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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여름, 그의 목소리와 기타
    무대를보다 2011. 8. 21. 21:19


        봄이었던 것 같다. 어느 계절에 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드라마 속 계절은 봄이었던 것 같다. 단막극이었고 내가 보았던 부분은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부분. 티비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방을 닦고 있었다든지, 수첩을 정리하고 있었다든지. 그때 그 음악이 나왔다. 물이 되는 꿈. 물이 되고, 꽃이 되고, 풀이 되는 꿈을 꾸는 노래.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노래를 가만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가 루시드폴을 들은 온전한 첫 기억이다. 

        토요일에 소나기가 내렸다. 나는 대학로에 있었다. 소나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아마도 그의 앵콜이 시작되었을 거다. 앵콜곡 마지막 곡이 '물이 되는 꿈'이었다. 참 신기한 노래다. 꿈을 꾸는 대상이 하나하나 차분하게 떠올려지는 노래다. 그가 물이 되는 꿈,이라고 노래하면 내 머릿속에 물이 그려지는 노래. 강이 되는 꿈,이라고 노래하면 내가 강이 되는 노래. 달이 되는 꿈,이라고 하면 내 앞에 밤의 풍경이 펼쳐지는 노래. 그렇게 내가 바람이 되고, 모래가 되고, 돌이 되고, 흙이 되고, 하늘이 되는 노래. 토요일 공연에서는 진짜 강물소리가 들렸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악기가 있었다. 신기한(?) 악기들 연주를 담당했던 세션 분이 그 기다랗고 투박한 악기를 위 아래로 조심스럽게 흔들자 그 안에서 냇물소리가 났다.

        신곡도 세 곡 들었다. 목소리와 기타 소극장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큰 공연장에서와는 달리 그는 말이 많았다. 터무니없는 스위스 개그도 남발했고, 이런저런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길게 들려주었다. 언제 만든 노래인지, 왜 좋은지, 누구에게 들려주었는지, 어떤 사연으로 시작되었는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스위스 친구와 최근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선배의 모습과 그가 여행한 곳의 풍경이 그려졌다. 그는 올해, 염전이 있는 마을을 여행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목조건물을 보았으며, 땀 흘리며 일하는 염부를 만났다. 해가 지면 비릿한 바랏바람이 부는 마을을 산책했다. 그렇게 소금에 대한 노래를 완성했다. 제목은 '여름의 꽃'. 그 노래가 참 좋았다. 안녕 안녕 안녕,이라고 반복되는 가사가 나오는데 그 부분이 참 좋았다.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라는 가사도 있었다. 그 부분도 참 좋았다. 새 앨범이 나와야 이 노래를 원없이 들을 수 있을텐데. 벌써부터 그리운 노래다.

        2009년 2월 4일 수요일 밤, 그는 시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저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음악도 마음껏 하고, 고국의 음식도 마음껏 먹고, 우리나라 말로 말하고 싸우고 울고 웃으며 살기 위해 돌아갑니다. 지금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고 슬픈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껏 멀리서 듣고 보아온 소식들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저는 너무 바쁘고 또 멀리에만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소식 한가운데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거리에서, 투표함 앞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집 안에서, 운동장 안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지요.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을 노래로 만들고 부르겠지요. 저는 제 노래가 그렇게 대단한 노래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쉽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 하나는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제가 보는 사람과 세상과 우리나라는 다시 저에게 내가 만든 노래를 들어주고 보여주는 거울이 되겠지요." (<아주 사적인, 긴 만남>)

        2011년 여름, 나는 대학로의 어느 소극장 앞자리에 앉아 고국으로 돌아와 음악도 마음껏 하고, 고국의 음식도 마음껏 먹고, 우리나라 말로 말하고 싸우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을 노래로 만들고 부르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쉽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노래를 들었다. 그가 들려주는 열 여섯 곡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어쩌면 그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다정다감하고 세심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의외로 무뚝뚝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 의외로 무뚝뚝한 사람일 지도 모를 그가 만든 첫 여름 노래 또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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