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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월, 네번째 봄
    무대를보다 2011. 4. 3. 00:46




       네번째 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소라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때로는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했다. '봄'에서 시작해 '난 행복해'로 끝나는 공연. 그녀가 몇 곡의 노래를 끝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날이 꾸물꾸물해요, 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오늘 날이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로 알아들었다. 꾸물꾸물. 꿈을 꾸는. 그녀의 말은 내게 늘 그렇다. 기대하던 그녀와 나의 첫번째 봄, 그리고 그녀의 네번째 봄. 어떤 가사들이 또렷하게 들렸다. 아프고, 외롭고, 고독하다는 가사였을 거다. 그 가사들이 또렷하게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아프고, 외롭고, 고독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아프고,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지은 가사처럼, '올해가 지나면 또 한살이 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대도 그렇다는 것'.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건, 아픔에도 외로움에도 고독함에도 조금씩 무뎌지는 것 아닐까. 나는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란다.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을 앵콜 전 마지막 곡, '바람이 분다' 첫 피아노 소리에 터졌다. 그때부터 앵콜 두 곡까지 내리 울었다. 나는 방금 머리를 자르고 미용실을 나선다. 시간은 오후 즈음. 바람이 분다. 잘린 머리카락이 아프다. 계절은 봄. 꽃이 핀다. 풀이 돋는다. 나는 잘린 머리카락처럼 아프다. 사랑은 끝났다. 지난 여름의 끝, 당신은 변했다. 그리고 가을이 왔고, 겨울이 왔다. 다시, 봄. 나는 방금 머리를 잘랐고, 잘린 머리 끝으로 바람이 분다. 세상은 모두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졌다. 나만 이렇게 아프다. 그런 노래. 내게 '바람은 분다'는 그런 노래.

        그녀의 앵콜곡들을 들으면서, 나는 상상했다. 그녀와 봄길을 걷는 상상. 봄꽃을 함께 올려다보는 상상. 집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그녀지만, 봄꽃을 위해서는 온전히 하루를 할애해주지 않을까 하는 상상. 나와 그녀가 봄길을 걷는다. 우리 위에 봄꽃이 그득하다.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봄길을 걷는다. 감탄사는 있다. 봄은 그러한 계절이니까. 그녀가 공연 중에 그랬다. 왜 봄의 공연이냐면, 봄은 쓸쓸하고도 따뜻한 계절이니까. 가끔 흥에 겨워 어떤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겠다. 그게 그녀가 될 수도 있겠고, 내가 될 수도 있겠다. 그 봄길 끝에서 우리가 봄차를 함께 나눠 마시는 상상.

        '바람이 분다'가 끝나고, 모두들 앵콜을 바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무대로 나왔다. 그녀는 오늘의 무대가, 오늘의 노래가, 오늘의 한음 한음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몇곡이 남았나 계속 헤아리게 된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무대로 나왔다. 박수소리가 그치고, 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사랑해요.' 그녀는 앵콜곡의 첫음을 놓쳤다. 반주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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