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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은 2집 발매 기념 공연 - 일요일, 마포구
    무대를보다 2009. 6. 2. 22:31

     
       지난 일요일 나는 오지은을 만나러 마포로 갔다. 동생은 그녀를 위해 최근에 산 예쁜 하얀색 원피스를 입었고, 나는 그녀를 위해 내가 아끼는 블라우스를 입었다.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려면 좋아하는 옷 정도는 입어줘야 한다구. 그녀는 심장 소리에 맞춰 무대 위로 등장했다. 쿵쿵쿵쿵쿵. 조명은 새파랬다. (기억력 나쁜 내 기억이 제대로라면 말이다) 그녀는 청바지에 반짝이 나시티를 입고,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상체를 흐느적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시간이 넘는 공연 동안 내가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녀의 라이브는 CD의 그것과 정말 똑같다. 노래부르는 내내 소름이 돋더라. 너무 잘 불러서. 진심이 느껴지는 노랫소리여서. 얼마 전에 얼굴을 직접 본 요시다 슈이치도 자기가 모르는 건 소설로 쓰지 않는다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고 (이건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고현정의 대사와 비슷한 것도 같다) 했는데, 그건 오지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도 아는 척 하지 않는다. 뭔가 있는 척 하지 않는다. 뭔가 느끼는 척 하지 않는다. 이건 그녀가 직접 말한 말이기도 하고, 내가 느낀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정말 쿨-한 여자. 자기가 느낄 수 있는 것만 표현하는 여자다. 

        그리고 그녀는 수다쟁이. 공연 내내 멘트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지금의 공기가 달짝지근하네요, 내가 이번 곡은 잘 불렀나요, 더 잘 하고 싶었는데, 나 잘하고 있죠, 내가 얼마나 이 시간을 꿈꿔왔는지 당신들은 상상도 못할걸요, 등등의 말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는 수다쟁이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 그런 말들을 노래 한, 두곡씩 끝나면 쉴새없이 쏟아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녀는 저런 식의 말들을 내게, 우리들에게 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오늘 많이 긴장했는데, 이렇게 박수소리가 커서 힘이 난다구요' 식의. '당신들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이 빨간 원피스를 얼마나 오랫동안 골랐는지 몰라요' 식의. 그녀는 그 날 정말 잘했다. 정말 예뻤고, 정말 멋졌다.

         그 날 그녀는 내게 많은 노래들을 불러줬다. 심지어 게스트마저 오지은이었으니까. 나는 그녀가 그 날 불렀던 오지은 노래가 아닌 오지은 노래 중에 '나만 바라봐'가 제일 좋았는데, 그 가사가 왠지 그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람펴도 너는 바람피지마, 베이베, 다른 여자 보지마, 의 가사는 왠지 내가 생각하는 쿨-한 그녀의 이미지가 잘 들어맞는다구. 그래서 그 노래를 그녀가 어쿠스틱 기타를 퉁퉁거리며 부를 때, 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가 정말, 꽤, 퍽, 아주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 마지막 장면에서 고현정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랑 비슷한 거다. 멋진 여자들. 요즘 나는 그렇게 쿨-하고 핫-한 멋진 여자들을 보면 입이 저절로 헤,하고 벌어진다니까.

        그래, 다시 오지은. 그 날 그녀는 많은 노래를 불러줬다. 쿨-하지도, 핫-하지도 않고 정말, 꽤, 퍽, 아주 눈물만 많은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눈물을 쏟을 뻔 했는데, 그건 웃기게도 그녀가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고 있을 때였다. 검정색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제가 이제 하이힐을 벗을 거예요. 하이힐을 신으면 방방 뛸 수가 없어요. 기우뚱기우뚱하거든요. 그녀답게 쿨-하게 핫-하게 그런 말들을 내뱉고는 그녀는 커다란 회색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짜짠, 그녀는 운동화를 신은 발랄한 모습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아마도, '웨딩송'과 '인생론'이었을 거다. 나 이제 뛸 준비됐어요, 라는 표정으로 그녀가 콩콩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저 노래들을 무대를 휘저으며 부르기 시작했다. '나같이 작고도 하찮은게 혹시나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 기쁨이 없겠어요' 그러고 콩콩. '나로 태어났으니까 나로 살아가야만 해' 그러고 콩콩. '사랑을 해보니까 힘이 들구나' 그러고 콩콩. '모두가 힘들고, 사실은 외롭고' 그러고 콩콩. '그런 내가 너라는 사람을 만나 너무 놀랐어' 이러면서 빙그르. '우리 둘이서 나일 먹으면' 이러면서 씨익. 노래를 들으면서 이렇게 행복하구나, 느껴졌던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공연을 다녀와서 오지은 1, 2집만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 이건 정말 감동이다. 안 들렸던 가사들이 들리고,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멜로디들이 가슴 속에 마구마구 헤집고 들어와 나를 들쑤시고 있는 중이시다. 오늘도 힘든 내게 아주 많은 힘이 되준 노래들. 1집의 재발견이랄까. 1집 노래들 정말 좋더라. 예전엔 거의 '작은 방'이랑 '오하별' 밖에 안 들었는데 말이다. '화'나 'The End of Love Affair', '24'는 뭐랄까, 감동이랄까. 응. 감동이다. 정말 좋다. 그러니깐, 오지은씨. 나 이제 당신의 완전한 팬. 다음에 우리 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얘기. 알았죠? 기뻐해줘요. 헤헤. 발랄하게. 쿨-하게, 핫-하게. 완전 멋진 그대.


     
       쾌 발랄한 그녀는 사인을 할 때도 누군가 조그만 선물이라면 내어놓으면 환호성
    을 질러댔다. 그야말로 환호성이었다. 예를 들면, '캬오' '캭' '악'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좋아하던 그녀. 나도 그럴 줄 알았으면 작은 선물이라도 마련하는 거였는데. 내 이름을 보고도 제 친구 중에 *령이 있거든요, 라면서 그 짧은 시간에 살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던 그녀. 그녀가 계속 쭈욱 지금의 오지은이었으면 좋겠다아. 정말. 나도요. 반가웠어요. 정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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