을 들려주고 싶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부디 귀를 쫑긋 세우고 본연의 음을 들어달라고.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본연의 음을 들었다. 그래서, 감동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뭐라해도 하이라이트는 3부였다. 클래식 선율과 함께 가을방학의 음악을 듣는 무대. 계피가 노래하고, 정바비 '선생님'이 기타를 치고, 김주현 씨가 속해있는 솔리스트 에이의 바이올린 소리, 피아노 소리, 첼로 소리. 거기다가 베이스와 드럼까지. 3부의 모든 곡이 좋았지만, 최고는 '이브나'였다. 편곡하신 분도 가을방학 노래 중에 '이브나'가 제일 마음에 들어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동생은 이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음원으로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곡. 마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곡. 정말 아름다웠던 곡. 나는 이 노래를 듣다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만개한 벚꽃나무가 우리 주위로 그득했다. 벚꽃 비가 내리는 한가운데서 계피가 노래한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팔꿈치로 리듬을 타며 '늦은 봄 눈 같은 나의 고백도 꽃 노래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 이 봄, 앞으로 많은 노래들을 들을 테지만 이 단 한 번의 '이브나'를 들었으니 됐다. 이번 봄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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