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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의 짝궁 - 서른, '너'는 끝났다
    티비를보다 2008. 1. 27. 14:51

       일요일 아침, 두 눈을 간신히 뜨고 일어나자마자 TV를 틀게 하는 이유는 바로 <환상의 짝꿍>때문입니다. 언젠가 아침에 TV를 틀었다가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의 열혈 매니아가 된 건 순전히 발칙한 8살, 9살 아이들의 솔직함 입담에 푹 빠졌기 때문이예요. 어찌나 깜찍하게 할 말들을 똑부러지게 하는지 진행하는 MC들이나 출연자들의 진땀을 빼기 일쑤예요.

       우선 어른 출연자들의 굴욕은 짝꿍을 선별하는 첫번째 순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좋은 짝꿍과 싫은 짝궁을 뽑아서 발표하는데, 꼭 0표 당첨자가 나오게 마련이예요. 좋은 짝꿍의 0표 당첨자는 단번에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가 않고, 싫은 짝꿍의 0표 당첨자는 자기도 모르게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되요.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요. 사실 아이들이 말하는 좋은 이유와 싫은 이유는 심각하지도 않고 귀엽기만 합니다. 언니는 똑똑해보여서 퀴즈를 잘 풀 것 같아요, 아저씨는 입이 너무 커요, 식의 단순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유를 한 자 한 자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일요일 아침, 기분좋은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어른이 짝꿍이 되기도 하고, 싫어하는 어른이 짝꿍이 되어서 울상이 되어도 예상외로 퀴즈를 잘 풀어주는 모습에 MC 김제동씨가 '어때요? 아직도 싫어하는 짝꿍이예요?' 라고 물어보면 천진난만하게 '아니요. 이제는 좋아요'라고 씩 웃어주는 순진무구함에. 1대1 퀴즈에서는 롤러 스케이트를 위해 힌트를 주는 척하면서 거의 답을 말해버리고는 모르는 척 시침 떼고 있다가 어른 짝궁이 답을 맞추면 발을 콩콩 구르며 기뻐하는 천진난만함까지. O,X 퀴즈에서는 굉장히 뚜렷한 자신의 주관을 보이며 답을 선정한 이유를 듣다보면 어른 짝꿍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나름 심각한 대답들을 쏟아내는 것에 요즘 애들은 정말 그냥 애같지 않구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하긴 저러니깐 아이지. 저렇게 솔직한 것. 자신의 생각에 열을 올리는 당당함.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천진난만함. 일요일 아침, 저는 그런 아이같은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서 <환상의 짝꿍>을 애청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환상의 아이 짝꿍처럼 솔직하게, 당당하게, 천진난만하게, 순수하고 유쾌한 일요일을 보내자. 일요일만큼은, 이라고 다짐하면서요.  

       오늘은 어른 짝꿍이 잘 아는 문제들을 아이 짝꿍이 푸는 코너에서요. 어른 짝꿍은 커다란 입술을 물고 있어서 아이 짝꿍에게 도움을 줄 수가 없어요. 하긴 종종 어른 짝꿍이 아이 짝꿍에게 살짝 답을 가르쳐주는 경우도 있어요. 쉽게 답을 맞춘 걸 의아해하는 MC가 아이에게 추궁하면 아이 짝꿍은 그 천진난만한 솔직함으로 1초만 망설이다가 사실은 어른 짝꿍이 살짝 가르쳐줬다고 솔직하게 이실직고하고 말아요. 역시 아이들은 솔직해요. 그 코너에서 이런 문제가 나왔어요. 이런 시가 있다. '서른, OO는 끝났다'. 여기서 OO는 무엇일까? 아이들이 앞다투어 말합니다. 서른, '젊음'은 끝났다. 서른, '사랑'은 끝났다. 서른, '재동'은 끝났다. 서른, '너'는 끝났다. 서른다섯살인 MC 김재동씨는 아니예요, 여러분, 젊음은 서른 다섯에도 계속 되는 거예요, 라며 가슴을 치며 항변을 합니다. '너'는 끝났다, 라는 답에 깔깔거리면서 웃었지만 순간 가슴이 찌릿하면서 허해지는 거예요. 그래, 7살, 8살들, 너희들 너무 솔직함에 이렇게 즐겁지만 이런 대답에는 가슴이 아파오기도 하네. 하지만 서른이 되어도 끝나는 건 없단다. 계속 이어지는 것들만 존재한단다. 다행히 오상진 아나운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이것이라는 힌트로 한 아이가 정답을 맞추네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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