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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의 맥주
    모퉁이다방 2009. 4. 7. 23:55



    맥주도 체할 때가 있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과의 술자리에선,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이제 그만, 마시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진다. 역시 무얼 마시느냐 보다는, 누구랑 마시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3월에도 맥주를 많이 마셨다. 혼자 마시는 날은 줄고, 함께 마시는 날이 늘었다. H씨와 나는 일이 끝나면 배회하다 자주 홍대로 가서 비닐의 작은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비닐은 술과 음악이 있는 곳이니, 거기는 천국이다. 처음에는 주로 칵테일을 시켰다. 나는 진토닉과 보드카토닉을 마셨다. H씨는 달달하고 알콜이 적은 칵테일을 마셨다. 그런 칵테일들은 이름도 예쁘다. 색깔도. 그리고 우리는 일어나기가 싫어 맥주를 한 잔씩 더 마셨다. 어떤 날은 바깥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메리진도 만났다. 팔짝팔짝 뛰며 아는 척을 하며,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가만히 앉아 그저 그를 염탐하며, 맥주만 홀짝거렸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을 본 날도 우리는 비닐에 갔다. 그 날은 J씨도 함께였다. 우린 2시간 여를 쌀쌀한 날씨 속에서 오돌오돌떠면서, 토스트로 저녁을 때우고 줄을 서 앞자리를 사수했다. 그리고 1시간 여의 공연을 보고나니 10시. 빨리 벌컥대며 맥주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그 먼 거리를 뛰었다. 중간에 이해영 감독도 만났다. 물론 만났다,기보다는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헉헉대며 뛰는데, TV에서 (난 EBS 시네마 천국의 당신들의 수다를 사랑했다우), 기사에서 봤던 사람이 스윽 스쳐 지나가자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을 지도 모를, 그를 봤다는 생각에 우리는 여고생마냥 깔깔거렸다. 그리고 뛰었지. 지하철 끊기기 전에 맥주를 한 잔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 밤 나는 지하철이 건대에서 끊겨서 귀찮게 버스로 갈아타서 집에 도착했지만, 행복했다. 입 속에선 계속 브로콜리의 음악들이 맴돌고, 귀에 꼽은 엠피쓰리에는 그들의 음악이 들리고, 아직 알딸딸한 술 기운이 남아 있고. 매일, 오늘만 같아라, 생각했다.

    그리고  크라제 버거. 친구와 나는 홍대역에서 만나 비닐을 가기 위해 이동하다, 비닐 건너편에 크라제 버거를 발견했다. 나는 어느 블로그에서 봤다고, 우리도 그들처럼 감자튀김에 맥주를 먹으러 가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본 블로그의 메뉴와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었다. 그게 세트 메뉴로 있더라고. 칠리 어쩌고저쩌고 감자튀김이랑 맥주 두 잔. 크라제 버거의 식기들은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모조리 탐이 났다. 그 심플한 유리컵에 담긴 맥주는 또 어찌나 맛있던지. 친구와 나는 한 잔씩을 더 시켜 마시고, 비닐로 가서 또 마셨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D 4월에도 맥주를 많이 마실 거다. 보옴이 와 주었으니. 단,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맥주 마시고 체하는 건 정말 질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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