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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이 끝났다
    모퉁이다방 2008. 8. 25. 10:53

       올림픽이 끝났다. 나는 이번 올림픽을 그야말로 아주 열심히 챙겨 보았다. (재방송까지) 세상에 이런 룰의 스포츠들이 다 있단 말이야, 희안해하면서. (나는 유도가 바닥에 등을 닿으면 점수를 얻는 경기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역도의 인상과 용상의 차이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육상 계주에서 프로들도 국민학교 때 우리들처럼 바톤을 놓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몸을 따라 움직이는 근육들에 감탄하고. 선수들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쓸어 내리면서 닦을 때는 사람이 저렇게 단시간에 많은 땀을 흘릴 수 있는 동물이었단 말이야, 감탄했다. 누워서 보다가 앉아서 보는 날이 많았다. 그것도 허리를 바짝 세운 꼿꼿한 자세로. 생각 같아서는 러닝머신 위에서 선수들처럼 땀 흘리면서라도 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았구나, 내 몸은 그저 밥만 축 내는 몸뚱이에 불과하지 않았어, 올림픽이 끝나면 열심히 살자, 몸을 많이 움직이자, 뭐든 죽을만큼 힘들게 해보자, 라고 생각했다. 펠프스처럼.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몰라요. 매일 밥만 먹죠,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그에게 반했다.)

       어제 폐막식까지 다 챙겨보고 나니 정말 올림픽이 끝나버렸다. 이렇게 허망할 때가.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TV에서 오래간만에 해주는 CSI를 보면서 잠이 들었다. 꿈을 꾸긴 꿨는데, 올림픽에 관련된 꿈이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올림픽이 시작할 때쯤 읽었던 현각스님의 뉴스 기사가 생각났다. 외국인 최초로 봉암사 하안거를 마친 뒤, 17일 서울의 무상사에서 가진 법문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큰 환희심이 생긴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떤가.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생활로 돌아간 이들은 ‘오히려 우울해졌다’라고 하더라. 왜 그런가. 바깥의 빛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림자일 뿐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빛을 찾아야 한다. 그걸 위해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리고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빰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물어도 물어도 머릿속을 맴도는 건 이제 올림픽이 끝났다, 무슨 낙으로 살지, 뿐. 나는 워낙 수행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어쩔 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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