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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뿔났다 - 뿔 난 엄마의 따뜻한 푸념들
    티비를보다 2008. 2. 3. 10:38


       저는 김수현 작가의 가족 주말극을 좋아해서 KBS의 <엄마가 뿔났다>를 봤습니다. '부셔버릴거야'의 <청춘의 덫>도, 배경음악이 아직도 기억나는 <불꽃>도, <완전한 사랑>과 <내 남자의 여자>도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보는 나도 절로 심각해져 몰입해서 애청했었지만, 김수현 작가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했던 작품들은 대박이의 <사랑이 뭐길래>, 친척들이 북적북적 모여살아 사건사고가 많았던 <목욕탕집 남자들>, 개성 강한 세 며느리가 한 가족이 되었던 <내 사랑 누굴까>, 자폐아 아이를 두었던 <부모님 전상서>와 같은 하하하 웃으면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가족 주말극입니다. 대가족이 바글거리면서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건사고를 저지르면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을 주말 저녁즈음에 보고 있으면 뭔가 내 마음도 복잡복잡거리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뿌듯해지곤 합니다.

        애청하면서도 김수현 드라마는 대사가 저렇게 많네, 등장인물들이 따발총같이 다 저렇게 대사를 하네, 나왔던 배우들이 또 변함없이 나오네, 여자들은 결혼하면 매번 집에 들어 앉네, 등의 볼멘소리를 하곤 했어요. 이번 <엄마가 뿔났다>에도 여전한 것들이였죠. 따발총의 대사, 김수현 군단의 재등장. 그런데 첫 를 보면서 그것들이 없으면 김수현 드라마는 흥이 안 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탁구치듯 빠른 속도로 톡하면 탁하고 받아치는 대사들, 그리고 그 엄청난 양의 리듬과 흥을 잘 려서 해야만 그 맛이 충분히 살아나는 대사빨을 가장  연기해낼 수 있는 김수현 작가로부터 인정을 받은 배우들. 아마도 이번에 등장한 뉴페이스들도 작가에게 인정을 받게 되면 다음 드라마에서 또 볼 수 있겠죠. 그건 충분히 김수현식 대사들을 몸으로 잘 습득하여 연기해내었다는 뜻이니까요. 첫 회에서는 뉴 페이스 신은경의 대사처리가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곧 입에 착착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줄거라 생각합니다.


      김수현의 가족주말극은 늘 대가족을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은 물론이고 고모 할머니도 같은 건물에 살기도 했지요. 이번 <엄마가 뿔났다>에는 마당이 있는 2층 건물 옆 작은 별채에 백일섭의 쌍둥이 동생 강부자 고모가 신기가 있어 누가 죽는지 잘도 알아맞춰 무서운 딸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식구만 해도 하나, 둘... 일곱 정도 되네요. 얼마 전에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어요. 누가 이런 노년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겠냐구요. 어떤 젊은 작가들도 할 수 없는 적나라한 노년의 생각들이 그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어요. 때로는 젊음을 질투한다는 고백에서부터, 노년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기억을 잃어가는 슬픈 순간에 대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어떤 한 순간에 대해서요.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겠어요? 예전에는 멜로물만 일색이였던 우리 드라마가 이제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김수현 작가는 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지금은 핵가족 일색이라 느낄 수 없는 대가족의 행복을,  집 안의 어른으로부터 배우는 지혜들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불편한 것보다 따뜻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들을요. 북적거리는 대가족에서 지내보지 못했고, 그것이 단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제게는 김수현의 가족주말극은 하나의 대리만족이자 간접경험입니다. 노년의 박완서 작가처럼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겠어요? 43년생 작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지요.


       <부모님 전상서>는 아버지의 다정한 전상서였는데, <엄마가 뿔났다>는 어머니의 따뜻한 푸념이 섞인 나레이션이 담겨져 있습니다. 김혜자 엄마의 나지막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가족 소개를 하고, 한숨섞인 푸념으로 첫회를 마무리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에는 엄마의 어떤 독백을 들려줄지 궁금해져요. 벌써 장남에게서 엄청난 사건이 터졌으니 이 마음 좋은 엄마의 자식 걱정은 바람잘 날이 없을 것 같네요. 따뜻한 주말 드라마로 자리잡아주길 안방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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