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왠지 그냥 일찍 자기가 아쉬워요. 그래서 약속도 만들고, 영화도 보려고 하지만. 모든 금요일이 그렇지 않으니깐, 집에 일찍 들어오는 금요일도 있으니깐. 그땐 꼭 술을 사 가지고 들어와요. 그것도 잔뜩. 중간에 술이 모자르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집에서는 저랑 같이 술 마셔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주로 혼자 마셔요. TV를 보면서 마시기도 하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마시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기도 하고. 금요일 밤 '놀러와'는 내 최고의 안주였는데 말이예요. 아쉽다는.
그래서 저번주 금요일에는 약속도 없고, 아. 영화는 보긴 봤어요. 6시 40분 시작 영화를 보고 8시 10분즈음에 끝나서, 9시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왔죠. 맥주를 사 들고. 요즘엔 자꾸만 술에 취하면 영화 <사랑니>가 생각나는 거예요. 봄이 올라고 해서 그런가. (<사랑니>는 저의 봄 영화예요) 거기에 막 비 내리는 장면들이 있었잖아요. 초반에도 있었고, 나중에 인영이의 대사에도 비님이 살포시 앉아 있었는데. 그러잖아요. 인영이가 친구에게. 너 어젯밤에 비 내린 거 알아? 잠자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거야. 그래서요. 내가 금요일 밤, 그러니까 토요일 새벽까지 안 잤잖아요. 비가 내릴지도 모르니까. 깨어있기 위해서 맥주를 마시고, 맥주만 마시면 배가 고프니깐 이걸 만들어 먹었어요. 짜짠. 나름 카프레제예요.
일단 재료. 통통한 방울토마토랑 차가운 맥주맥주.
벨큐브 치즈는 체험단 신청해서 공짜로 받은 건데, 이 치즈 엄청 좋아해요.
지난 여름에 친구랑 한강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맥주랑 와인 사서 이 치즈 냠냠거리면서 먹었는데.
아. 그 때도 둘이서 감탄하면서 먹고 그랬어요. 맛나요, 맛나.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치즈에 취하고 그랬다는.
여름에 먹었던 치즈는 한 곽에 한 종류만 있었던 것 같은데.
블루치즈, 플레인, 체다. 이렇게.
그리고 요리책이랑 인터넷에서 보고 어설프게나마 만들어본 카프레제.
동네에 '오터스'라고 아담하고 맛난 집이 있는데,
맥주랑 와인이랑 스테이크 스파게티 등등의 요리를 팔아요.
주인 언니가 친절하고, 요리를 잘 해서 우울할 때마다 생각나는 가겐데, 분위기도 좋아요.
여기가서 큰 맘 먹고 와인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주인언니가 만들어줬었어요. 서비스로. 카프레제.
엄청 맛있었어요. 그래서 흉내내본 거예요. 나름 만족스러웠다는.
토마토 반 자르고 거기 위에 치즈를 조각내서 뿌려 올리고, 후추를 살짝 쳐요. 그리고 발사믹 드레싱.
또 이쑤시개가 있다면, 반 자른 토마토랑 치즈를 예쁘게 꽂고. 후추 치고. 발사믹 드레싱.
요 발사믹 드레싱에 이번에 완전 빠졌잖아요. 소스가 진짜 맛나요.
포장지에 보면 담백한 빵이나 닭고기 요리에 찍어먹으면 맛나나고 써 있어요.
그래볼라구요. 아껴 먹을 거예요. 완소 드레싱.
그래서 슈퍼로 뛰어나가서 사온 담백하고, 내가 좋아하는 참 크래커 위에도 올려서 먹어보고
바게트 빵 위에도 올려서 소스 듬뿍 뿌리고 먹어봤는데. 완전 맛있어요!
이렇게 먹으면, 맥주도 맛있어서 한없이 들어가고, 안주도 맛나고, 금요일밤이 즐거워지고,
그러면 나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잠자는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새벽의 이슬비를.
사실 금요일에 이렇게 만들어 먹고, 맥주도 잔뜩 마시고는 취해선 사랑니 DVD를 틀었어요. 이번엔 영화로 말고 코멘터리 들으면서 영화 다시 보자, 응. 김정은이 저 대사를 할 때 감독이랑 김정은이랑 정유미는 뭐라고 하나, 들어보자고 틀었는데 맥주를 하도 많이 마셔서 금방 잠들어버렸어요. 그 다음날, 토요일도 그랬구요. 이번주 금요일에 다시 시도해볼래요. 벚꽃이 만개한 봄의 마지막 장면까지 볼래요. 나는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날까요? 이석? 첫사랑? 아. 정말 보고싶어져 버렸어요. 이렇게 쓰고 보니까. 두 명의 이석과 인영이랑 우리의 훈남 친구(앗, 이름이 생각 안 난다는)가 함께 술을 마셨던 그 마당도, 마당의 화분에 피었던 봄꽃도. 다 보고싶어져 버렸어요. 사랑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