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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또 보자, 멋쟁이
    무대를보다 2011. 1. 8. 20:13

        지난주 목요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갑자기 예매한 공연. 뭔가 감동받고 싶었다. 너무 무미건조해서. 해서 점심시간에 급예매했다. 혼자 보는 거라, 좋은 좌석도 남아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 이 공연을 셀 수 없이 많이 본 분이 있다. 그 분이 엄지손가락 치켜들고 강추하는 공연. 역삼역에 내려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커피 한 잔도 했다. 공연시간도 모르고 왔는데, 세 시간이란다. 시간 가는 줄 모를 거예요, 정말 좋아요. 이 말만 믿고. 평일 공연인데도 자리가 꽉꽉 찼다. 내가 본 공연은 진호빌리.

        오늘,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을 찾아봤다. 어른빌리가 무대 위에서 비상하는 장면. 빌리가 등장하기 전, 빌리의 아빠와 형의 모습. 이미 눈에 눈물이 가득한 두 사람이 무대 위 빌리를 기다리는 벅찬 그 순간. 탄광촌에서 발레가 뭔지도 모르고, 발레는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줄 알았고, 자신의 아들이 춤에 빠졌다는 사실에 격노했던 아빠가,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료를 배신하고 탄광현장의 닭장차를 탔던 그 아빠가 벅찬 심정으로 아름다운 발레 공연을 지켜보는 그 장면. 빌리가 무대에 등장해 백조처럼 날아오르는 순간, 영화는 끝났다.

        뮤지컬에서는 아이빌리와 어른빌리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아빠가 빌리의 춤을 보고 결국 동료들을 배신하고 닭장차를 타기로 결심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나무의자를 한 손으로 빙빙 돌리며 두 사람은, 아니 한 사람은 같은 춤을 춘다. 어른빌리가 아이빌리의 등에 와이어 끈을 연결해주면, 아이빌리가 날아오른다. 정말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하늘 위를 빙빙 돈다. 하늘 위에서 춤을 춘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추는 춤도 있다. 그렇게 잠시 행복한 춤을 추다 어른빌리가 무대 위에서 사라지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빠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동료들을 배신하기로 결심한다. 장면이 바뀌고, 눈이 내리는 탄광촌. 아빠는 자존심을 접고 윌킨스 선생님을 찾아간다. 탄광촌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 장면에서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영화도 그랬지만, 뮤지컬에도 좋은 장면들이 많았다. 윌킨스 선생님과 빌리의 우정. 얼마나 읽어댔는지 17살이 되면 읽어보라고 엄마가 남긴 편지를 모두 다 외워버린 빌리. 너에게 소중한 걸 가져오라고, 그래야 좋은 안무를 만들 수 있다고 윌킨스 선생님은 말했다. 빌리는 퍼즐, 스타워즈 잡지, 통조림, 그리고 엄마의 편지를 가져왔다. 윌킨스 선생님에게 엄마의 편지를 읽어봐도 된다고 이야기하고는,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소리내서. 이 뮤지컬 넘버가 시작될 때도 눈물. 내 옆자리에 앉은 분이 친구랑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벌써 세 번째 보는 건데 늘 이 장면에서 눈물을 쏟아낸다고. 어김없이 목요일에도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시더라. 

        빌리를 포함한 아이들이 얼마나 잘하고 귀엽던지. 30대 여성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공연이라는 동료의 이야기에 완전 공감. 아주 작은 꼬마가 나오는데, 정말 귀엽다.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나니, 내 몸은 그냥 몸뚱아리인 거다. 10살짜리 아이는 무대 위에서 저리 신나게 춤추고 있는데, 내 몸은 살로 가득찬 그저 몸뚱아리. 두둥. 저 나이에 이런 큰 무대의 공연을 저렇게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춤을 추는 빌리의 표정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우, 으, 예- 하며 이어지는 탄성음.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의 기립박수에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10살짜리는 앞으로 어떤 세계를 경험하게 될까. 그 아이가 느끼고 있는, 그리고 느끼게 될 감정들이 부러웠다. 질투났다.

        그 날, 같이 일하는 그 분도 다른 자리에서 그 공연을 함께 봤는데, 이미 말했다시피 빌리를 셀 수 없이 많이 보신 분. 그 날 공연은 정말 최고였단다. 그래서 내게 행운아라고 그랬다. 처음 보는 건데 이런 최고의 공연을 보게 되어서 행운아라고. 날씨는 추웠는데, 돌아오는 길이 따듯했다. 뭔가 힘을 얻은 느낌. 정말 세 시간인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봤다. 바랬던 것처럼 감동받았다. 영화도 참 좋았는데, 간만에 다시 봐야겠다. 자, 빌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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