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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봄
    모퉁이다방 2009. 3. 10. 00:34
       오늘은 5호선을 쭉 타고 군자역에서 내려 간만에 중랑천을 걸었다. 썩어가고 있는 게 뻔한 시궁창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오는데도 물이 흐르는 곳 가까이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중랑천을 걸을 때면 항상 기분이 좋다. 좋아하는 음악도 볼륨 크게 틀어 놓고 들으니깐 기분 더더욱 업이다. 어제는 좋은 음악을 또 발견했다. 짙은. 이 분은 저번에 직접 기타치고 노래부르는 걸 코 앞에서 봤는데, 이제서야 빠지기 시작했다. 괜찮아,랑. 시크릿,이랑. 아침,이 특히 좋다. 

        바우하우스가 보이는 장한교인가. 그 다리 밑에서 동생이랑 만나 함께 걸었다. 아. 혼자 걸었어야 했는데. 동생은 계속 걸으면서 언니야, 국수가 먹고싶어. 동생은 국수킬러다. 나는 지난주내내 맥주를 마셔주었기 때문에 이번 주는 자제하고 나름 다이어트를 해 볼려고 한 건데. (지난 주말엔 세계맥주를 무려 10병 가까이 혼자 마신 것 같다. 내게 세계맥주를 사주신 그 분은 친절하기도 하시지. 비오는 날에는 홍대 비닐에 가서 맥주를 두 잔씩 마셨다. 음악에도 취했지. 아무튼 저번주는 맥주맥주만 마셨다. 그러니까 영혼도 살찌고 내 살도 띠룩띠룩 쪘다는 이야기. 흑.) 결국 면목까지 신나게 걷다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국수만 먹고 나올려고 했는데, 뽀얗게 진열되어 있는 꼼장어가. 흑. 그래서 꼼장어도 먹었다. 그런데 술이 없음 안 되잖아. 그래서 맥주도 한 병 마셨다. 맥주는 다 마셨는데, 꼼장어가 남았다. 그래서 맥주 한 병 더 시켰다. 아. 우리집 앞 포장마차님은 참으로 양심 있으셔서 꼼장어를 시키면 깻잎 한 가득에 잘게 썰은 마늘과 고추가 나온다. 그걸 초고추장에 찍어 쌈 싸먹으면 캬. 다이어트 실패다.

        한동안 집에서 요리도 하지 않고, 귀차니즘에 빠져서 사먹기만 했는데, 지난 주말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집에서 뭘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일요일에는 느즈막히 시장에 나가 순두부랑 바지락을 샀다. 냉동실에 있던 돼지고기를 꺼내서 해동시켰다. 참기름에 고춧가루를 풀고 해동한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뒤, 멸치다시물을 넣고 끊였다. 팔팔 끊는 국물에 하얗고 뽀얀 순두부를 통째로 넣고 바지락도 넣고, 집에 새우젓이 없으니깐 소금을 조금 넣고 다진마늘이랑 청량고추도 넣어줬다. 팔팔 끓은 순두부찌개에 흑미 넣은 밥까지 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밥으로 든든하게 먹어줬다. 아. 오늘밤에는 어제 남은 순두부찌개랑 냉이나물(아. 생전 처음으로 냉이나물을 무쳐봤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건지 살짝 맛이 없는데. 내가 만들었으니깐 내가 다 먹는다는 각오로 먹고 있다)이 있고, 동생이 오늘 사온 가래떡이 있으니까 그걸로 간장떡볶이를 만들어 놓고 내일 아침밥으로 먹을 거다. 집에 쇠고기며 버섯이며 하나도 없으니깐 그냥 다시국물내서 간장이랑 설탕 넣고 졸여서 밥반찬으로.

        그러니까 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중랑천을 걷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는. 아쉽기도 하지만, 신나기도 한다는. 오늘 점심에는 정말 벚꽃구경 가고 싶었다. 드라마시티에 나왔던 벚꽃비과 막걸리. 캬.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또 봄이 이렇게 와 주니까 좋구나. 꽃집에 알록달록한 화분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면 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다. 아. 꽃. 아. 보옴.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처럼. 봄날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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