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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옷의 책
    모퉁이다방 2019. 12. 13. 10:26

     

     

       결국 마피아는 없었다. 조림이, 봄, 병규, 기석이가 후다닥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 게임이었다. 마피아가 아무도 없는 게임에서 모두들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이 선량한 시민이라고 거듭 강력하게 주장을 했던 조림이는 마피아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허무하고 억울하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좀더 마시기 위해 테이블을 약간 치우고 있었는데, 책상이 있는 방에 들어가 있던 소윤이와 민정이가 나를 불렀다. 언니 책들은 어떻게 정리해놓은 거야? 분류법 따위는 없고 막 채워넣었다고 답을 하니, 여기는 시집이 있네, 여기는 이런 책들이 있네, 하는데 못 보던 책들이 보였다.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들. 헉. 아이들이 블로그 글로 책을 만들어 선물해준 것. 고맙고 부끄러웠다. 나는 책을 가질 글을 쓴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날 펼쳐보았으나 결국 읽지 못했다.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제목만 훑어 보았는데 이게 정말 책이 될만한 글들인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시옷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한동안 펼쳐보지 못할  것 같다. 소윤이가 몇달 전에 블로그 대문에 쓰인 사진이 너무 예쁘다며 원본을 받을 수 있냐고 했는데, 다 이 책 때문이었다. 표지에 양양의 숙소에서 찍은 나무가 많은 사진이 들어갔고, 책등 아래에 내가 편지를 쓸 때 그려놓는 표정이 들어갔다. 이 표정은 책이 시작되는 장에도 있고, 표지 아래에도 있고, 판권 부분에도 있다. 판권에는 이런 날짜와 이런 이름들이 있다. 초판 1쇄 발행 2019.11.27, 글.사진 이금령, 편집인 정기석, 편집.디자인 김소윤.선민정, 펴낸곳 시옷. 시옷들은 직접 쓰고 그린 웨딩북도 만들어줬는데 거기에 넣을 내 블로그 글을 찾다 기석이가 많은 분량의 글을 넘기면서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용도 나눠서 내고. 감동의 시옷. 책을 보고 후다닥 집을 나선 편집인 기석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질 않았다. 나중에 답이 왔는데 전화를 했을 때 이어폰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의왕역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파워워킹을 하던 중이었단다. 그 느낌 알지. 얼마나 시원하고 얼마나 속이 뻥하고 뚫리는지. 책장에 든든하게 꽂힌 이 책들을 볼때마다 직접 걷지 않았지만 너무나 알 것 같은 이천십구년 십이월 토요일의 칼바람이 생각날 것 같다. 고맙습니다,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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