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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니와 카프레제
    모퉁이다방 2009. 2. 24. 23:54

        금요일은 왠지 그냥 일찍 자기가 아쉬워요. 그래서 약속도 만들고, 영화도 보려고 하지만. 모든 금요일이 그렇지 않으니깐, 집에 일찍 들어오는 금요일도 있으니깐. 그땐 꼭 술을 사 가지고 들어와요. 그것도 잔뜩. 중간에 술이 모자르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집에서는 저랑 같이 술 마셔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주로 혼자 마셔요. TV를 보면서 마시기도 하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마시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기도 하고. 금요일 밤 '놀러와'는 내 최고의 안주였는데 말이예요. 아쉽다는.

        그래서 저번주 금요일에는 약속도 없고, 아. 영화는 보긴 봤어요. 6시 40분 시작 영화를 보고 8시 10분즈음에 끝나서, 9시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왔죠. 맥주를 사 들고. 요즘엔 자꾸만 술에 취하면 영화 <사랑니>가 생각나는 거예요. 봄이 올라고 해서 그런가. (<사랑니>는 저의 봄 영화예요) 거기에 막 비 내리는 장면들이 있었잖아요. 초반에도 있었고, 나중에 인영이의 대사에도 비님이 살포시 앉아 있었는데. 그러잖아요. 인영이가 친구에게. 너 어젯밤에 비 내린 거 알아? 잠자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거야. 그래서요. 내가 금요일 밤, 그러니까 토요일 새벽까지 안 잤잖아요. 비가 내릴지도 모르니까. 깨어있기 위해서 맥주를 마시고, 맥주만 마시면 배가 고프니깐 이걸 만들어 먹었어요. 짜짠. 나름 카프레제예요.
     


    일단 재료. 통통한 방울토마토랑 차가운 맥주맥주.


    그리고 오늘의 스폐셜 재료. 발사믹 드레싱(이거 대발견!)이랑 벨큐브 치즈.
    벨큐브 치즈는 체험단 신청해서 공짜로 받은 건데, 이 치즈 엄청 좋아해요.
    지난 여름에 친구랑 한강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맥주랑 와인 사서 이 치즈 냠냠거리면서 먹었는데.
    아. 그 때도 둘이서 감탄하면서 먹고 그랬어요. 맛나요, 맛나.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치즈에 취하고 그랬다는.


    배송되어 온 치즈는 세 가지 맛이었어요. 요즘엔 이렇게 나오나봐요.
    여름에 먹었던 치즈는 한 곽에 한 종류만 있었던 것 같은데.


    블루치즈, 플레인, 체다. 이렇게.


    그리고 요리책이랑 인터넷에서 보고 어설프게나마 만들어본 카프레제.
    동네에 '오터스'라고 아담하고 맛난 집이 있는데,
    맥주랑 와인이랑 스테이크 스파게티 등등의 요리를 팔아요.
    주인 언니가 친절하고, 요리를 잘 해서 우울할 때마다 생각나는 가겐데, 분위기도 좋아요.
    여기가서 큰 맘 먹고 와인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주인언니가 만들어줬었어요. 서비스로. 카프레제.
    엄청 맛있었어요. 그래서 흉내내본 거예요. 나름 만족스러웠다는.


    토마토 반 자르고 거기 위에 치즈를 조각내서 뿌려 올리고, 후추를 살짝 쳐요. 그리고 발사믹 드레싱.
    또 이쑤시개가 있다면, 반 자른 토마토랑 치즈를 예쁘게 꽂고. 후추 치고. 발사믹 드레싱.
    요 발사믹 드레싱에 이번에 완전 빠졌잖아요. 소스가 진짜 맛나요.
    포장지에 보면 담백한 빵이나 닭고기 요리에 찍어먹으면 맛나나고 써 있어요.
    그래볼라구요. 아껴 먹을 거예요. 완소 드레싱.


    그래서 슈퍼로 뛰어나가서 사온 담백하고, 내가 좋아하는 참 크래커 위에도 올려서 먹어보고


    바게트 빵 위에도 올려서 소스 듬뿍 뿌리고 먹어봤는데. 완전 맛있어요!
    이렇게 먹으면, 맥주도 맛있어서 한없이 들어가고, 안주도 맛나고, 금요일밤이 즐거워지고,
    그러면 나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잠자는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새벽의 이슬비를.


        사실 금요일에 이렇게 만들어 먹고, 맥주도 잔뜩 마시고는 취해선 사랑니 DVD를 틀었어요. 이번엔 영화로 말고 코멘터리 들으면서 영화 다시 보자, 응. 김정은이 저 대사를 할 때 감독이랑 김정은이랑 정유미는 뭐라고 하나, 들어보자고 틀었는데 맥주를 하도 많이 마셔서 금방 잠들어버렸어요. 그 다음날, 토요일도 그랬구요. 이번주 금요일에 다시 시도해볼래요. 벚꽃이 만개한 봄의 마지막 장면까지 볼래요. 나는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날까요? 이석? 첫사랑? 아. 정말 보고싶어져 버렸어요. 이렇게 쓰고 보니까. 두 명의 이석과 인영이랑 우리의 훈남 친구(앗, 이름이 생각 안 난다는)가 함께 술을 마셨던 그 마당도, 마당의 화분에 피었던 봄꽃도. 다 보고싶어져 버렸어요. 사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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