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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 당신은 왕이 되었죠
    무대를보다 2009. 6. 15. 23:19

        체코에서 초연된 뮤지컬이라 했다. 나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이 뮤지컬 속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겠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름다운 미모를 빛내며 노래를 부른다. '난 왕이 될거야. 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황금 독수리처럼 강한 왕이 될거야.' 그녀는 카페트에 몸을 숨치고 시저 앞에 등장한다. 시저에게 바치는 선물입니다, 라는 말이 끝나자마차 카페트가 도르르 풀리더니, 요염한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한다. 그녀는 도도한 표정과 몸짓으로 시저를 유혹한다. 내가 본 그녀의 첫 번째 사랑이다.

       뮤지컬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에겐 두 번의 사랑이 있었다. 그녀가 사랑한 두 남자는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한 남자는 자신의 반대세력에게 여러 번 칼에 찔려 죽었으며, 한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가슴에 칼을 찌르고 목숨을 끊었다. 세상 일이란, 정치란, 사랑이란 이리도 힘든 것인가 보다. 시저가 칼에 찔려 죽었을 때, 그리하여 모두가 그의 죽음을 슬퍼할 때, 시저의 주검이 하늘 위로 떠오를 때, 얼마 전의 '그 분'이 생각나기도 했다. 세상 일이란, 정치란, 사랑이란 이리도 힘든 것이니까.

        클레오파트라의 곁에는 한 마리의 독사가 함께 한다. 독사는 끊임없이 춤을 추며, 그녀의 노래를 함께 한다. 어떤 순간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독사가 끊임없이 그녀를 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독을 품은 혀를 낼름거리면서. 결국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이 독사가 함께 했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녀는 자살을 하기 위해 이 독사를 풀어놓았다고 한다. 독사가 자신의 숨통을 끊을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독한 여자. 강한 여자. 이집트 여왕의 자리란 그런 것일까. 독사는 유연하게 춤을 추다가, 그녀를 문다. 그녀에게 지독한 독을 내뿜는다. 그녀에게는 두 번의 사랑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순간은 커튼콜의 순간이다. 뮤지컬에서 충분한 감동을 느꼈지만, 완벽했던 건 아니었다.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탓인지 스토리는 중구난방이었고, 2부 후반부에서는 제목이 무색하게 클레오파트라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2부에 갑자기 나타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떻고. 로마와 이집트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읽고 가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그럼에도 커튼콜의 순간. 수많은 배우들이 하나 둘씩 나와 인사를 하고, 마지막에 우리의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한다. 왕이 될거야,라고 애절하고 강인하게 외쳤던 그 넘버의 반주에 맞춰.

        클레오파트라는 강하다. 공연 내내 그녀는 강했다. 자신의 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자신이 시저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을거라 믿었고, 자신의 아들이 로마를 지배하게 될 거라 확신했다. 날카로운 코를 빛냈으며, 눈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으며, 남자를 사랑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치를 떨었으며, 그를 용서치 않았다. 그녀는 여장부였다. 태양이 번득이는 나라의 빛나는 여왕이었다. 다시 커튼콜의 순간. 그녀가 어떤 몸짓을 취했더라. 반짝이는 태양빛 망토를 휘날리며 앞으로 걸어왔고, 뒤돌아 걸어갔으며, 다시 힘차게 뒤돌아섰다. 무릎을 꿇고 왕좌에 앉았을 때의 손짓을 취했으며, 턱을 강인하게 치켜세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가 코를 찡그렸다. 훌쩍거렸다. 나는 클레오파트라가 두 번 훌쩍거리는 걸 보았다. 그녀의 눈이 촉촉해지는 걸 보았다.

       물론 그건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배우 전수미의 모습이었겠지만, 내게는 그것마저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뱀 다음으로 공연 중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한 병사들이 슬픔의 노래가 울러퍼지는 동안, 파아란 조명 아래서 스르르 일어나더니 뒷모습을 보이며 무대 뒤로 사라지는 거였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그리하여 장면이 전환될 때 일어서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들은 영혼이 되어 스르르 일어나 사라졌다.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순간 가슴이 벅찼다. 커튼콜 때 클레오파트라의 훌쩍임도 그러한 느낌이었다. 강했지만, 여렸던 사람. 앞에서는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여왕이었지만, 뒤에서는 수백 번 흐느겼던 사람. 어떤 조그만 일에도 가슴이 벅찼을 사람. 하지만, 여왕이기에 내색할 수 없었던 사람. 그래서 결국 독사에게 물려 삶을 버리기로 선택한 사람. 아, 정말 그녀가 훌쩍일 때 내 코 끝이 찡해졌다. 

        이건 체코로부터 건너온 뮤지컬 속의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이니까, 그걸 보고 온 내가 느낀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이니까, 책을 더 읽어보기로 했다. 나는 그녀가 궁금해졌고,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 5권을 주문했다. 1권부터 읽어야 하는 건데. 클레오파트라 부분이 궁금해서 어쩔 수 없었다. 책은 오늘 도착했고, 이제 나는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 수 있겠지. 클레오파트라로 이루어진 온전한 한 권의 책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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